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인생의 악센트는
언제, 어디 찍어야 하지

그래, 지금이라고 하자, 내 인생 가장 중요한 순간

by 진샤

세탁소도 가야 하고 날씨도 좋아 오늘 운동은 산책으로 바꿨다. 가는 내내 Anne Lamott 할머니의 테드를 들었다. 어제까지 그레타 툰베리의 테드로 3분 영어 녹음을 끝냈다. 오늘부터 앤 할머니로 할 생각인데, 툰베리에 비해 문장도 어렵고 문학적인 표현도 많다. 스웨덴 발음으로 또박또박 강연해 주던 14살 소녀에서, 연음 훅훅 들어간 미국 할머니를 들으려니 쉽지가 않다.

신도시 산책로답게 잘 정리된 하천변을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 들으며 쉐도잉 해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강연은 하천의 오리 떼나 파란 하늘, 예쁜 꽃에 정신이 팔려 귓가에 닿지도 못하고 증발되어버린다. 할머니에겐 미안하지만, 뭐 어때, 날씨가 이렇게 좋고 꽃이 이렇게 예쁜데. 꽃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다가 다시 60대 어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https://www.ted.com/talks/anne_lamott_12_truths_i_learned_from_life_and_writing





막내가 어린이집을 간 후 나의 오전 루틴은 청소-운동-샤워-시 필사-외국어 녹음이다. 아끼는 동생이 하루 3분 외국어 녹음 방에 초대를 해주었다.(오뚝이 3분 녹음, 이 방명으로 가장 유력하다. 내가 네이밍 했다고 굳이 쓰고 싶다.) 덕분에 중국어와 영어를 매일 3분씩 녹음하고 있다. 중국어는 예전 북경 연수 때 사온 어린이용 성어 공부책으로 하고 있다. 어린이용이라 성조가 적혀 있어 연습 없이 바로 녹음한다. 이야기들도 대부분 재미있어 금방 끝난다.


20210331_130110[1].jpg 오늘 녹음한 내용


문제는 영어이다. 원래도 잘 못했거니와 너무 오랜 기간을 쉬어서 아무리 해도 입에 붙지가 않는다. 그래도 외국어는 '꾸준함'이 정답이니까(사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일단 해보는 거다. 나 같은 영어 맹꽁이들에게 가장 좋은 건 역시나 듣고 똑같이 따라 하는 '쉐도잉'이다. 그래서 비슷해질 때까지 듣고 따라 하고 듣고 따라 한다. 이 과정이 참 쉽지가 않다. 길거나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내가 애 키우면서 받는 스트레스만 해도 장난 아닌데 이 딴 거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하며 당장 때려치우고 싶어 진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를 넘어야 영어에 더 가까워지는 법이다. 그럭저럭 연습하고 녹음을 했다.

내일 부분을 보며 대충 읽어봤다. 도저히 감이 안 온다. 나에게 그냥 영어 읽기가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다름 아닌 '악센트' 때문이다. 이 단어의 어느 부분에 강세가 있는지 모르다 보니, 그냥 읽다 보면 영어가 아니게 느껴지고 읽는 나도 지겨워진다. 도대체 어디서 강하게 부드럽게 읽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최대한 원어민의 녹음이나 강연이 있는 것으로 공부를 하려고 한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모든 외국어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원어민을 따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후부터는 그렇게 하고 있다.





20대 중반 2주간 일본어 집중훈련을 할 때였다. 일본어는 자신 있었다. 생각 없이 떠들어댔다. 적당히 간드러진 목소리로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 흉내를 되면, 일본인 친구들은 손뼉 치며 '죠즈 데스네', '스고이'를 외쳐주었다. 역시, 칭찬만큼 좋은 가르침도 없었다.

하얀색을 말해야 해서 '시로 しろ'라고 했다. 분명히 틀리지 않았는데, 일본인 친구가 갑자기 지적을 해준다. '그렇게 발음하면 성(城)이야, 하얀색은 시로(白)라고 발음해야 해.'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쉽게만 느껴진 일본어가 갑자기 층층층 두터운 벽을 쌓았다. 일본어에도 강세가 있어서 그 강세대로 발음하지 않으면 의미가 달라졌다. 똑같은 발음이어도 강세를 어디 두느냐에 따라 달랐다. 그 순간부터 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 발음, 이 악센트가 맞을까, 또 지적받지는 않을까. 끊임없이 자기 검열이 이루어졌다. 알고 보니 나의 일본어는 엉망진창이었는데, 일본인 친구들은 그저 칭찬부터 해준 것이다. 외국어를 공부하고 외국어에 다가가는 자세가 달라진 것이 이때부터였다.


 1년 후 대만으로 유학을 갔다. 아르바이트로 학교 내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게 되었다. 숫자를 가르치는 날이라 아무 수업 준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한국어는 성조 없으니까 그냥 편하게 따라 하세요. 일, 이, 삼, 사... 구, 십!"

"선생님, 성조 있어요."

학생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꾸만 해댔다. 한국어가 성조가 있다니. 한국어는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장단, 음의 길이는 있어도 성조는 없다.

"아니에요. 성조 없어요. 자, 다시 시작. 일, 이, 삼, 사... 구, 십!"

