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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ul 19. 2021

세 가지 진리

< 작당모의(作黨謨議) 3차 문제(文題) : 장마 >

매거진 발행작가: 진샤(https://brunch.co.kr/@1kmhkmh1/153)



   유난한 한숨이었다. 옆사람이 흘끔 쳐다보기에 습관처럼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선 사과도 감사도 합장이면 해결된다.

   석철의 말이 맞았다. 지금이라도 뛰쳐나갈까 싶지만, 빌어먹을 장맛비가 거세다. 집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비 예보는 확인하지 못했다. 기상예보를 챙길 마음의 겨를이 없었다. ‘아닐 거야’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이곳에 다시 발을 디뎠다. 가짜이길 바라는 그 말의 진위부터 확인해야 했다. 주헌은 마음에 구멍 난 곳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하릴없이 걸어 다니는 스님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확 머리나 깎아 버릴까.



   “삶은 고통의 바다입니다. 고해(苦海)라고 하지요. 고통이 아닌 것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고통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초희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고 일주일 후 찾은 사찰이었다. 그녀는 ‘재미없다’라는 네 글자로 주헌을 무력하게 했다. 단순한 사람이라 좋고 재미없는 사람이라 싫다는 건 어딘가 말장난처럼 느껴졌다. 어디라도 숨어야 했다. 첫 연애이고 첫 이별이었기에 감당이 되지 않았다. 감정이라곤 슬픔과 좌절뿐이었다. 거적때기 같은 감정에 휘둘려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밥숟가락을 들다가 툭툭 밥 위에 눈물을 얹었다.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휴지로 눈물만 닦고 나오길 반복했다.

   조용한 곳에서 삼 일을 울고 나면 눈물이 바닥을 보이지 않을까. ‘가까운 템플스테이’라고 검색창에 입력했다. 심적사(深寂寺). 순전히 이름 때문에 선택한 곳이었다. 명진 스님을 만난 곳은 심적사 탑 앞이었다. 그곳에서 주헌은 소리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 덕에 겨우 ‘꺼걱꺼걱’ 정도의 소리로 울 수 있었다. 명진 스님이 먼저 주헌에게 합장을 했다. 주헌이 합장으로 인사하는 내내 초희는 계속 주헌 마음의 우물에서 눈물을 퍼올리고 있었다.



   주헌의 눈물이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명진 스님은 ‘모든 것이 고통이다’고 입을 열었다. 주헌은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스님들은 저 빛나는 머리로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밝혀 보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주헌의 주변에 고통이 아닌 것이 없었다. 승진은 연속으로 동기들에게 뺏기고 있었다. 밥만 먹어도 된다는 대리 아니던가. 아버지는 쾌차가 없었다. 병원에 누워 계신지 일 년이 다 되어가도록 더 나빠진 것만 같다. 그 일 년 사이 전셋값은 이사를 부추길 정도로 뛰어버렸다. 병원에 누워만 있는 아버지 신세가 부러워질 정도였다.

   무엇보다, 고통의 근본 원인은 초희였다. 여자나 연애 같은 건 관심 없는 주헌에게 ‘나에게 관심 갖게 해 주겠어’라며 맹랑하게 다가왔던 그녀였다. 큰 눈만큼이나 흰 피부가 좋았고, 웃을 때 커지는 목소리만큼이나 이것저것 잘 먹는 식성이 좋았다. 아무데서나 잘 자고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하는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헌의 마음 마당 면적을 넓히고 꽃을 피우고 햇볕을 내리쬐게 하던 그녀는, 하루아침에 괴물이 되어 정원을 망치고 나갔다. 꽃을 짓밟고 마른번개만 던지고는 사라졌다. 괴물이어도 좋으니 정원에 묶어 두려 하자 ‘재미없어’라며 폭우를 쏟아부었다. 그러고 보니, 명진 스님을 만난 즈음도 장마가 시작된 때였다.



   “모든 것은 인연이 잇닿아 생기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고정된 것이나 영원한 것은 없어요.”

   문자는 하필 같은 날에 왔다. ‘아버지가 안 좋아지셨어’에 이어 ‘저녁에 병원에 들러’라고 왔다. 혼자 병실을 지키는 누나는 잠든 아버지가 깰까 봐 주로 문자를 보냈다. 두 시간 후쯤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 문자를 보내왔다. 석철이었다. ‘오랜만이다. 명진 스님 알지.’ 알다 뿐이겠는가. 얼마 전까지도 연락을 했고, 그가 알려 준 불가의 세 가지 진리는 아직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명진 스님 자살하셨다는데.’

   사 년 전 템플스테이에서 만나 친해진 석철도 명진 스님을 잘 알고 있었다. 주헌과 석철, 명진은 모두 같은 해에 태어났다. 삼 일간의 템플스테이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헌은 고작 연애 실패였지만, 석철은 부모님 장례를 거의 동시에 치르고 온 후였다. 명진 스님도 어린 시절 사고로 가족을 잃고 절로 들어왔다고 했다.

