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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y 18. 2021

삶과 글쓰기에서 배운 12가지 진리

Anne Lamott와 Elizabeth Gilbert의 TED

  셋째를 임신하고 둘째가 어린이집을 나가기 시작한 3월, 영어 스터디를 시작했어요. 테드를 공부하고 싶은데, 혼자 하면 오래 못할 게 뻔하니 사람을 모았지요. 한 사람씩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테드를 정하고, 받아쓰기를 하고 돌아가며 읽었어요. 그 모임에서 제가 처음으로 정한 주제가 바로 이 강연이었어요. 제목만 보고 내용은 듣지도 않고요. 글쓰기와 삶에 대한 내용이라니, 더 생각할 것도 없었지요. 받아쓰기를 준비하면서는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싶었지만, 이미 어쩔 수 없었어요. 일주일을 겨우 준비하고 마무리를 하면서 '언젠가 시간이 되면 반드시 다시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2년이 지난 2021년 3월, 셋째도 어린이집을 나가기 시작했네요. 약속처럼 다시 이 테드를 보게 되었어요. 아끼는 동생이 외국어3분낭독을 제안했고, 저는 고민할 것도 없이 이 강연을 선택했어요. 천천히 다시 둘러보는 이 강연은, 제게 2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다가왔어요. 지금의 저는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지요. 글을 쓰면서 다시 듣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강연에는-굳이 그녀가 베스트셀러가 아니었다 해도 제게 가슴 깊이 남을 강연이긴 하지만요-, 삶과 글쓰기에 관한 깊은 통찰이 웃음과 함께 전해졌어요. 그래서 나의 글쓰기의 언젠가, 글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질 때에 이 강연을 남겨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글은 늘 그대로인데 내 마음 혼자 이랬다 저랬다 할 때 이 강연을 떠올려야지. 

  사실 글은 늘 즐거운데, 괜히 비 오는 며칠 동안 몸이 유난히도 아팠어요. 이유모를 근육통으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와중에 자꾸 문장은 떠올랐어요.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도 모를 문장들에 짓눌려 이렇게 아팠던 건가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등원한 월요일 아침부터 앤 할머니를 찾은 거예요.



 




  언젠가 한 번은 정리해두고 싶었던, 좋아하는 미국 할머니 작가 Anne Lamott의 테드 강연을 소개하고자 해요. 가장 자주 듣는 테드이기도 하고, 글을 쓰는 이들에게 소개도 하고 싶어서 적습니다. 아, 제 맘에 들었던 내용 위주로, 한국어 자막을 기본으로 하되 저의 의역이 마구 들어가 있을 겁니다.



  앤 할머니는 많은 이들이 불안해하고 너무 많은 일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며 맞다고 생각하는 목록을 적어보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다음 12가지예요. 

1. 모든 진실은 모순이라는 것(All truth is a paradox). 삶은 아름다운 선물이지만, 삶이 펼쳐지는 이 곳은 민감한 이들에게는 꽤 좋지 못한 곳이기도 하지요.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아름다움, 극도의 가난, 홍수, 아이, 모차르트, 여드름 이런 것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2. 대부분 것들은 전원을 껐다 켜면 다시 잘 작동합니다.(Almost everything will work again if you unplug it for a few minutes) 너 포함!(including you)


3. 장기를 하나 바꾸지 않는 이상, 당신밖(내면적인 것과 반대되는 개념의 외면)에 지속될 것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라고 어렵게 말했는데, 영원한 건 없다는 의미예요.) 마음속 평정과 평안은 살 수도, 이룰 수도, 기약할 수도 없는데, 이는 너무 가혹한 사실이라 억울할 정도예요.

다른 이에게 문제가 있어도, 아마 우리는 해답을 갖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는 크게 도움이 못 됩니다.(Our help is usually not very helpful. 대문 사진입니다) 너무 많이 돕는 걸 멈추세요.(Stop helping so much.) 모든 이들에 대한 도움과 선함을 걷어내세요.(Don't get your help and goodness all over everybody.)

4. 모두가 혼란스럽고 상처 입었으며 집착하고 두려워합니다. 모두들 그러니까, 여러분 내면을 다른 사람의 외면과 비교하려 하지 마세요.(Try not to compare your inside to other people's outsides.) 그러면 이미 좋지도 않은 여러분 마음만 더 안 좋아집니다.(우레와 같은 웃음과 박수~)

5. 카카오 75% 초콜릿은 음식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Chocolate with 75 percent cacao is not actually a food!) 그건 뱀 미끼나 의자 다리 균형 맞추는 데나 쓰이지, 먹는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네요.

6. WRITING. 여러분이 아는 모든 작가는 정말로 최악의 초고를 쓰지만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지 않아요.(Every writer you know writes really terrible first drafts, but they keep their butt in the chair.) 그게 삶의 비밀이에요. That's the secret of life. 어쩌면 그게 여러분과 그들이 다른 점일 겁니다. They just do it. 그냥 쓰세요. 여러분 삶의 모든 것이 여러분 것이고 그것을 쓰시면 됩니다. 만약 사람들이 그들 삶에 대해 더 따뜻하게 쓰길 원한다면, 그 사람들 행동을 잘해야 돼요. (If people wanted you to write more warmly about them, they should've behaved better.)

  여기서는, 그저, in your own voice와 that's also why you were born. 이 구절과 문장만 기억에 남습니다. 너의 목소리로, (쓰기 위해) 태어난 거야,라고 60대의 선배 글 쓰는 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준 것 같았어요. 타자를 치는 지금 제 손도 조금 떨리는 것만 같네요. 나의 목소리로 써내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니, 어쩐지 나를 동그랗게 안아줘야 할 것만 같아요. 

