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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신갱이 Apr 12. 2021

천천히 견고하게

0. 안보이던 것이 보이면 나이를 먹는 거라던데..




나이를 먹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함 보다는 찌뿌둥함이 먼저

화려한 색감의 옷보다는 데일리로 입을 수 있는 무던한 옷을 고르고

발이 아플 힐보다는 운동화를 선택하고

계단을 계속 오르기보다는 에스컬레이터가 편하고 엘리베이터가 편하고

깜박깜박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라떼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데 라떼를 외치게 되는 꼰대 중간 어디쯤

얼큰하고 맵고 든든하게 먹고

먹기 위해 돈을 버는 것처럼 맛집을 찾아다니고

어디를 가기 전에 메뉴의 가격보다는 분위기가 우선이고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막무가내가 통해지는 것을 알게 되고

일단 피해 보는 것도 싫어하고 무시당하는 기분을 싫어해

빠른 것을 좋아하고

사사로운 감정에 너무 메이고 싶지 않다

외로운 것도 싫지만

귀찮은 건 더 싫은 나는

서른 중반이 되었다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 도전의 이십 대를 보내고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 삼십 대 초를 보내고

삶의 질이 여유로워진 삼십 대 중반을 살고 있는 나는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을 보면 그 사람의 감정을 예측하는

움찔하는 눈길 속에 그들의 생각을

모두 다 아는 양 안 보이는 것이 보이는

초능력을 부리는 나이가 되었다


안보이던 것이 보이면 나이를 먹는 거라고 하던데..

나는 나이를 먹고 있다

사실 아직 내가 잘하고 있는지 수없이 나에게 되묻고 되묻고

마인드 컨트롤 하나 하는 게 너무 힘겹고

신경 쓰이는 일을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싶은

이상과 현실, 여유와 생계

모두 중간 어디쯤 살고 있는 나다

나는 말이야

이제 천천히 견고하게 살고 싶어

그래서. 천천히 견고 해지기 위해 나의 일기 같은 일상과 생각을

소소하게 적기로 했어

내가 참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천천히 견고하게 기록을 남겨본다


ED kim.minkyeong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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