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당모의(作黨謨議) 7차 문제(文題) : 넌센스>
“당신 인생의 황금기는 언제였어?”
저녁을 먹고 나선 공원 산책길에서 서쪽하늘을 물들인 노을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아내가 물었다. 아내 의식의 흐름은 늘 생뚱맞다. 동네 놀이터의 아이들을 보다가 코알라가 귀여웠던 호주를 떠올리고, 호주를 떠올린 김에 저녁으로 소고기를 먹자고 하는 식이다. 이번엔 노을이어서 황금기인 건가.
“내 인생의 황금기는 단연 재수할 때였지.”
“재수할 때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 아니야?”
의아해하는 아내의 표정 뒤로 재수할 때의 즐거웠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니. 그때 하루하루, 매일매일이 즐거웠어.”
대학 입학을 1년 미루며 재수 생활을 보냈던 노량진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노량진은 각종 학원들이 많았던 만큼 공부에 지친 학생들을 유혹하는 놀거리들도 넘쳤다. 노량진 역을 나와 길을 건너면 대성학원이 보였고, 그곳에서 한샘학원까지 이어진 길가 양 옆으로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치기엔 괜히 서운한 가게들이 포진해 있었다. 오락실, 당구장, 비디오방, 노래방, 카페, 만화가게의 간판들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불을 밝혔다.
내가 가장 자주 찾았던 곳은 만화가게였다. 지하에 위치했던 만화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낡은 소파들이 열을 지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소파의 방향은 극장의 좌석처럼 모두 한 곳을 보도록 놓여있어 혹여 만화를 보는 사람들끼리 눈이라도 마주쳐 한참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만화책이나 보고 앉았다는 죄책감이 들지 않도록 배려했다. 300원에 한 권을 볼 수 있는 만화책이 온 벽을 가득 채웠고, 1,500원을 내면 양은냄비에 라면을 끓여 내주었다.
그래도 몸 관리가 중요한 재수생인데 너무 라면만 먹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만화가게를 나와 바로 길 건너 2,000원짜리 짜장면을 팔던 중국집을 찾았다. 어느 날은 단백질을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에 닭머리를 갈아 패티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던 500원짜리 길거리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 배부른 오후는 나른하고 졸렸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부족한 잠도 틈틈이 챙겨야 했다. 그럴 때면 서둘러 수면실이 완비되어 있었던 목욕탕으로 향했다. 오후가 노곤하기는 다른 재수생들도 마찬가지였고,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목욕탕 한 편의 수면실은 금세 자리가 없었다.
가끔씩은 바람도 쐬어야 한다며 혜화동으로 건너가 길거리에서 하는 무료 공연을 보고, 스트레스 해소도 해야 한다며 잠실 야구장에서 프로야구 야간경기를 보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처음 가진 자유를 넘치는 시간과 함께 마음껏 누렸다.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밤 11시가 다 된 늦은 시간에 집으로 들어가면, 자유를 즐기느라 지친 나를 엄마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얼른 씻고 자.”
“아니. 누구나 하는 건데. 뭐.”
지친 표정을 짓고 힘없는 목소리로 들리도록 연기를 했지만, 차마 엄마의 눈을 보며 하지는 못했다.
이름난 대학의 인기 있는 학과를 가고 싶다는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난 의대를 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동창 여자애가 대학을 가서 첫 미팅을 했는데, 그때 나왔던 중앙대 의대생과 사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래? 그럼 나도 의대를 가야겠다. 의대생이 되고, 언젠가 그 애가 중앙대 의대생 녀석과 헤어진다면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랑의 힘은 생각보다 위대하지 않았다. 공부는 사랑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1년 후의 의대보다 지금의 만화가게가 더 좋았다. 아직도 미처 보지 못한 만화책들이 이렇게나 벽에 가득 쌓였는데, 그깟 사랑 따위.
당연하지만 1년 뒤, 재수를 결심했던 때보다도 더 낮은 점수의 성적표를 받았고 난 의대생이 되지 못했다.
“남편, 그때 만화가게 대신 의대를 택했었으면 지금 나 못 만났겠네.”
아내는 공부는 뒷전인 채 만화책에만 빠져있었던 재수생 시절의 나를 칭찬했다. 그때 공부에 온 몸을 불살라 의대를 갔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지금처럼 만족하고 기쁨을 느끼며 살고 있을까. 살아오면서 수많은 갈림길에 섰었고, 어느 한쪽을 택해 앞으로 나아갔다. 애쓰지 않고 노력하지 않았던 재수생 시절이 지금의 아내를 만나는 길로 들어서게 한 첫 갈림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열심이지 않아 다른 길을 걷게 된 걸 후회하고 반성하게도 했던 그 재수생 시절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인생. 늘 최선의 선택을 하려 하지만, 그게 최고의 결과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생은 아이러니이고, 넌센스이다.
인생의 황금기를 묻는 아내가 혹여 답을 미리 정해 놓고 묻는 건 아닌가 싶어 빠져나갈 구멍도 잊지 않는다.
“재수할 때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 황금기는 너랑 함께 있는 지금이야.”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