   템플스테이 마지막 날, 주헌은 명석해 보이는 명진 스님에게 학업을 권했다. ‘불교를 주지 스님 말씀으로만 배우지 말고 교수님한테 배워보시는 건 어때요. 마음공부는 꽤 하신 것 같은데, 학문으로도 불교 공부를 하시면 뛰어난 스님이 되실 것 같아요.’ 명진은 대답 대신 미소를 보였다. 역시나 고통 따윈 없는 미소였다.

   다음 해 3월 주헌은 낯선 문자를 받게 되었다. ‘명진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세상이 공부하는 불교를 접하러 왔습니다. 이곳에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겠습니다.’ 주헌은 문자도, 문자의 주인도 반가웠다. 자주 연락했다.

   ‘불법이 아니라 어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와 빠알리어, 영어와 티베트어, 독일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일본어는 한자 덕분에 어렵지 않습니다’, ‘법당의 불경과 강당의 불경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스님의 가르침에는 지혜가 있고 교수님의 가르침에는 논리와 이론이 있습니다.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아침 명상 중에 수마(睡魔)에 들었습니다. 학업과 수행의 중도를 잘 갖추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주헌의 예상이 맞았다. 그는 명석하고 명민했다. 얼핏 들어도 어려워 보이는 과정을 묵묵히 해나갔다. 학기마다 성적표를 찍어 보내주었다. 그는 학업 체질이었다. 주헌은 더 나아가 보라고 권했다. 명진 스님의 성실함과 영민함이면 석사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한동안 연락이 없어 궁금해하던 때였는데,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사 년 만에 다시 찾은 심적사는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천왕문과 대웅전, 극락전과 관음전, 탑 어느 곳에서도 명진 스님은 찾아볼 수 없었다. 털썩 주저앉았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땀인지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렀다.

   상실은 늘 이렇게 한꺼번에 왔다. 초희를 보내고 난 후에, 동기들이 한꺼번에 빠졌다. 그들은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 갔다. 덕분에 주헌은 대리가 되었다. 과장이 되자마자 아버지가 위독해졌다. 아버지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먼저 가버린 자를 찾으러 오게 될 줄이야.

   하루를 꼬박 찾아도 ‘설마’가 ‘혹시’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 년 전보다 좀 더 검어지고 나이가 든 얼굴을 가진 법현을 만난 곳 역시 하필 탑 앞이었다.

   “아, 처사님이시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스님. 혹시... 법명이... 명진이신...”

   법현의 미간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그는 한 발짝 물러서 다시 합장 인사를 했다. 다시 물러서는 그를 불러 세우는 주헌의 목소리가 좀 더 무거워졌다.

   “스님. 알고 싶습니다.”

   법현의 손길을 따라 주헌은 작은 승방으로 들어갔다. 차를 따르는 소리에 맞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명진은 세속의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습니다. 방학마다 돌아와서는 참선의 시간보다 사전을 보는 시간이 많았어요. 주지 스님이 깨달음과 멀어지는 길이라고 몇 번을 이르셨지만, 명진은 그럴 때도 사전을 옆에 두었습니다. 아침 예불에 빠져서 주지 스님께 몇 시간을 호통을 들은 적도 있어요. 밤늦도록 책을 보다가 예불 시간에 늦은 겁니다.”

   법현은 천천히 차를 들이켰다. 입에 머금고 있던 차를 삼키고 나서도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어느 날 명진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어요. 주지 스님은 학업을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공부를 계속하고 싶으면 환속을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명진은 며칠 후 이곳을 떠났어요. 그러고 얼마 후 저희도 경찰에 연락을 받은 겁니다.”

   주헌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렸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흙냄새가 선방 안까지 밀려 들어왔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굵기가 제법 굵었다. 빗소리와 차 향기와 침묵만이 선방을 채웠다. 한여름인데도 선방은 이상하리만치 서늘했다.

  

   명진에게 절 밖의 공부를 하라고 한 것은 주헌이었다. 내친김에 학업적 결실을 이루어보라 한 것도 주헌이었다. 그를 내몬 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진이 말한 ‘인연’이 생각이 났다. 빌어먹을. 초희와의 인연 때문에 주헌은 심사로 들어오게 되었다. 무슨 인연인지 명진과 친분을 갖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탑 앞에서 울지 않았더라면, 내게 말을 건네는 그의 말을 그냥 무시했더라면, 그에게 공부하라는 개 같은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석사를 해보라는 소리 따위 집어치웠더라면.

   이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일어난 것인가. 고정된 것이나 영원한 것이 없어서, 그는 그렇게 스님의 자리를 벗어난 것인가. 차라리 그의 정체성이 스님으로 고정된 것이었다면. 영원히 그가 스님이었다면 그렇게 사그라들진 않았을 텐데. 인연으로 생겨나 인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면, 인연으로 만나 지금 혼자 남은 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가 발견된 모텔 방에는 산스크리트어 문법, 유식과 중관, 티베트 불교, 불성 사상 이런 책들과 몇몇 독일어인지 프랑스어인지 논문이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염주와 함께요. 깨달음을 왜 문자에서 찾으려 한 것일까요. 깨달음은 그 안에 있었는데, 명진은 너무 멀리까지 나아갔어요. 나아가느라 자신 안의 것을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화장을 하고 보니 그래도 사리가 몇 점 나왔습니다. 그와 불가의 인연이 여기까지인 것이지요. 불가에서 죄가 가장 큰 살인이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극락왕생을 비는 것뿐입니다.”

