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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Oct 04. 2021

마지막 퀴즈

< 작당모의(作黨謨議) 7차 문제(文題) : 넌센스 >

  망했다. 최선을 다했는데, 그래서 더 망했다. 이제 남은 퀴즈는 하나 뿐이다. 이 문제를 내면 완벽하게 망할 것이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 가을 바람이 시원해도 흐르는 식은땀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젠장. 지겨워하는 저 표정까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이제 끝이에요? 더 없어요?”

  “......”

  “설마 뭐.. 연인데 걸어 다니는 연 이런 건 아니겠지.”

  “.......”

  뛰쳐 나가버리고 싶지만 꾹 참는다. 그녀에게 그렇게 찌질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남기고 싶진 않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마지막까지 해보자.

  “비슷합니다. 연은 연인데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연.”

  “와, 생각보다 훨씬 유치하네요. 저 대답합니다. 홍.주.연. 정답인가요? 하하하. 아니 어쩜 이리도 속이 훤히 보여요. 연애하면 꽉 잡힐 스타일인데. 너무 쉬워도 안 되요.”

  규성이가 사진을 보여줬을 때부터 오늘까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연애 따위 관심도 없는 나를 단박에 바꾼 그녀였다. 어떻게든 잘 되어야 했다. 모솔인 티 나지 않게, 과하지 않으면서 부족하지 않은 센스를 탑재한 남자답게 보여야 했다. 재미있는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그녀라기에, 긴장하면 말이 안 나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것은 ‘넌센스 퀴즈’였다. 20문제를 달달 외웠다. 여유로운 표정과 조금은 코믹한 말투를 잘 믹스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꿈 속에서도 넌센스 퀴즈를 점검했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지난 학기 올에이뿔인데. 상관없다. 이번 학기 그녀만 건지면 내 대학1년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그 누구와 비교불가한 수준의 넌센스 퀴즈 최강자였다. 내가 준비한 모든 문제를 맞추는 데 문제되는 것은 없었다. 고작 그것 밖에 되지 않느냐는 눈빛이었다. 문제를 내면 낼수록 노랫말 하나가 내 가슴을 깊이 파고 들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렇게 보내기는 너무 싫은데. 그녀에게 잘 보이려 준비한 넌센스 퀴즈들이 그녀와 나를 멀어지게 하다니. 그야말로 넌센스다.

  “그럼 이제 제가 문제 좀 내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맞기 어렵지 않으실 거에요.”

  그녀가 웃는다. 그와중에 귀엽다. 젠장.

  “돌은 돌인데 말하는 돌은?”

  “......”

  “돌은 돌인데 재미없는 돌은?”

  “......”

  귀까지 빨개지고 있다. 분명 차가운 커피를 먹었는데 얼굴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익살스러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얼굴을 들지를 못하겠다.

  “돌은 돌인데,”

  “그만 하시죠. 충분히 알겠으니까요. 실례가 아니라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저 아직 문제 안 끝났는데요. 그리고 말하는 중간에 끊는 것, 실례하신 거예요. 그러니 앉으세요.”

  모르겠다. 분명 수치스러운데, 다시 앉고 보니 마냥 좋다.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수치스러워 보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니까. 그녀 앞에서라면 수치심도 오래 즐기고 싶어진다.

  “돌은 돌인데 귀여운 돌은?”

  “......?”

  “돌은 돌인데 키 크고 옷 잘 입는 돌은?”

  “......??”

  “나 지금 좀 부끄러운데 이제 그만 대답하시죠.”

  “저도 답을 잘...”

  “생각하시는 그거 답 맞아요.”

  “지금 생각하는 답이 세네개 됩니다만.”

  “아 진짜. 마지막이에요. 돌은 돌인데, 내가 좋아하는 돌. 됐어요?”

  나도 저 정도로 빨갰을까. 괜히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귓불이 뜨겁다.

  “좀 유치해서 놀랐습니다. 대답 안 하고 싶은데,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할 것 같네요. 고훈석. 정답인가요.”

  “원래 넌센스 퀴즈가 다 유치한 거에요.”

  “저기, 연애하면 꽉 잡히실 스타일 같으신데.. 선택권을 드리겠습니다. 잡으실 건가요, 잡히실 건가요?”

  갑자기 그녀가 일어선다.          




  동기 녀석이 자기 동아리 친구라며 사진을 보여줬을 때부터, 무조건 소개해달라고 했다.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 첫만남이 중요하다. 어색한 분위기는 안 된다. 최대한 여유롭게, 웃음이 많지만 헤퍼보이지는 않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피식’ 웃을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했다. 인터넷에 ‘넌센스 퀴즈’라고 치고, 혹시 잊을까 잘 기억해 두었다. 정말 최후의 수단이지만, 이런 게 통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런 유치한 넌센스 퀴즈를 좋아한다면, 나도 얼마든지 유치해져야지. 원래 좋아하면 유치해지는 거니까.


  그가 나에게 선택하라고 한다. 잡으실 건가요, 잡히실 건가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도 따라 일어선다. 아까부터 잡아보고 싶었던 그의 손에 내 손을 포갰다.

  “제가 잡았으니, 훈석 씨가 잡히는 스타일 하세요. 맥주 좋아해요? 3차는 호수공원 맥주, 가요!”





* 매거진 <작당모의> 7차 문제 '넌센스'의 미션은 2,000자 글쓰기였습니다. 2,000자가 조금 넘는 소설입니다. 부끄러운 글임을 밝히며, 못난 글에 시간과 마음 써주신 분들께 감사와 죄송함을 말씀드립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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