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체했어요. 거의 매번이에요. 주말에 시댁에 갈 때마다,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맛있는 음식을 동물처럼 먹어대고는 그 날 저녁이나 다음날은 잊지 않고 체해요. 두통으로 시작해서 몸이 무거워지고 자꾸 하품하고 졸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구토를 해요. 투명한 위액이 보일 때까지 토해내고, 한 잠자고 나면 괜찮아져요. 그 과정에서 남편 눈치가 보이고 어머님껜 죄송하고 아이들은 순서대로 들러붙어서 더 환장해요. 자꾸 하품이 나오는 단계까지는 어떻게든 괜찮은 척하겠는데, 졸리고 토하는 순간부터는 사실상 중증 환자가 돼요.
처음에는 그저 '많이 먹어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꾸만 체하고 자꾸만 토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이 구토는 순전히 심리적인 이유라는 것을요. 이번 주도 그랬어요. 몇 달을 숨겨오시다가 정확하게 꺼내신 한 단어에 그만, 모든 음식물은 위에 멈추고 내 몸의 순환 역시 사실상 멈추었어요. '자폐', 두 글자가 나의 '엄마 자아'의 몸과 마음을 멈추게 했어요.
아직도 둘째가 어떻게 온 건지는 모르겠어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는 이론으로는 불가능한 임신이었어요. 어쨌든 기다리던 둘째가 왔어요. 기뻤어요. 정말 기뻤는데, 기뻤던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검고 거대한 우울이 찾아왔어요. 육아 우울과 임신 우울이 합쳐지자 이런 공식이 성립했어요. 우울+우울=죽음.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해서 의식적으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첫째를 어린이집을 보내고 올 때까지 드라마만 봤어요. 화장실을 가는 시간 빼고 앉아서 혹은 누워서 드라마만 봤어요. 기를 쓰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드라마에 집중했어요. 밥도 먹기 싫었어요. 임신 초기에는 안정을 취해야 하니, 첫째 이전에 두 번의 유산이 있었으니 무조건 안정해야 해서 움직이지 않고 드라마만 봤어요. 그 순간은 우울함을 잊었어요. 그러다가 첫째가 오면, 갑자기 웃는 낯이 되어서 놀아주며 음식을 하고 저녁을 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깔깔대다가 같이 씻고 같이 잠들었어요. 왜 이러고 살까,를 생각하다가 죽음 같은 잠에 묻히곤 했어요.
초기 두 달을 그렇게 보내고 이사를 하고는 좀 괜찮아졌어요. 그래도 무거운 몸을 이끌며 뜨거운 여름을 견디고 가을의 한가운데에 아이를 낳았어요. 우울은 늘 여름보다 더 뜨겁고 가을보다 더 처연했지만, 어찌 됐건 우울에 익숙했어요. 익숙했다는 말이, 좋아졌다는 뜻은 아니라고 꼭 쓰고 넘어가야겠네요. 하여튼, 둘째는 예뻤어요. 첫째의 첫 느낌은 '못생겼다'였는데, 탯줄도 안 끊고 내 배 위에 쑥 올라온 두 번째 생명체는 보자마자 '내가 천사를 낳았구나'였어요. 우는 소리도 작았어요. 아기가 이렇게 작게 울 수도 있구나.
둘째는 너무나도 순했어요. 그래서 쉽게 키웠어요. 언니처럼 엄마만 찾지도 않고 혼자도 잘 놀고 쉬를 하거나 응가를 해도 그저 잘 놀았어요. 내 목을 꼬집는 애착 행동마저도 성가시지 않았어요. 엄마를 찾지 않고 잘 노는 아이 덕에 나는 종일 폰을 봤어요. 때가 되면 먹이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재울 뿐이었어요. 엄마라기보다 '양육 로봇'이었어요. 그래도 잘 크는 아이가 예뻤어요.
뒤집기부터 느리고 잡고 서기, 걷기, 말하기 다 느렸지만, 어쨌든 모든 발달 과정을 잘 거치고 있었어요. 아, 쟤는 자기만의 속도가 있구나, 재촉하지 말아야지. 재촉했다가는 그르칠 아이 같았어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육아의 99%는 '기다림'이라고 어디서 본 말을 잊지 않으며, 나는 잘 기다려 주는 엄마라고 스스로 뿌듯해하며 마냥 기다렸어요.
