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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Sep 13. 2020

회관 없인 못 살아!

군인가족 필수 아이템, 복지회관


  군인가족에게 '회관'은 여러 의미로 다가옵니다. 고기 먹는 곳, 피엑스, 목욕탕, 회식.. 저에게 회관은 군가족 이용시설을 넘어서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남편이 광명시 52사단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처음 알게 된 무궁화아파트. 하지만 제가 이 부대에서 처음 밤을 보낸 곳은 아파트가 아닌 화살회관 황실이었습니다. 2014년 겨울, 이사 때문에 저는 이전 부대인 남양주 진접 집에 있었고 남편은 광명에서 생활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임신 5개월 차인 제게 광명으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잘 곳이 마련되었다는 말에, 달랑 교통카드만 들고서는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거의 2시간에 걸려 52사단에 도착했습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삼겹살로 저녁식사를 하고, 같은 층인 숙박시설에서 하룻밤 보냈습니다. 군부대 숙박은 처음 이용해 보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이어서 2시간을 걸쳐 온 피로가 금세 풀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회관이 제 출산과 육아에 있어 이렇게나 소중한 곳이 될 줄은.

  임신 후기로 갈수록 몸은 무겁고 집안일은 힘들어졌습니다. 집이 5층인 탓에 산모 운동 겸 자주 회관을 찾았습니다. 얼큰한 육개장이 제 입맛에 잘 맞았고, 된장찌개는 짜지 않았으며, 저녁은 삼겹살이나 훈제오리, 돈가스를 즐겨 먹었습니다. 번역을 받아하고 있었기에, 오후에는 노트북을 들고나가 카페에서 작업을 하곤 했습니다. 별 다방, 콩 다방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너무나도 아기자기하고 분위기 있는 화살 카페에서, 값은 저렴하지만 맛은 결코 저렴하지 않은 라테 한잔하며 여유 있는 태교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육군대학교 입교하고 저 혼자 오롯이 ‘독박 육아’의 시간을 보내던 2015년 1월, 남편이 돌아오는 금요일 맛있는 저녁을 해주고 싶어 갈비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밤 10시 즈음, 아기를 재우고 콜라에 갈비를 재워두는데, 도저히 열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 30분 정도 끙끙대다가 열지 못하고 힘이 없어 손만 부들부들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전화하니 회관 병사들에게 부탁해보라고 했습니다. 밤이 깊어 잠시 망설였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잠옷 바람에 외투 하나 걸친 채 찬 겨울 공기를 뚫고 회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몇 번을 두드리니,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로 한 병사가 나왔습니다. 한밤중에 여자 혼자 손에 무언가를 들고 회관 문을 두드리니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문을 열어 준 병사는 웃으며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콜라는 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다른 병사를 깨웠고, 어느새 10명가량의 병사들이 나와 콜라 뚜껑을 잡아보게 되었습니다. 서로 자기가 열어보겠다고 10분 정도 때 아닌 힘겨루기를 하다, 체구가 작은 한 병사가 마침내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열어주었습니다. 모두들 ‘오-’하는 소리와 함께 한 대씩 툭툭 쳤던 것으로 보아 신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입대 전에 콜라나 사이다 열 일이 많았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 그 병사의 표정이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저희 부부는 그 주말, 마트에서 장보며 병사에게 줄 선물도 함께 사 왔습니다.


  관측 기록 이후 유례없던 장마로 모두가 힘들었던 지난 , 갑자기 제 지갑이 사라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틀을 꼬박 온 집을 뒤져가며 찾고 차 안도 뒤져봤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들렀던 모든 곳에 전화를 해봤지만, 분실물에 제 지갑은 없었습니다. 카드 분실 신고를 하고,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답답한 마음에 에어컨 바람 가득한 회관으로 갔습니다. 날씨까지 무더워 시원한 곳에서 진정하고 싶었습니다. 평소 웃으며 반겨주는 회관 프런트 담당 병사가 저를 보더니,
  “사모님, 혹시...... 지갑 두고 가지 않으셨습니까?”  
  이틀을 속 태우던 지갑은, 실은 회관 여자화장실을 청소하던 병사에게 발견되어 온전히 있을 수 있었습니다. 지갑이 반가웠던 만큼 잘 보관해 준 병사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해서, 그 길로 당장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여 큰 사이즈의 아이스크림으로 마음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 산책 겸 들어간 회관 입구에서 프런트 병사가 웃으며 제게 말했습니다.


