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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Sep 28. 2020

대통령(들)이 자꾸 쫓아다닌다.

고복 지탄 군인가족 이야기

3년 전 국군의 날, 그리고 며칠 전 국군의 날 행사.

도대체 대통령은 왜 굳이 우리 가족만 따라다니며 국군의 날 행사를 치르는 것일까?



2017년, 미군 업무를 하는 남편 덕에 평택 해군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다. 평택 2함대 아파트에 육군이 거주한 건 우리 가족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해군의 생활에 마냥 신기해하면서, 해군 복지에 마냥 감탄하면서 지내던 나날이었다.

둘째 만삭의 어느 날, 집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쟁이 터졌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국군의 날 행사 기념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전투기가 머리 바로 위로 지나간 것이다. 짜증이 확 났다. 국군의 날이고 뭐고 시끄러워 죽겠네. 애 떨어질 뻔했잖아.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시끄러울 일이야. 그 날 이후로 거의 보름을 전투기 소리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국군의 날 대통령이 온단다. 굳이 여기를........ 왜 하필 이 부대를..................... 진짜 싫다, 싫어.


그리고 대망의 10월 1일, 국군의 날. 무얼 그리 준비했기에 그 난리였나 싶어 자리 잡고 티브이를 틀었다. 걸어서 5분 바로 옆 부대에서 실시간으로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군을 강조하기 위한 멋진 군함들이 보이고 군인들의 사열이 들어섰다. 유년시절의 나는 군과 관련 없는 곳에서 나고 자라서 국군의 날 행사 같은 것을 유심히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혼하고 남편과 몇 번을 보았지만,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는 달랐다. 바로 집 옆이어서인지, 괜히 대통령이 가까이 있다는 기분 때문이었는지 행사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신기하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 문제의 블랙이글스 에어쇼가 시작되었다. 티브이와 머리 바로 위 하늘에서 동시로 에어쇼가 진행되는데, 뭔가 뭉클한 것이 올라와 눈에서 흘러내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진짜 군인가족이 된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불편은 한순간 해소되었고, 감동은 10월의 파란 하늘보다 더 진하게 느껴졌다. 큰 원을 그리다가 어느새 그려진 태극 문양에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울었다.

2017년 직접 찍은 하늘
땅과 하늘과 바다에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를 지켜주는 그들의 힘과 용맹함이 한순간 크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군인 가족이란 이런 거구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갖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2018년은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치렀다고 한다. 애 둘 육아에 정신이 없었다. 티브이도 못 보고 무얼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2019년은 대구 공군기지였다고 한다. 나는 한창 셋째 출산 후 조리 중이었다. 국군의 날 행사 때 아이 재우고 자고 있었던 것 같다.


2020년 9월 어느 날부터, 익숙한 전투기 굉음이 머리 위를 스친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올해 국군의 날 행사를 특전사에서 한다고 한다. 아 왜, 도대체 왜, 대통령은 나만 쫓아다니며 행사하는 거야. 기쁨 반 투정 반의 중얼거림이었다. 나 혼자만의 투덜거림이었지만, 실은 좋았다. 군인가족 자부심을 다시 한번 제대로, 찐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지역 맘 카페에선 '전투기 안 하면 안 되냐', '이럴 줄 알았으면 군부대 있는 동네로 이사 안 올걸 그랬다'부터 온갖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그랬기에 충분히 이해는 되었으나, 한편으론 아쉽고 속상했다. 군인들의 노고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10여 일을 전투기 굉음과 함께 생활했다. 막내는 자다가 울면서 깨기를 반복하였으나, 전혀 밉지 않았다. VIP 대접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하는 그들의 노력이 그대로 느껴졌다. 동네에서는 잠자리보다 헬기와 전투기가 많은 동네라는 소리마저 나왔다. 아이들은 '바람 비행기'라며 그림에 전투기를 그렸다. 행사일이 가까워지자 맘 카페에는 '에어쇼 잘 보이는 스팟 공유해 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추석 연휴로 대체된 국군의 날 행사일, 9월 25일이 되었다. 국군의 날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특전사에서 행사를 치르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특전사 출신이라 굳이 그러는가 싶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일찍부터 티브이를 틀었다. 행사 담당이지만, 코로나로 역설적이게도 행사 날 휴무가 된 남편도 함께 했다. 행사 내내 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헬기 팀 강하 팀 준비라는 메시지가 계속 왔다. 드디어 에어쇼 시간이 되었다. 행사의 절정이다. 나와 남편은 그저 보았다. 어느 순간 나는 창문을 열고 직접 하늘을 보았다. 직접 보는 블랙이글스는 티브이보다 훨씬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멋지다, 최고다" 아가를 안고 외쳐대던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남편 몰래 눈물을 훔쳤는데, 남편을 보니 남편도 나와 같았다. 군인 가족으로선 말못할 뭉클함을 싣고 전투기들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한국전 참전국 국기를 달고 헬기 강하하는 행사에서, 가장 큰 태극기를 가지고 강하하는 남편 동료가 바람 때문에 태극기가 돌돌 말린 채 VIP 앞에 발을 디뎠다. 속상하고 속상했다. 행사 인원들 모두가 우리 아파트 이웃이고 동료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웠다. 이 날만을 위해 하늘에서 수백번 뛰어내렸을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후 이어진 레펠이나 격파, 특공무술 시범 행사들은 무난히 진행되고 행사는 잘 끝났다. 여전히 파란 하늘을 바탕으로 군인가족의 자부심이 더 짙어진 시간이었다. 점심은 오랜만에 남편과 외식을 하고 싶어 가까운 곳으로 차를 타고 나갔다. 행사를 마친 헬기들이 줄지어 복귀하고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발 뻗고 잘 수 있고 이렇게 브런치에 무탈하게 글도 쓸 수 있음을 떠올렸다. 감사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72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 '미래 국군', 출처 국방부 블로그



   


덧붙이는 이야기.

2017년 평택 시절을 마무리하던 11월, 도날드 트럼프, 그러니까 미국 대통령이 우리 남편의 일터에 왔다. 평택 험프리스 기지. 내가 자주 가던 PX에서 미군들과의 만남을 했단다. 뉴스를 보니 익숙함 속 결이 다른 낯선 이가 있었다. 하아... 이젠 하다 하다 미국 대통령까지!(전체적으로 그에 대한 나의 평가는 '불호'이지만, 어쨌든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인 거다.) 다음에 가까이하게 될 국가 원수는 누구일까...라는 건방진 생각을 해 보는 군인가족 아줌마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군인가족이기에 이런 '건방진' 생각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평택 시절 자주 가던 험프리 기지 PX. 한 벽면을 차지한 포스터. 이 곳은 군부대인가 영화관인가. 미군 부심 폭발하게 만드는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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