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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Sep 27. 2021

언어 유희(遊戲)

< 작당모의(作黨謨議) 7차 문제(文題) : 넌센스 >

글을 완성할 때까지
자기가 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작가는
거의 없다.



 언제 어디에서 들었는지도 모를, 수첩에 메모만  있는  말이  위로가 됐다. 끝이 어떤 모습일지 모르고 가는 길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마지막의 모습을 ‘지금,  순간에도 그려 나갈  있다 호기(豪氣) 생기기에 그렇다.  인생, 처음 시작은 분명하였으나 끝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갖다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말이다.

 

 내가 지금 쓰려는 글 역시 ‘끝을 알 수 없는 글’ 임을 명시한 채 글을 써보려 하는 것이다. 이 글은 아주 오래된 나의 취미이자 말놀이, 언어의 유희(遊戲)에서 시작한다.

 

  나는 제법 재미있는 놀이를 혼자 즐겼다. 시작은 오래되었다. 공부가 재미 없어질 무렵, 노트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들이 줄지어 적혔다. 줄지어 쓰인 단어들은 똬리 튼 뱀 모양이 되기도, 회오리바람이 되기도, 갈지 자가 되기도 했다. 문득 떠오르는 단어 하나로 연상작용은 지속되고 나아간다. 다음 단어는 이전 단어에서 태어나고 출발한다. 그리고 처음 시작했던 단어와 마지막 단어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었다.

 

  모든 단어와 생각들은 비밀결사대처럼 은밀하게 개별적이면서 죽기를 각오할 때는 서로 단단히 연결되고 묶여 있는 관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은 서로 관계성을 가지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굳게 믿었다.



넌센스로 시작한 말놀이가 그리움으로 끝이 났다. 넌센스와 그리움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생각해 보는 놀이.


  오늘, 놀이의 시작은 ‘넌센스’란 단어였다. 하나의 단어에 떠오르는 단어를 연결하다 보니 ‘그리움’이란 단어에 닿았다. 합리적이거나 우의적인 어떤 해석도 거부하는 ‘넌센스’ 단어가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과 연관성이 있다고?


  처음과 끝이 주어졌으니 ‘끝을 알 수 없는 글’의 끝을 맺어봐야겠다.


  ‘넌센스’를 주제로 글을 써내는 것이 방송작가 특채 1차 필기시험이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가을, 낙엽, 달력, 아침, 비’ 다섯 단어가 글 내용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1명 뽑는 시험에 2백 명 넘게 응시할 것을 미처 예측하지 못한 모양인지 시험장소가 방송국 근처 실내체육관 스탠드인 것은 의외였다.
 ‘아, 그러게 빡세게 공부해야 할 때 머리 터지게 했어야 하는데, 이 나이에 무슨 거지 같은 꼴이람... 딴 데 얼쩡거리지 말고 지금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야겠다’ 생각하며 대충 백지를 채우고 제출했다.

  “혹시? 너?... (시험지에 적힌 이름을 보며) 맞네”
  “아, 네... 그럼 수고하세요”
 아까부터 낯이 익다 싶었던 시험감독관이 대학시절 ‘새내기 킬러’로 유명했던 방송반 선배라니...
그가 내 시험지 한 귀퉁이를 접은 채 다른 시험지를 포개 얹는 것을 순간 보았다.
 '방송국 사람이라면 시험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건가? 내 시험지를 표시해 둔다는 건 나중에 참고하겠다는 의미일 텐데. 생각보다 센스가 좀 있는데... 1차는 자동문인가?’ 나는 나쁘지 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네 생각이 나는 날이 많았는데 오늘처럼 만나 지려고 그랬나 보다, 한번 보고 싶은데... 그리웠다' 메일이 왔다.
결혼을 했다고 풍문에 들은 것 같은데, 메일을 읽고 한참을 망설이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그리움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나는 결국, 1차 시험에 합격했다는 메시지를 받지 못했다.


   나는 짧은 소설을 통해 선배의 무례함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상상을 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합격 메시지를 받지 못했으니 오히려 한 방 제대로 먹은 걸로 돼 버렸다. ‘마무리를 왜 저렇게 했을까?’ 잠시 생각한다. 처음 의도한 바가 아닌데 글이 이상하게 돼 버렸다. 역시 나는 작가의 반열에 들어있음이다. ‘나중에라도 고치면 되지...’ 나는 편하게 생각한다. 놀이니까.

 

  그러나 인생의 어느 부분을 돌이켜 다시 고쳐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겐가! 인생의 되감기 버튼 따위는 없다. 끝을 모르는 길 위에 무수한 선택의 순간만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을 호기롭게 즐기는 것이 나의 일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즐거운 상상놀이를 하며 긴장을 푼다.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른다. 처음부터 모르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넌센스다.




*) 표지 사진 : 팀 아이텔(Tim Eitel, 1971~ ). 작품 <산> 2018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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