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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Mar 05. 2022

평생 사는 법

기하 단편선

"평생 사는 법이 뭘까?"



"평생 먹고 사는 법도 아니고, 평생 사는 법?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생각해보다가, 문득 말이 재미있어서 말야."



"뭐가 재밌는데?"



"어차피 살 때까지 살면 그게 평생인데, 동어 반복 같잖아."



"흠... 그러네. 그런 점에서, 평생 살기 위해서는, 아마도... 살면 되겠지?"



"그래. 살면 되겠지. 살때까지 살면 그게 평생이니까. 근데, 같은 의미로 죽을 때 죽는 것도 결국 평생 사는 걸거야."



"재밌네. 죽을 때 죽는 것도 평생 사는 거고, 살 때까지 사는 것도 평생 사는거니까."



"너는 어느 쪽이야?"



"뭐가?"



"죽어도 평생이고 살아도 평생이라면 말야, 너는 죽을 때 죽는 평생을 살거야, 아니면 살 때까지 사는 평생을 살꺼야?"



"결국 삶은 죽으나 사나 평생이고, 어느 쪽도 평생이라면, 우리가 굳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까?"



"글쎄, 죽는 날을 본인이 정하고 싶다는 말을 어디에서 들어서 말야."



"누가 그래? 인생 살벌하게 사네."



"그렇게 생각해? 살 때까지 억척 스럽게 살고 싶다고 단언 하는 사람도 무섭던데 나는."



"그 말도 재밌네. 죽을 때까지 사는거랑 살 때까지 사는거랑 결국 모두 다 같은 말이잖아."



"그래. 모두 다 평생이지."



"그런 점에서 그 둘을 정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충분히 있지. 결국 똑같은 평생이어도, 죽을 때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과, 살때까지 살겠다는 사람은 분명히 다른 사람 같거든. 그 언어 취향에서부터 그려지는 인간상이 다르니까."



"죽을 때 죽겠다고 말하던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데?"



"글쎄, 삶이 그렇게 즐거워보이지는 않았어."



"으엑. 나는 싫어 그렇게 비관적인 사람."



"그런데, 정말로 진지하게 그렇게 말한다면, 또 생각이 달라질걸."



"그래도, 같이 있으면 함께 우울해질 거 같아."



"그렇게 말하는 너는 역시, 살 때까지는 사는 평생을 선택할건가보네?"



"당연하지. 나는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살거야."



"그것도, 그때가면 달라질걸."



"그래, 그게 핵심이지, 그때 가면 달라질 테니까, 살 때까지는 살아야지. 그러다 죽고 싶은 날이 오면 죽는거고. 단지 나는 그걸 앞당겨서 생각하지는 않을거 같아."



"어쩌면, 또 모르겠네. 죽을 때 죽고 싶다는 사람이 정말로 그렇게 죽을 지, 아니면 살때까지 살고 싶다는 사람이 정말로 살때까지 살 수 있을지."



"너 지금 나 저주하는거야?"



"아니, 정말로 평생 산다는건, 어찌 될 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래도 상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너는 그래서 살고 싶은 쪽이야 죽고 싶은 쪽이야?"



"글쎼, 나는 아마도, 죽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



"뭐야, 지만 멋있는 거 선택하네. 나는 둘 중에 하나 고르게 해놓고 말야."



"아니, 사는게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보면, 나도 무섭거든. 나는 사는게 꽤 재미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딱히 없더라고."



"흠... 웃겨주면 되는거 아냐?"



"그게 쉽냐. 너도 알잖아, 나 재미없는거."



"그래 쌉노잼이지."



"그래서 생각했어. 평생 사는 법. 나는 아마도 내가 필요하지 않은 인간이 될 것 같은 순간에 죽고 싶을 거 같아."



"사는 것도 힘든데, 필요한 인간까지 되어야 하는거야? 완전 피곤하네."



"그렇지 않나? 죽을 때 죽고 싶다는 말 말야. 그 삶에 무언가 필요하다는 메시지 같았거든."



"그거 꽤 위험할 수도 있다 너?"



"뭐가?"



"그런 사람한테 필요한 사람으로 계속 남아 있겠다는 거."



"그정도는 괜찮아. 그렇게 위험한 사람 아냐. 그 사람."



"아니, 그 사람 말고. 너 말이야, 너. 니가 더 위험해 보여."



"그러려나."



"태평하게 대답하지 말고. 임마. 필요한 인간이 되겠다고 애쓰다가, 언젠가 한번은 큰 코 다칠거야 너."