   또 인연. 빌어먹을 인연. '스님들은 속 편하겠습니다, 인연 탓만 하면 되니까요'라고 주헌은 생각했다.  그의 눈은 동그란 찻잔에, 귀는 법현의 목소리와 빗소리의 어느 즈음에 있었다.

   명진이 주헌에게 설명해준 인연은 이별에 관한 것이었고, 그에 따르는 고통에 대해서도 말했다. 명진은 주헌의 마음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고통이란, 상실에서 오는 것입니다. 모든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어요. 영원히 곁에 있을 것만 같던 대상이 사라졌을 때 고통이 비로소 시작됩니다."

   "손을 꼭 쥐면 그 안엔 아무것도 없지만, 손을 펴면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어요. 인연을 놓으세요. 그러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고통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대상을 향한 마음이 영원한 것 같고 불변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또한 그때의 인연들이 빚어낸 결과일 뿐입니다. 잠시 잠깐 생겨나는 고통의 마음에 처사님을 내몰지 마세요. 고통 또한 인연입니다. 영원하지 않아요.”

   그걸 아는 자가, 세상과의 인연을 그리 저버린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그와 나의 인연은 악연이란 말인가. 고통 또한 인연이라더니, 고통. 명진으로 인해 가까스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지금 주헌에게는 명진으로 인한 고통뿐이었다. 그럴수록 고통 없이 말갰던 명진의 미소가 더욱 선명해졌다. 고통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던 자가 어찌 이리 고통 앞에서 나약하게 사라졌던 말인가. 인연의 고리를 끊으라고 말해 준 사람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불가의 세 번째 진리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해요.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 하나뿐입니다.”

   사 년 전에 비해 심사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진이 없다. 못 보던 행자가 비질을 하고 있었다. 주헌은 어떠한가. 대리에서 과장이 되었고 헤어 스타일이 변했고 팔자 주름이 깊어졌다. 초희는 떠올릴 일도 없다. 아버지는 더 위독해졌고, 그때의 장마보다 지금의 장마가 더 구슬프다.

   템플스테이 마지막 날, 주헌은 대웅전에 들렀다. 인간들이 갖는 번뇌의 수가 108개라고 한다. 모든 번뇌를 없애기 위해 자기를 낮추기로 했다. 수시로 일어나는 번뇌와 고통 앞에서 주헌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절을 할 때마다 명진을 위해 빌었다. 다음 생엔 부디 공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태어나길, 학업으로 이름을 떨치고 세상에 길이 남을 대학자가 되길. 이마에서 흐르는 것과 눈에서 흐르는 것이 분별없이 대웅전 바닥을 적셨다. 황금빛 불상이 고통 없는 미소로 지켜보았다.


   비는 결국 떠나는 순간까지 주헌을 적셨다. 우산은 없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10분. 그냥 맞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

   뒤에서 들려온다.

   “버스 정류장 가시는 거면 이거 같이 쓰실래요.”

   키는 작았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감사한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도 버스 정류장 가야 해서.. 비 맞지 마시고 이거 쓰세요.”

   그녀는 키가 작아서 팔을 꽤 올려야 주헌이 우산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아, 제가 들게요. 그럼 정류장까지만 실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기, 처사님."

   "네."

   "저랑 같은 날 들어오셨어요.”

   “아, 그런가요... 그렇겠네요.”

   주헌은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명진의 말을 떠올렸다. 그가 이곳을 찾은 것은 초희 때문이었다. 그가 다시 이곳을 찾은 것은 명진 때문이었다. 그리고 심적사 일주문을 벗어나는 지금, 주헌 옆의 그녀가 안경을 벗고 빗물을 닦으며 말한다.

   “처사님 탑에 계실 때 계속 옆에 있었어요. 오늘 아침 108배하실 때도요.”

   주헌은 세 가지 진리를 다시 곱씹었다. 삶은 고통의 바다다.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은 인연(因緣)으로 일어나고 시작된다.        







* 표지 사진 출처 : 플투의 찰칵거리는 세상

* 불교의 세 가지 진리,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일컬어 삼법인(三法印)이라고 합니다.(사법인에 포함되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제외하였습니다.)

* 2001년 상영한 영화 <와호장룡(卧虎藏龙)>, 리무바이가 슈롄에게

“把手握紧,里面什么也没有,

 把手松开,你拥有的是一切。”

“손을 쥐면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손을 펴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어요."



*첫 소설입니다. 몽당연필만큼 짧고 텅 빈 도시락처럼 채움 없이 요란합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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