지난해 여름, 어린이집 방학 기간에 같은 아파트 둘째 친구 엄마 모임이 있었어요. 어른 넷에 아이가 아홉이 모였어요. 대화는 불가능하고 그저 같은 공간에 13명이 있는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어요. 모든 아이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놀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둘째가 안 보여요. 한참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요. 겨우 찾아낸 아이는, 장난감 방구석에서 장난감 사이에 파묻혀 있었어요.
"ㅈㅇ아, 여기서 뭐해?"
늘 그렇듯 대답 없이 큰 눈만 깜빡거려요. 자주 보던 표정이에요. 물이 먹고 싶어? 물으면, 대답보다 컵을 찾거나 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아이, 쉬하고 싶어? 물으면 혼자 화장실로 뛰어가는 아이, 왜 울어? 물으면 대답보다는 멍든 곳에 손을 갖다 대는 아이. 말하지 않고 표정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이여서, 그저 말하기 싫은가 보다, 기다려야지 하고는 또 기다렸어요.
10개월째 똥을 팬티에 싸면서도 그래요. 한결같이 '엄마 똥 쌌어' 하고는 큰 눈만 껌뻑거려요. 혼자인 장소에 -대부분 구석진 곳에 가서- 서서 응가하고는,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어떤 때는 '엄마 똥 쌌어'도 말하지 않아요, 제 곁에 우물쭈물 다가서면서 냄새로 표현해요. 달라진 것이 하나 있긴 해요. '왜 팬티에 응가해? 변기 응가가 싫어? 변기 응가가 왜 싫어?'라고 물으면 예전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변기에 응가하면 라푼젤 드레스 사 주께에'라고 소리 지른다는 것이요.(제가 매번 하는 말이었어요, 그걸 통째로 외워서 말해요) 10개월째 팬티 응가를 치우고 팬티를 빨면서 저의 '피로'만 커지는 줄 알았는데, 엄마에 대한 아이의 미안함도 똑같은 크기로 커지고 있다는 것은 차마 몰랐어요. 그저께 엉덩이 씻기는데 '엄마 힘들어?'라고 묻는 것을 듣기 전까지는요.
"그... 천재들... 천재들 그 단어 뭐지.. 나이 들면 단어가 생각이 안 나.... 아, 자폐! 쟤가 살짝 그런 게 있어. 검사 좀 해봐. 너는 참 느긋해. 나 같으면 일찍이 데려가 보고 고치고 했어. 쟤 저러는 거 엄마가 느긋해서 그래."
자폐, 자폐, 자폐. 임신 초기 나의 우울과 늦은 발달을 '기다림'으로 두는 미련과, 언어 지연에도 자극 주지 않는 엄마의 둔감함과 게으름, 이 모든 것이 콜라보를 이루고 시너지를 일으켜 둘째 아이가 '자폐' 소리를 듣게 두었어요. 사실 시어머니는 한두 번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초등 저학년 교사이셨던 어머님은, '저렇게 두다간 학교 가면 선생님들이 포기한다'라는 류의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럴 때마다 혼자 속으로 '모든 아이는 다 때가 있고, 저 아이는 자기 속도로 크고 있어요'라며 생고집을 내세웠어요. 얼굴만큼은 미소 장착, 목은 끄덕끄덕을 잊지 않고서요.
이번에 어머님 말씀이 콱 박힌 이유는, 며칠 전 어린이집 상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은 아주 조심스레 '언어치료만이라도'를 권하셨어요. 언어 치료 정도는 권할 수 있지만, '만이라도'는 마음에 거슬렸어요. 최소한 언어치료, 더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 그 다음날 놀이터에서 만난 어린이집 친구들의 말을 듣고 너무나도 놀랐어요. 아니, 다섯 살이 이렇게나 말을 잘한단 말이야? 그 친구뿐만이 아니었어요. 대부분의 다섯 살들이 그 정도로 말을 했어요. 생각해 보면 첫째도 다섯 살 때는 말을 잘했어요. 이건 어쩜 말만 늦은 게 아닐지도 몰라,라고 생각한 다음 날 '자폐'라는 말을 들었어요.
