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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Apr 26. 2021

구독과 좋아요 꼭 눌러 주세요!

아이들의 세상을 생각해 보며

  "엄마, 앉아 보세요. 내가 노래 불러 줄게요~!"

  나는 언제나 우리 집 1호 그녀의 1호 팬이자 1호 관객이다. 정좌하고 앉아 박수를 친다. 박수가 없으면 시작되지 않는 공연이다. 

"구독과 좋아요 꼭 눌러 주세요!"


  노래 시작 전에 그녀가 외친 말이다. 

  "ㅇㅇ아, 구독과 좋아요가 뭔지 알아?"

  "그럼요."

  "구독이 뭔데?"

  "구독은 사랑하는 거예요."

  손으로 하트를 그린다. 윙크도 한다. 입술 쭈욱. 어쭈.

  "그럼 좋아요는?"

  "엄마 좋아요 몰라요? 좋아요는 좋아하는 거잖아요~"

  시원하게 엄지 척해서 내 얼굴 앞에 갖다 댄다. 

  그렇다, 좋아요는 '좋아하는' 거였다. 이런 멍청한 질문이 있나.

  우문현답이 끝나고 나서야 노래가 시작된다. 호(오)늘 밤에~ 아무도 모르흐게~ 너랑 둘이서 둘이서 싸랑을 할 거야하~ 

  우리 집 모든 공연과 쇼의 시작은 "구독과 좋아요 꼭 눌러 주세요!"로 시작한다.






  바야흐로 자기 PR의 시대다, 라는 문장마저 너무나도 옛날 냄새가 난다. 자기 PR, 20여 년 전 대학 신입생 때 들어 본, 그 당시 유행하던 말이다. 자기를 드러내어 알리라는 뜻이다. X세대를 이은 Y세대가 출현하던 시기였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말하며 배꼽을 드러내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자기 피알이 뭔지도 몰랐다. 그말은 나와는 관계없는 말이기도 했다. 중국어과는 고 4의 분위기, 즉 매일 단어 외우고 문장 외우고 쪽지 시험을 보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자기 피알이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그런 시대에 자랐다. 겸손과 양보와 '나서지 않는 미덕'이 존중받던 시대. 그래서 질문이 있어도 손들기 어렵고 눈치가 보이고 앞에서 말 잘하는 것은 반에서 오락부장이나 회장 급에게만 인정되던 교실 분위기를 체득하며 성인이 되었다. 나서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죄악'처럼 느껴졌다. 기자 스터디와 정치학 수업이 겹치던 시기부터는 시대가 변하고 나의 성격도 변하여, 내가 속한 그룹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돋보이려 노력했고 실제로 그러하였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 힘든 '나 깨기의 연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자라고 나를 깨어온 내가, 아이를 낳았다. 내 아이들이 태어난 세상은 '핸드폰'과 'ㅇ튜브'의 세상이었다. 자기 피알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존재 가치도 없는 세상이었다. 




  김희철보다 기억력이 나빠서 그렇지 나 역시 어린 시절 김희철 못지않게 티브이를 보았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을 꿰차고 있었다. 티브이에 빠져들듯이 볼 때마다 아빠가 한 마디씩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 할아버지들은 갓을 쓰고 다녔어. 책가방도 없어서 보자기에 책을 넣고 두 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가고 그랬다. 사탕이고 초콜릿이고 뭐고 없고, 강냉이, 감자, 떡 이런 거 먹으면 맛있는 간식 먹는 날이었다. 티브이가 뭐로, 티브이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니는 참, 태어나자마자 티브이가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복인 줄 알아라."

  아빠의 이야기는 내 귓볼에 닿지도 못 하고 공기 중으로 소멸되었다. 교과서보다 더 재미없고 고리타분했다. 갓을 쓴 사람이라니, 책보자기라니, 강냉이가 뭐지, 아 옥수수. 회색 티브이도 재미없는데, 회색 티브이도 더 지루한 이야기였다. 티브이가 이렇게 내 앞에 있고 리모컨도 있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냥 보면 되는데 복이라니. 하나같이 현실감 제로의 이야기였다. 아, 그러셨군요, 옛날 사람 아빠. 불편한 세상 살아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티브이가 있으니 재미있게 보고 사세요. 



  나의 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핸드폰을 터치하고 클릭하며 자랐다. 세상에 나와서는 물건을 쥘 수 있는 순간부터 핸드폰을 쥐고 빨고 씹었다. 그러다 곧 이것저것 누르고, 화면이 바뀌거나 소리가 나오면 좋아했다. 20개월 전후가 되면 ㅇ튜브 화면 오른쪽 하단의 '광고 건너뛰기' 누르는 것은 우습다.

