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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un 08. 2021

글이나 써!그래서, 그저 쓰겠습니다

둘로 나누어진 생활에 '다리' 잇기

  '언젠가'였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볼 사람들. 살다 보면, 죽기 전에 언젠가.

  나 역시 몰랐다. 그 '언젠가'가 이렇게 빨리가 될 줄은. 글과 생활, 글 속의 지인과 생활 속의 지인, 글 쓰는 나와 생활을 살고 있는 나 모든 것을 이어 줄 만남이 이렇게나 빨리 올 줄은.







  우리는 우리의 모든 판단과 행동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번이 그랬다. 그녀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육아 휴직이 끝나가고 있었다. 복직까지 D-100. 그러니까, '시간'이 그녀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그런 그녀가 나를 건드렸다. 늘 대기 상태였던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무려 저 남쪽에서 무려 기차를 타고 와준다는 데, 내 한 몸 움직이는 것쯤이야.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그저 생각이었다. 결정이 쉽지 않았을 뿐, 한 번 결정되니 그 후의 모든 것은 막힘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이가 나뿐이 아님을, 그리고 쉽게 말로 꺼내지 못함을. 그러면 어쩌겠나, 내가 꺼내야지. 그래, '다리'가 되어야겠다 싶었다. 쉽게 행동으로 옮기기엔 커다란 감정이 행동을 주저하게 하는 이들이라면, 그러나 그 마음이 너무나도 큰 그들이라면, 내가 그들의 '행동'의 다리가 되어 주어야지.

  주제넘은 생각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없어도 그들은 만나려면 만날 수가 있었다. 그만큼 서로가 아끼고 있음을 브런치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사이에서 그들의 글을 읽고, 때로는 읽지 못하며 지내고 있었다. 읽게 되면 울음을 그칠 수가 없어서, 내가 징징 거린 일상의 지난함은 그저 그 '따위'가 되어버리게 되어서, 내가 얼마나 볼품없고 작은 사람인지를 확인하게 되어 버려서 읽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들은 읽지 마라고 했다. 그 시간에 잠이나 자요. 이 좋은 날 우울한 글 보지 마요. 그래서, 그 말을 듣고 그들이 최대한 건조하게 서술한 고통을 피하고 가까이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나 못난 '고통회피자'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서로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그들이 참 좋은 사람들인 것이 글에서 너무 티가 나서, 그들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벗어나기는커녕 더 가까워지고만 있었다.

  그들의 글과, 그들과의 대화는 달랐다. SNS로 일상을 주고받는 그들은, 글 속의 그들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그런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글 속에서 우는 이들은 일상을 지내는 이들과 다르구나, 그런 면에서 나와 같구나. 그러면 우리, 만나도 즐거울 수 있겠다. 글 속에서 우는 이들이 대화 중간중간 툭툭 튀어나와도, 언제든 일상을 사는 이들로 바로 돌아올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걸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진샤 아니었으면 우린 그저 서로 그리워하기만 했을 거야."

  나에게 해주신 말이었다. 나는 한 일이 없었다. 그저 이 곳까지 와준다는 말에, 장소를 정하고 시간을 정하고 예약을 한 것뿐이었다. 내가 보고픈 이들을 한 군데 모이게 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만으로 분에 넘치는 감사를 받았다.

  글 쓰는 이들은 특유의 낯가림들이 있었고, 나는 다행히(?!) 그걸 벗어낸 후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들의 낯가림과 쑥스러움의 자리에 긴장과 설렘과 흥분만 채워주면 된다. 그것은 내게는 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들과 만나 상기된 얼굴을 보고 설렘 가득한 눈을 마주치는 것.

  기차를 타고 온 작가님도 부담감을 숨기지 않았다. 기차역에서 만나서 식당으로 같이 가기로 했는데, 기차를 내리며 톡으로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라고 보내왔다. 이렇게 귀엽게(?!!) 자신의 마지막 낯가림을 최대한 부풀렸다. 어딜 도망가! 도망갈 타이밍을 놓친 작가님과 나는 서로 알아보았고, 또 다른 한분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 눈과, 하얀 동그라미 가득한 수국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렇게나 선물 사지 말라고 일러도 다 헛수고였다. 마스크를 벗는 것도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마스크를 벗으며 우리는 서로를 보고 또 웃고 괜히 넘치는 눈물을 닦아냈다. 이유는 잘은 모르겠다. 눈물이 그렇게 났다. 우리가 드디어 만났구나, 우리가 이렇게 보았구나, 이런 류의 감동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무엇이 있었다. 감격을 표현할 방법도 찾지 못하고 그저 감격스러워하다가 겨우 메뉴를 주문했다. 메뉴를 넘기는 내 손이 떨린 게 티가 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분명히, 두 분의 만남을 잇는 '다리'를 자처했다. 두 분이 서로의 글로 나눈 우정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는 어느새 두 분은 '글'로 내게 다리를 연결해 주었다. 그 다리는 내 안의 두 자아도 연결해주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나의 생활은 양분(兩分)되어 있었다. 나의 일상은 '글'과 '아이들' 둘 뿐이었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엔 글만 생각했다. 운동을 하고 시를 필사하고 외국어를 공부했으나, 그마저도 글의 소재를 찾는 시간으로 여겨졌다. 글을 쓰기 위해 운동하고 글을 위해 필사하고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글에 함몰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글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노력 조차 글을 위한 노력임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후 늦은 시간이면, 글은 OFF 되고 동시에 아이들이 ON 된다. 이때부터 잠이 들 때까지는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말은 다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잠들고 아이들과 함께 눈떴다.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면 다시 글이 ON 되고, 육아는 OFF 되었다.