  “사모님, 어제 아이스크림 백에 카드 두시고 가셨습니다.”




  요즘은 회관이 저보다는 제 딸 유안이에게 더 소중합니다. 거의 매일 집을 나서면 무조건 회관을 들러 삼촌?! 들에게 인사하고, 오후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더워지면 들어가 시원한 카페와 2층 식당을 제 집 드나들듯 아장아장 걸어 다녔습니다. 저녁엔 회관 내 목욕시설을 이용했는데, 무궁화아파트에 살고 있는 4살부터 12살까지 언니들이 함께 놀아주고 씻겨주고 입혀주었습니다. 그야말로 ‘공동육아’의 살아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아기 시절 좋은 추억의 대부분은 회관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군인가족이라면 분실물을 회관에서 찾거나 복지병들에게 도움을 받는 일화는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회관이 당연한 존재일 수도 있고,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저에게 소중한 이유는, 바로 ‘사람’ 때문입니다. 결혼하고 사실상 처음으로 이용하는 복지시설이었기에 조금은 어색해하는 제게, 관리관님과 병사들은 늘 웃는 얼굴로 대해 주었습니다. 특히, 양가 부모님이나 조리원 동기, 문화센터 친구, 마을 지인 없이 온전히 혼자 아기를 키우는 저에게 회관은 그야말로 ‘육아 친구’였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모든 병사들은 마치 늦둥이 동생처럼 반겨주고 놀아주었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가면 지겨울 법도 한데, 늘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먼저 다가와주고 아기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낯가림이 심한 유안이가 이제는 먼저 달려가 안깁니다. 그들 덕분에 회관에서 식사, 커피 한 잔 여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프런트 담당 병사들은 자주 보고 친절히 대해주기 때문에, 저 역시도 가족같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장기휴가라도 가게 되면 즐겁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전역 날짜가 다가오면 아쉬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작년과 올해 각각 한 명씩, 친근했던 프런트 담당 병사가 전역하게 되어 남편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고마워하는 마음을 전해달라고. 간단히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해보면, 그들 역시 고민 많은 평범한 20대 청년임을 알게 되어 더욱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연태, 연준. 평범한 이 이름들을 저는 개인적으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 군인가족이라는, 아직은 어색하기만 했던 호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준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름엔 회관으로 인해 군인가족임에 더욱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국 어디든 군부대가 있는 곳이라면 ‘회관’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주말 남이섬으로 나들이 갔다가, 저녁에 가평의 맹호 회관에서 묵었습니다. 부담 없이 숙박하고 청평 일대를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추석 연휴에는 시댁 가족과 함께 동해-삼척 일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연휴 기간이라 모든 숙박시설의 숙박료가 오르고, 객실 또한 만실이라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동해시 해군 해관에서 숙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뷰(view)까지! 육군과는 또 다른 회관의 분위기와 매우 저렴한 숙박비, 깔끔하게 정리된 숙소에 가족 모두 만족하는 여행이 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군 가족이기에, 전국 어디를 가도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 회관 병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뭔가 모를 든든함과 친근함이 느껴집니다. 밤낮없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 장병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고 지켜봐 주는 군인가족들에게, 회관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 일지도 모릅니다.  

 금요일, 오늘은 삼겹살 데이라 저녁식사를 회관에서 할까 합니다. 이렇게 제 일상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회관 없는 매일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겐 일주일에 공휴일이 3일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회관이 쉬는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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