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당모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Sep 16. 2021

최선이면 됐고 차선이면 어때

< 작당모의(作黨謨議) 추석특집: 사진 글쓰기 >


 회심(回心)의 일 구(球), 투수는 손가락 끝으로 공의 실밥을 더듬으며 마음을 되돌려 잡는다. 경기는 흐름이며 바람처럼 변화무쌍한데 바람의 방향을 바꾼 제갈량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진을 향해 날아가는 비수(匕首)처럼 정확히 꽂혀야지, 생각은 깊어진다. 이 공이 최선이어야 하겠지만 차선도 염두에 둔다. 생각보다 많은 공을 던지게 될 수 있다.


 위풍당당 기선제압,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의 눈이 이글거리며 타오른다. 타자는 지난 공들의 궤적과 방향을 기억하며 던져질 공을 예측한다. 배트로 땅을 세 번 치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위함이며 옷과 헬멧을 고쳐 잡는 것은 전열을 가다듬기 위함이니, 날아오는 공이 축구공처럼 커져 보이는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한 박자 쉬어가는 차선도 무방하리라.


 그물처럼 촘촘한 배수(背水)의 진(陣), 수비수들은 언제든 몸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 다른 야수 쪽으로 흘러가도 빛의 속도로 뒤를 받치는 백업 플레이를 한다. 안타를 맞은 이상, 최선의 방어는 실패했지만 더 큰 실점을 막기 위한 차선은 단단히 틀어막는 일이다. 야구는 팀플레이이며 사는 것 또한 다양한 사람들과의 에너지 총합이다.


 우리는 매 순간 최선(最善)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항상 최선일 수는 없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를 경험할 때가 더 많다. 차선(次善)을 미리 준비하는 것, 실패 앞에서 절규하는 뭉크가 모나리자의 온화한 미소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지혜는 아닐까?




*사진 출처: 글 그램


매거진 <작당모의>가 추석을 맞아 특별히 준비해 보았습니다. 공통의 사진을 주제로 6백 자 글쓰기에 도전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구독자 여러분, 뜻깊은 한가위 맞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임은 끝나겠지, 내가 아니어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