7. 출판과 잠깐의 창조적 성공은 여러분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에요.(Publication and temporary creative successes are something you have to recover from.) 하지만 첫 번째의 내용처럼 모든 것은 역설적이라서, 여러분의 출판물을 사람들이 읽고 듣는 것 또한 기적입니다. 출판이 여러분을 힐링할 거란 생각은 접으세요. 하지만 글쓰기는 그럴 수 있어요.(But writing can.)


8. 가족. Families.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와는 별개로 가족은 너무 어렵고 어렵고 어려워요. 다시, 첫 번째 진리를 생각하세요.(paradox!) 가족이 모이면 여러분은 죽이고 싶거나 죽고 싶어 져요. 지구는 용서를 배우는 학교이니 용서함으로 시작하고, 그건 저녁 식사 식탁에서부터 할 수 있어요. 

9. 음식. 덜 먹는 게 좋습니다. 제 말이 어떤 뜻인지 당신들은 잘 알 거에요. Food. Try to do a little better. I think you know what I mean.(웃을 시간을 한참 주는 여유까지..)

10. Grace. 은총입니다. 은총의 신비란 하느님이 헨리 키신저, 블라디미르 푸틴과 저를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거지요. 말도 안 돼요.(Go figure)

웃음은 탄산이 함유된 거룩함이에요. 웃음으로 우린 숨 쉬고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어요. 기억하세요, 은총은 언제나 마지막에 일어난다는 것을요. 

크리스천의 은총을 말하고 싶었으나, 비기독교인들을 위해 '웃음'을 은총으로 대신한 여유가 느껴졌어요. 삶의 은총, 그것의 다른 말은 웃음임을 잊지 말자고 저에게 다짐했어요. 

11. 신이란 그저 선함을 의미해요, 무서운 게 아니에요. 지구 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의 예배에서 교훈을 얻는 사람이래요. Go outside, Look up. Secret of life. 나가서 찾아보세요. 삶의 비밀을요.(열한 번째 내내 '자연으로 나가라, 보고 배워라'라고 이야기해요. go outside, look up. 그곳에 신성(神性)이 있다면서요) 

12.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Death. 죽음의 상실은 극복하기 힘들지만, 우리가 마음속에서 꽁꽁 싸 두지 않는다면, 그들은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서 영원히 다시 사는 겁니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처음 한 말 기억하시나요? '네 신발을 벗어라.(Take off your shoues.)'입니다. 왜냐하면, 이 곳이 거룩한 곳이거든요. 죽음은 출생만큼 성스럽다는 걸 나이가 들면 깨닫게 됩니다. 걱정 마세요, 삶으로 직접 깨달으시면 됩니다.(Don't worry, get on with your life.)


또 다른 게 생각나면 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If I think of anything else, I'll let you know. Thank you.)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어요. 12가지 진리라고 하면, 마지막은 '이 진리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보고 듣고 외워라'로 마음이 웅장해지게 만들기 마련인데, 이 분은 또 다른 게 생각나면 말해준대요. 아무렇지도 않게, 옆집 할머니가 말해주듯 가벼운 마무리가 더 와 닿았던 강연이었어요. 나도 이렇게 유머러스한 여유 가득 품고 있는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이 강연을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고른 다음 테드는 Elizabeth Gilbert였어요. 네, 맞아요, 그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작가요. 저도 들으면서 소름이 끼쳤어요. 정말 그냥 골랐는데, 이런 대작가의 테드 강연이라니. 주제는 'Your elusive creative genius(찾아내기 힘든 창조적인 '지니어스')'였어요.(한국어 번역은 '창의성의 양육'이에요) 이 강연은 그녀가 'EAT, PRAY, LOVE'로 대성공을 거둔 직후 다음 출판을 앞둔 시기에 이루어졌어요. 그녀의 다음 출판 성공에 대한 압박이 충분히 느껴졌어요. 

  결론은, 

'지니어스(창조적인 영감)'는 변덕스러운 것이어서 내게 올 때는 감사히 여겨 그를 받아들여라. 그렇지 않을 때는, 그렇다 해도 그저 너의 일을 해라.



두려워 말고 그저 당신의 일을 하세요, '영감(genius)이 오지 않으면, 그렇다 해도 여전히 당신의 일을 하세요.


  강연의 마지막을 낭독할 때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어요. 말을 하면서도, 말로는 표현 못할 그 무엇이 뜨겁게 올라와서요. 감동(感動). 느끼는 바 그대로 움직인 마음, 그것이었어요. 감동이 일으킨 마음의 파동이 제 입술까지 전해졌었나 봐요. 


  저도 그런 날이 오겠지요. 마를 날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글쓰기의 샘이 언젠가 바닥을 드러내는 날이 올 거예요. 노트북은 쳐다보고 싶지 않은 날이 올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여전히 나의 일을 해야겠지요. 나의 이야기를 쓰고 나의 시선이 가닿은 곳을 적겠지요. 그저 묵묵히 써야 하겠지요. 그 날을 위해, 앞서간 이들이 알려주었어요. 그저 너의 일을 하라고, 그러다 보면 삶과 글쓰기의 진리가 미래의 어느 날 내 속에서 새겨질 거라고. 


  그때까지 그저 써보려 해요. 그 여정에 조금의 힘만 보태어 주길 바라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이요.  





사진은 테드 강연 캡처입니다. 저작권 문제될 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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