기하 단편선
토요일 오전이었다. 너는 분주하다. 들떠 보인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너는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무슨 옷이 어울리는지를 물으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옷을 몰라. 멍청아."
그렇게 할 수 있는 말만을 음성언어로 내뱉는다.
그러나 무엇이든 다 잘 어울리는걸.
할 수 없는 말은 문자 언어로만 내 마음속에 그리 써넣는다. 그렇게 반나절을 여기저기를 들쑤시다, 결국 너는 어떤 옷도 사지 않고 허탕이다. 애초에 네 목적은 옷을 사는 게 아니라, 그저 내일이 오기 전까지 시간을 죽이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너는 나를 귀찮게 한 대가로, 너는 내게 짜장면을 사준다. 그러고 나서도, 너는 아직도 하루가 다 가지 않았다면서, 푸념을 늘어놓았고, 나는 그런 네가 갈망하는 내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 그 바보 같은 생각을 지워버린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다리면, 내일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버릴걸."
천천히 흐르는 오늘 너의 하루. 그러나 쏜 살 같이 지나가버리는 내 오늘 하루.
시간의 상대성.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말하던 시간의 상대성은, 이런 것은 아니었을거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아는 시간의 상대성이라는 것은 그가 발견한 시간의 상대성보다도 먼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태어나서 언젠가는 무언가를 갈망하게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가 빨리 흐르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또 어떤 하루는 결코 흘러가 버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시간의 상대성은 역시 우리가 무언가를 갈망하기 때문에. 그리고 갈망하는 것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순간들이 그저 지루하고 권태롭다. 그러나 그것을 만난 뒤에는 모든 순간들이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쉽다.
너는 말한다.
"재수 없는 말 하지 마. 나는 내일 그 어떤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을 거니까.
내가 말한다.
"그래. 모든 순간이 소중할수록, 그 시간들은 더욱 빨리 흘러가겠지."
왜냐하면, 그저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비벼대는 내 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느끼고 있으니까. 들러리로 서는 이 순간도 내게는 꽤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그 사실이 그저 비참해져서는. 나는 네 하루의 들러리가 되는 것이 참을 수없이 슬퍼져서는, 그냥 멍청하게 웃어버렸다.
"걱정하지 마. 내가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해줄 테니까."
나는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묻는다.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는 마법. 그것은 내가 갈망하는 대상이 아주 멀리 있을 때.
혹은,
"기억나? 우리 예전에 같이 교양 수업 들었었잖아. '거버넌스와 사회 운동' 이었나?"
"그래. 너 그 수업 듣고 완전 욕했었잖아. 나는 꽤 괜찮았는데 말이지."
"내일 내가 그 수업 때 샀던 교재를 읽을게."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는 마법. 그것은 내가 갈망하는 대상이 아주 멀리 있을 때. 혹은,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을 하릴없이 읽고 있을 때.
"웃기지 마, 너 그 책 종강하자마자 버렸잖아."
"과연 그랬을까."
나는 나의 태평함을 끌어모아 네게 그리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행운을 빌어주고서는 집으로 돌아간다.
터벅터벅 걷는 길. 헤어지자마자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갈망하는 대상과 멀어질수록 점점 더 느리게 가는 시간. 지하철 역과 역 사이는 언제나 평균 2분에서 3분이지만, 그 간격은 놀라울 정도로 길어지고, 헤드폰으로 흘러나오는 곡과 곡 사이는 평균 3분에서 4분이지만, 그 간격이 지루할 정도로 길어진다.
시간이 많아진다.
시간이 많아지고 또 많아진다. 그 이유는 우리가 시간 안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무엇을 향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곡은 참을 수없이 늘어지지만, 귀갓길은 참을 수없이 길어지지만, 나는 그 모든 시간을 하나도 누리지 못한다. 모든 것들이 지루한 시간과 함께 터무니없이 흘러가고, 나는 모든 것들을 허투루 보고 허투루 듣는다.
그리하여 내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던, 그때 그 시절의 책 한 권.
'거버넌스와 미래사회'
나는 그 수업이 끝날 때까지 거버넌스가 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로 멍청한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지루했고, 강의록과 피피티는 놀라울 정도로 허술했다. 그것을 그대로 읽어대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놀라울 정도로 무가치하게 느껴졌고, 나는 절대로 이 수업을 좋아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그 수업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네가 나와 함께 수강했기 때문이었고, 그 수업을 마치고 항상 가던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일 거야.
그래. 그랬었지.
그래서 거의 처음으로 읽어보는 목차들. 거버넌스의 정의와, 거버넌스의 탄생 배경. 그리고 거버넌스의 다양한 종류들과, 거버넌스의 미래와, 저자의 원대한 문제의식에 관하여.
내가 사회학을 좋아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아마 이 수업의 교훈이었을 것이다. 혹은, 시간은 상대적이라거나.
이튿날, 내가 하는 일은 그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읽어내리는 일. 모든 시간이 권태롭고 지루하게 천천히 흘러간다. 누군가에게는 쏜 살 같이 흘러갈 그 시간을 위해서. 누군가에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모든 순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함에도 구슬프게 빨리 흘러가는 시간을 위해서. 손을 잡고, 길을 걷고, 곁눈질을 하며, 다시 또 싱긋 웃어버리고서는, 볼에 닿는 바람과, 그것이 건드는 옷깃의 흔들림과 같은 것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소중해서, 정말로 하나도 사라지지 말아라 그리 기도하며 걷는 그 시간을 위해서.
나는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투명하게 의사결정을 해내는 그 제반 장치'라는 것의 의미를 읽어내린다.
시간이 멈춘다.
타인의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을 위하여, 내 시간은 한없이 권태로워지고, 지루해지고, 나의 정신은 지리멸렬하게 흩어져 사라진다. 눈은 문자를 그림으로 만들고, 하얀 종이 위에 멍청하게 놓인 검은 문양들이 춤을 춘다. 눈은 글자를 훑어내리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창 너머로 들이치는 햇살에 날아다니는 먼지 하나하나가 천천히 휘날리고 있었다. 초침과 초침 사이는 언제나 일초이지만, 그 간격이 놀라울 정도로 길어진다. 육십을 내리 헤아린 뒤에야 일분이 지나간다. 그렇게 끔찍하게 평화로운 한낮은 징그럽도록 천천히 흘러간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나는 꾸벅꾸벅.
시간, 그리고 시간, 그리고 시간, 그리고 또다시 시간.
그렇게 눈을 떴을 때, 창문 안으로 어두운 저녁의 향기가 흘러들었고, 나는 어제와 오늘의 시간을 천천히 되짚는다. 그 무엇도 기억나지 않는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버린 멍청한 하루. 하릴없이 지나버린 나의 일요일.
권태로운 시간은 끔찍하게 느릿느릿 흘러가지만, 지나고 난 뒤에는 그 무엇도 잡히는 일 없이 그저 허송세월이다. 지루함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천천히 가던 시간이, 그 지루함을 벗어나자마자 지난 시간들을 그저 찰나의 순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 시간 안에서 기억할만한 것들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또 시간의 상대성.
너무나 천천히 가던 시간은, 그 시간이 지나자마자 존재한 적조차 없었던 무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너의 쏜살같이 흘러갈 시간을 위해서, 나는 시간을 멈췄고, 그 대가로 나는 어제와 오늘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마법. 그것은 내가 갈망하는 것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거나, 멍청한 책 한 권을 천천히 읽어내리는 일.
나는 네 하루의 속도를 성공적으로 지켜낸다.
-타인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