  글을 분기점으로 내 생활이 나누어지자, 모든 것이 이분화되었다. 내가 만나는 이들도 브런치 안의 이들, 브런치 밖의 이들로 나누어졌다. 브런치 안의 이들은 소리(聲)는 없으나, 각자 내면의 시끄러운 소리(想)를 내느라 그 어느 곳보다 소란스러웠다. 그 소리를 덮고 아이들을 만나면, 내 곁엔 놀이터의 소리로 가득했다. 마트 점장님과 왜 우유 안 들어왔냐고, 감기는 어떠냐고 그런 말을 주고받는 게 아이 이외의 대화의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가장 극명하게 둘로 나누어진 것은 '나' 자신이었다. 글 쓰는 나와 엄마로서의 나. 둘 다 모두 '바빴다'. 글 쓰는 나는 엄마로서의 나에게 미안해하고, 엄마로서의 나는 글 쓰는 나에게 미안해하며 그저 바빴다. 두 자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조금씩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글 쓰는 나와 엄마로서의 나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어디에도 두 자아를 서로 만나게 하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며 동시에 엄마였는데, 이런 나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주는 이들이 주변에는 없었다. 나의 상황과 처지를 알고 있는 이들은 있었으나, 내 마음 바닥 자리에 같이 앉아 글에 대해 말하고 들어줄 이들은 없었다. 글에 대한 마음을 꺼내고 말릴 곳이 오로지 '글' 뿐이었다. 그래서, 나의 '글로 이루어진 섬'은 매일 하루만큼씩 더 좁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서로의 '글 섬'에 다리를 놓았다. 누구도 먼저랄 것 없이 '어디 가서 이렇게 글 쓰는 이야기를 나누겠어요'라며 끄덕였다. 글 쓰는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의 휘발성은 더욱 강해졌다. 글을 쓰는 마음과 글 쓰는 자신에 대한 대화. 그렇다, '대화'이다. 글로는 이 곳과 저곳에서 막히고 풀리지 못했던 그런 마음. 우리는 서로의 눈빛과 웃음과 손짓에서 막힌 곳들을 뚫었다.

  나는 서로에게 다리를 놓는 순간을 느끼며 동시에, 내 안의 글 쓰는 이와 엄마로 생활하는 이 두 자아에게도 다리를 놓았다. 글 쓰는 자아와 친한 이들을 내 생활에서 만난 것이다. 내 생활 속에서 글 쓰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글과 생활의 교차점, 글 안의 지인이 생활의 지인이 되는 지점 그곳에서 그들은 튼튼한 다리를 놓아주고 있었다. 내가 디디는 글 섬이 넓어지고 확장되는 그 순간에, 그들의 눈물 어린 웃음이 있었다.


  기차 시간이 되었고 버스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생활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12시가 되면 열심히 뛰어야 하는 신데렐라의 마음가짐으로, 브런치 진샤에서 애데렐라 엄마로 변신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기 직전까지, 나의 버스를 기다려주시는 동안에도 내 어깨에 손을 올려주시던 분과 '글 쓰는 삶'에 대해 나누었다. 신기했다. 글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는 데도 끝이 없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눈물도 끝이 없었다. 눈물과 비슷하게 맺히는, 버스 창가의 빗물을 바라보며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다행이었다, 눈물 넘친 날 비가 와서.



 




  외로움이 가신 자리에 설렘과 긴장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외로움이 안개 같았다면, 그래서 주변의 것들을 조금씩 가리고 흐릿하게 만들었다면, 설렘과 긴장은 솜사탕 같다. 손에 잡히고 달짝지근하다. 돌돌 말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솜사탕 같은 설렘과 긴장을 이 글에 묻혀 두고, 읽는 이들에게 두고두고 같이 먹자고 말하고 싶다. 함께 앉아 솜사탕 뜯어먹으며 글에 대한 이야기 나누자고, 우리가 '글'이라는 다리로 이어져 있으니 안심하고 기뻐하며 계속 함께 써나가자고.




 


저 역시, 만남의 순간들이 모여 감정의 결정(結晶)을 이루는 순간이 올 때 이 글을 쓰려고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남의 순간에 대한 글을 기다리신다는 분이 떠올라 씁니다. 함께 했던 순간의 두근거림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 안에 담아둡니다. 내가 여전히 글 쓰는 이임을 잊지 않기 위해 다짐하며 씁니다. 글로 이어진 모든 인연에 감사하기 위해, 감사를 드러내기 위해 씁니다. 웃음 뒤에 감춘 그 말의 떨림을 받아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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