브런치에 쓰려다 접은 글 제목 중에 하나가 '위안전의 반격' 또는 '위인전 거부증'이었어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위인전이 미워 보였어요. 위인전에 나온 이들을 보니, 어린 시절 뭔가 '조금씩' '이상한' 사람들이었어요. 에디슨은 알을 품었고요, 아인슈타인은 말이 느리고 발달이 늦고 학교에서도 낙제를 받아 왔대요. 와, 이 정도 똘끼(?!)는 있어야 위인이 되는구나. 부모들은 얼마나 속이 썩었을까. 이런 행동을 보고 배울 테니 위인전은 읽히지 말아야겠다, 과거의 위인은 요즘 시대에는 돌아이 소리 듣기 딱 좋다, 라는 생각이 가득가득했어요. 그래서 집엔 지금도 자연관찰이나 이야기 책만 있어요.
그랬던 제가, 어머님의 말에 충격으로 터질 듯한 심장은 모른 체하고 웃으며 말씀드렸어요.
"어머니, 쟤는 커서 위인이 될 거예요. 두고 보세요."
이틀이 지난 오늘, 내 폰의 검색 기록은 '자폐'로 가득해요. 자폐 증상, 자폐 원인, 자폐 치료, 대학병원 아동발달 검사, 발달 클리닉, 아동발달검사비용, 아스퍼거 증후군, autism, 정신의학과. '왜 기다린다고 아이를 방치하여 이 지경으로 두었을까'라는 후회와 '심각한 것도 아닌데, 아이의 속도에 괜한 액셀을 밟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쉬지 않고 내 마음을 번갈아 차지했어요. 용기 내어 전화한 대학병원은, 가장 빠른 예약이 10개월 후였어요. 6개월 대기까진 각오했는데, 2022년 2월이라니. 하아, 우리나라에 잠재된 위인이 이리도 많은 건가. 뒤늦게 다른 대학병원들에 전화 예약을 해두었어요. 내일이면 두세 군데 대학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올 거예요. 가장 빠른 정신의학과 예약을 잡아주기 위해서요.
10여 년 전 친구 결혼식에서 친구 엄마가 한 말이, 결혼하고 난 이후 자주 떠올라요.
"얘들아, 가장 어려운 게 뭔지 아니. 평범하게, 남들처럼 사는 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거야."
자신의 딸이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게 뿌듯해서, 딸의 친구들도 얼른 '평범한 삶'을 살길 바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어요. 그때는 '무슨 저런 아줌마가 다 있어' 했지만, 사실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에요. 한평생을 무탈하게,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아내는 것, 바깥에서 봤을 때 큰 굴곡 없는 삶을 사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거의 매일 생각해요.
어느 병원이든 발달검사 예약 날이 올 때까지, 아인슈타인이나 빌 게이츠를 키우는 마음으로 아이를 키울 거예요. 검사를 해서 아이가 그런 끼?! 가 있으면, 진짜 위인으로 키우면 되는 거예요. 필요한 조치와 치료를 받으며,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내재된 특유한 힘을 존중하며 키울 거예요. 자신이 집중하는 세상을 더 크게 키워주며 자라게 할 거예요. 검사 결과에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한다면, 자라면서 충분히 호전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아요. 평범하게, 남들처럼 사는 그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저는 해내는 거니까요. 아이 셋을 무탈하게 키워내는, 엄청난 일을 해내는 거니까요.
지금은, 꼬마 위인을 키우는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볼 거예요. 아이의 모든 이상 행동을 유심히 보고 기억해둘 거예요. 나중에 아이에게 '네가 어렸을 때 이러더니, 결국 잘 자라서 이런 큰 일을 해냈구나'라고 말해줄 거예요.
저는 지금, 위인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이 글은, '자폐아'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을 갖고 쓴 글이 절대 아닙니다. 그들의 특성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저 역시 그러한 성향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임을, 부모가 될 수 있음을 염두하고 쓴 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 상처를 받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이 부분을 빌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