"평생 사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는 순간, 모두 다 큰 코 다칠 순간은 올 걸? 넌 어떤데 그럼."



"난 더이상 술을 못쳐마시게 되면 죽을래."



"그래. 너나 조심해라. 정말로 죽게 될걸?"



"모르지. 적어도 우리 집에 술로 죽은 가족력은 없거든."



"그 가문에 없던 새로운 역사를, 아마도 네가 쓰게 될지도 모르지."



"모르겠다. 인생. 어차피 죽어도 평생이고 살아도 평생인거, 그냥 그렇게 가는거지."



"그려. 그렇게 가는거 어차피 인생인데, 털어 버리려고 해도 안되는 것들이 있잖아."



"알지. 그런게 있다는 것쯤."



"..."



"왜."



"그렇게 잘 아는데, 왜 사라진거야?"



"그러게. 알잖아. 날 좋은 날에 아무리 다짐하고, 산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큰 소리로 살고 싶다 외쳐도, 그거 약발이 얼마 지속되지도 않을 수 있다는 거."



"그러면, 계속해서 다짐했어야지. 계속해서 산에 올랐어야지."



"그게 마음대로 되냐. 가끔은 비도 오고, 가끔은 날씨도 춥고, 가끔은 모든 조건이 완벽한데, 오로지 나 하나만 준비되지 않은 그런 날도 있는 거잖아."



"그래. 그것도 알지. 그 모든 것을 그래서 다 이해하고 싶었어."



"그래. 너는 그랬지. 다 이해했지."



"그러면, 내가 다 이해했으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래. 그랬어야지. 그래도 알잖아. 나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거."



"그렇게 말하던 모습까지도 이해하고 싶었어."



"그리고, 너는 그렇게 했지."



"그래서 후회가 돼. 중간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중간에서 말렸어야 했는데."



"멍청아 그래도 소용 없으리라는 걸 네가 알았으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거야."



"그것까지 이해해버린 뒤에는 어떻게 해야하는데? 네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어. 결국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무의미하고, 내가 너를 설득할 수 없었다는 것까지도. 그래서 그저 물 흐르듯이 다 껴안아 버린다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하는게 계속해서 네 옆에서 필요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랬지. 그래서 너는 나 평생 살 때까지는 나를 이해했지."



"그리고, 그건 너의 평생이었고, 내게 남은 것은 여생."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너도 네 평생을 살아."



"정말로 화가 나는 건 뭔지 알아? 그렇게 네가 사라지고 난 뒤에, 나는 내 삶을 볼모로 잡을 그런 사람도 없다는 거야."



"웃겨. 너는 그럴 사람이 있어도 절대로 그렇게 할 사람은 못될걸?"



"..."



"멍청아. 벌써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어. 죽든 살든 평생인 삶 안에서, 네 여생을 즐겨."



"즐기고 있어. 오히려 우리의 이런 대화를 너무나 많이 잊어 버렸을 정도로."



"그래. 나도 잊어질 의무정도는 있어야지."



"나는 잊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어."



"고마워. 나는 말야. 어떻게 해도 내 평생을 산거야. 그러니가 너도 네 평생을 살아."



"가끔은 그걸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모르겠어."



"모르긴. 평생 사는 방법은 뭐다?"



"사는 거지."



"그래. 나도 그렇게 살았을 뿐이야. 그러니가 너도 네 삶을 살아. 네 평생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게."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결국 이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니까."



"너도 정말 지긋지긋하게 고집쟁이야. 너도 그걸 알아야돼."



"그래. 그게 아마도 내가 사는 법이겠지."



"좋아. 그래서 좋아했어. 그래서 내가 죽기 전까지는 살 수 있었던 거야."



"평생 말이지."



"그래. 평생."



"한 번만 안아줘. 그럼."



"토닥 토닥. 고생했어요."



"알아. 나도 나 고생한거."



"그럼 안녕."



"안녕."





*




그렇게, 꿈에 그려보던 평생의 포옹 하나. 내가 바라보던 타인의 평생 하나. 그리고 돌아선 내 여생 하나. 죽어도 살아도 평생이고, 평생을 사는 법은 그저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내가 포기할 수 없던 나의 고집. 그 고집으로도 말릴 수 없던 타인의 고집.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평생을 꾸려가고, 어디서 그치든 그것은 언제나 평생이었다. 그게 가끔은 참을 수 없이 끔찍하고 답답해서는, 나는 몸서리 쳤고, 그러나 저물어 간 네 평생을 떠올리며, 나는 여전히 지긋지긋할 정도로 이 삶을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벌벌 떨었다.




-타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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