"선생님, 일, 4 성이잖아요. 이삼사는 1 성이고, 십은 또 4 성이에요."

일본어 수업 때 받은 정도의 충격이었다. 나는 다시 천천히 내 모국어의 숫자를 읊조려 보았다. 그랬다. 모국어에 성조가 있는 친구들에게는 음이 주요하게 들리는데, 그들에게는 나의 숫자 세기에 음률이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알게 되었다. 한국사람들이 숫자를 셀 때, 1을 말할 때는 처음이라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말한다. 마지막 십 역시 마무리의 의미에서 힘을 주어 말한다. 이 것이 그들에게는 성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아, 일종의 강세예요. 악센트. 시작과 끝에 좀 힘을 주어 말한 거예요."

라고 얼버무리며 수습하고 수업을 겨우 마무리지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스무 살 초급 중국어 시간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중국어로 하는데, 대구에서 온 친구의 '我住在대구' 한 마디 때문에 더 이상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중국어 성조도 엉망이었지만, 대구! 두 단어의 강력한 사투리 억양 때문에 교수님마저 무너지셨다. 그 후로도 한 달 내내 그 친구만 보면 다 같이 '워쭈짜이대구'를 외쳐댔다. 놀림받는 대구 친구를 지켜보던 경주 싸나이가 보다 못해 나섰다.

"니들 그거 모르제. 부산이랑 대구랑 경주랑 울산이랑 포항이랑 같은 경상남도여도 다 사투리 다르다. 내 가르쳐 주까. 딸기우유 알지. 부산아들은 딸↗기우유, 이르케 한다. 근데 대구애들은 딸↘기우유, 이르케 말한다 이 말이다. 경주는 딸기우유, 울산은 딸기우유, 이거 다 다르다. 뭐, 서울 니들은 사투리라 그르믄 그냥 웃기제. 우리는 딱 듣고 딱 안다. 저노마 부산 놈이네, 울산 놈이네. 자, 여기 쭉 앉아 봐. 나 보고 따라 해. 대구 딸↘기우유, 부산 딸↗기우유."

우리는 새끼 강아지들처럼 앉아서 딸기우유, 딸기우유를 외쳐댔다. 이에이승이 세상에 나오기 전 우리에게는 딸기우유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안동도 달랐다. 안동에 큰집, 외갓집을 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제2언어로 안동 말을 갖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표준어를 배웠지만, 집에서는 진지 자셨니껴, 알았니더 같은 안동 말을 썼다. 같은 경상도여도 정말 하나같이 다 달랐다. '한국어'라고 뭉뚱그리기엔 너무 많은 강세와 억양이 존재했다. 나는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저 모국어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뻔뻔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아 누가 볼까 봐 기숙사 방문을 빨리 닫았다.






반복되는 쉐도잉에 턱 근육이 아파온다. 이 할머니 발음이 왜 이렇게 빠른 거야. 모르는 단어는 왜 이렇게 많아. 강세와 억양에 신경 쓰며 발음 연습하면 금방 피곤한 느낌이다. 그러다 문득, '내 인생의 악센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언어에도 이렇게 강세를 둘 부분, 부드럽게 이어줘야 할 부분들이 있는데, 하물며 인생은 오죽할까. 지난 내 인생에 있어 강세를 둘 부분은 어디인가, 그냥 스무스하게 넘어간 곳은 또 어디인가. 앞으로 펼쳐질 생의 나날 중 악센트를 넣어 강조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날들은 또 얼마나 많이 펼쳐질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지금은 어떤 순간인 것일까.


나의 지금, 아이 셋을 어린이집 보내기 시작한 봄. 만 6년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기저귀를 갈고 밤에 3번 이상씩 깨며 젖을 물리던 시간을 지나고 나서 맞이하는 첫 봄. 이처럼 나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 도대체 얼마만이란 말인가. 공간과 시간을 가득 채운 여유 덕에 지금은 '인생의 시기 중 부드럽게 넘기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한편으론, 일곱 살 다섯 살 세 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학교를 가기 전 교육을 신경 써야 하는 첫째, 배변훈련이 잘못되어 아직도 대변을 못 가리는 둘째, 생활 패턴과 습관을 잡아야 하고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하는 셋째가 모두 내 손에 달려 있다. 지금만큼 중요한 시기가 있을까 싶다. 사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인생의 모든 시기가 중요하다. 모든 발달과 성장의 단계에서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없다.

나 역시 그렇다. 30대의 마지막을, 육아로 지쳤던 몸을 운동으로 돌보고 마음은 글로 돌보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동안 '육아'로 놓거나 놓치거나 미루거나 버려야 했던 나의 것들을 다시 하나씩 쥐어보려 한다. 인생에 이토록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지금의 순간에 '강세'를 찍어두는 연습을 잘하면, 나의 40대와 50대에 소중한 순간들을 알아차리고 귀하게 여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힘을 빼야 하는 시기 역시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힘과 여유를 갖게 되지 않을까.


앞으로 다가올 순간들을 위해 지금에 강세를 두고자 한다. 글을 쓰며 나를 바로 잡아보는 이 시간, 바로 지금이 내 인생의 '악센트'를 찍어야 하는 순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주저앉히고 나를 일으켜 세운, 잉그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