  이것은 전적으로 엄마인 나의 탓이다. 나는 ㅇ튜브와 넷플ㄹ스로 아이들을 키운다. 육아가 참 쉽다. 티브이로 ㅇ튜브 좋아하는 채널을 틀어주고 나는 폰을 보면 된다. 내가 티브이 ㅇ튜브를 볼 때면 아이들은 내 폰을 본다. ㅇ튜브 채널의 모든 창작자(크리에이터, 라는 단어에 어쩐지 거부감이 있다)들은 하나같이 '구독'과 '좋아요'를 갈구한다. 프로그램이 시작하고 끝나는 모든 순간마다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온갖 애교를 부리고 두 손 빌고 하트를 뿅뿅 날리고 때로는 협박도 한다. 그야말로 진정한 자기 피알, 자기 홍보, 자신의 브랜드화이다. 열심히 창작물을 만들고 세상에 내보내 자기를 드러낸 후 '나를 계속 지켜봐 달라' 애원한다. 그러니까, 나의 아이들은 이 모든 과정과 결실과 '구독, 좋아요'에의 갈급을 출생부터 지켜보며 자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와 세계관이 조금은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구독과 좋아요'를 애원하는 이들의 상황과 심정, 이유를 이해하지 않은 채 그저 보고 받아들이며 세상을 구축해나간다. '구독'이 사랑이고, 좋아요로 애정을 표현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어렸을 때는 핸드폰이 뭐냐, 티브이 말고는 볼 것도 없었어. 티브이도 처음엔 리모컨도 없었어. 티브이 화면 옆에 채널을 돌리는 손잡이가 있었다. 나중에 리모컨이 생겼을 때 얼마나 편했는 줄 아니. 채널도 13개였어. 그거만 봐도 하루가 바빴는데, 너네는 핸드폰으로 전화도 하고 사진도 찍고 ㅇ튜브도 보고.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진짜. 너네 핸드폰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복인 줄 알아라."

  나도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아이들에게 하게 될까.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핸드폰 아니 리모컨 없는 티브이를 보는 세상이 상상이나 되기는 할까.(브라운관, 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도 없겠지) 신문에서 '오늘의 방송'란을 오려 형광펜으로 색칠해 두었던 이야기까지는 차마 못할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하면 더 이상은 '아, 엄마 말도 안 되는 옛날이야기, 지겨운 이야기 그만 좀 해요'라며 귀를 막아버릴 것 같다. 

  아빠와 나의 세상의 차이가, 나와 아이들의 세상의 차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만 같아 어째 씁쓸하다. 아빠에게 조금 미안해지기도 한다. '구독과 좋아요'가 지배한 세상에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의 눈은 나의 그것과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완전히 새로운 눈과 세계관을 가지고 아이들의 세상을 봐야 하는 이유이다.    







  내 초등학교 시절의 꿈은 '선생님, 간호사, 기자'였다. 남자애들은 '대통령, 군인, 의사'였다. 요즘 초등생들의 꿈은 남녀가 없다. '유재석(같은 사람), 건물주' 그리고 'ㅇ튜버'이다. 윙크와 하트를 날리며 구독과 좋아요를 갈구하는 방법과 동시에 영상편집을 배운다. 

  아이들의 이러한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조금 두렵기도 하고 긴장도 된다. 아직까지는 거부감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7살 내 아이가 '구독과 좋아요 꼭 눌러주세요' 하는 말에, 구독은 사랑이고 좋아요는 좋아요라는 아이 앞에서 표정이 일그러졌던 것 같아 자꾸 신경이 쓰인다. 진정한 '자기 PR'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받아들이게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내년에는 학령기에 들어가는 아이를 보며, 단 하나만 부여잡아 보려 한다. 세상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보고 생각할 것. 그 마음으로 느끼고 관찰한 것을 나만의 언어와 글로 이야기해 볼 것. 이 것이야말로 '창작(創作)'의 첫 단계가 아닐까 생각하며. 반드시 ㅇ튜브가 아니어도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이 나를 드러내는 과정을 거치며 자랄 아이가, '거침없는 사고''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것' 두 가지만 갖추길 바란다. 그 배경은 역시나, 독서와 대화와 글이다. 학령기에 들어서는 아이를 바라보며, 잊지 않기 위해 다짐하고 남겨둔다.




  나도 실은, 하트 뿅뿅 날리는 그들 보며 은근히 부러워해왔다. 좋겠다, 저렇게 대놓고 말하고. 지금까지 브런치에 소심하게 이야기해오긴 했다. 구독자, 라이킷, 조회수에 연연하는 사람이라고. 

  에라이, 이 글 쓴 이상 대놓고 큰 소리로 외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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