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Sep 21. 2020

열등감이 밥 먹여 준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달래기 위한 글 

아이가 아침잠을 자 준다.

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지만, 그중 두 개로 추렸다. '브런치'와 '안마의자에 앉아 책 보기'. 브런치로 결론을 내렸다. 급하게 믹스커피 한 잔 타고, 노트북을 열었다. 


지금 이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화산처럼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다. 


요즈음, 열등감에 사로잡혀 산다. 열등감. 열등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일상을 지배하는 단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여유 깡패'들이 부러워 못 살겠다. 내 생활의 비교 상대는 '애들 다 키운 엄마들'이다. 애들이 학교만 가고 자기가 자기 밥 먹고 씻고 하는 엄마들이 부럽다. 물론 지금은 불가하지만, 학교를 보내던 시절만 해도 아니 어린이집만 보내도 엄마들은 여유시간을 챙겼다. 가사는 어쩔 수 없지만 그 나머지 시간은 자기의 것이었다. 운동을 하고 책을 보고 글을 쓴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저럴 수 있을까' 시샘이 멈추지 않았다. 만 7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을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기저귀를 갈았다. 그 시간 동안 밤마실을 나가보지 못하고, 나만의 시간이 단 24시간 주어진 적이 없는 나날을 보냈다. 밤잠을 끊이지 않고 자본 밤이 단 하루도 없다. 

여유로운 엄마들이 쓰는 '독서 리뷰'는 내 얼굴이 빨개지도록 만들었다. 어떤 책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리뷰를 쓰는 모든 책은 좋아 보였고 나도 읽고 싶었고 나도 리뷰 쓰고 싶었다. 그 시간을 훔쳐오고 싶었다. 그들도 치열하게 시간 내서 겨우 해낸다는 것을 짐작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나처럼 매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닦고 쫓아다니고 달래고 하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나는 완패다. 깔끔하게 KO패다. 이런 패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패배다. 아이들을 겨우 다 재우고 12시가 넘어 잘까 쓸까 고민하다 충혈된 눈으로 글을 쓰거나 글을 읽으면, 다음날은 여지없이 해일 같은 후회가 밀려온다. 애 키우는 주제 무슨 글이라고. 아이들이 미워 보인다. 엄마로서 바닥이다. 나를 원망하고 자책하게 된다. 이쯤 되면 다시 그들이 미워지는 거다. 이런 열등감의 종착점은 나를 향한 원망이다. 그들은 일찍 애를 낳아 일찍 키워내고 지금 어쩌면 보상받는 건데, 늦게 애 낳아 키우는 주제 원망만 늘어가는구나. 자책에 자책이 쌓인다. 가을 햇살 찬란한 월요일 아침부터 푸념이 한그득이다. 


이런 열등감을 만든 외부 요인으로, 나의 세대주도 큰 몫을 한다. 적어도 나의 브런치는 알지 못한다. 쭉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니 숨어서 써야 하고, 그 피로도가 꽤 크다. 육아는 1도 안 한다. 첫째와 약간의 말 상대를 해주지만 그것 말고는 없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마음뿐이다. 나머지 모든 부분은 나의 몫이다. 자신의 몫은 돈 벌어오는 것이라는 생각만 그득한 사람이다. 가사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는 그렇다. 육아에 비해서는 많이 도와주지만, 내 쪽에서 체감하는 부분은 사실상 없다.(쓰레기 분리수거만큼은 인정한다.) 그렇다 보니 육아와 가사에 치여 더더욱 여유가 없다. 육아와 가사에 치인 마음을 글로 달래고 싶은데 글로 달랠 시간이 없다. 더더욱 글이 절실해지는 이유이다. 이쯤 되면 다른 아빠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아빠들, 엄마 글 쓰는 것을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아빠들, 집안일을 분담해서 함께 하는 아빠들. 그런 아빠를 곁에 둔 엄마들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하아. 또다시 열등감이 마구마구 끓어오른다. 그런 아빠를 탓하려다 또다시 나를 돌아본다. 나쁜 아빠는 아니지 않냐고, 내가 선택한 것 아니었냐고, 너의 현실이 어때서, 안정적인 집과 (나름) 화목한 가정과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과 이렇게 브런치까지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크면 나의 시간이 지금보다 생길 것이다. 보고픈 책들도 보고 글도 쓰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밤잠도 깊이 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과는 다른 상황들이 생기겠지만, 일단 시간적인 여유는 확실한 듯하다.(주변 엄마들을 보니 그렇다.) 그러면 내 안의 열등감도 사그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열심히 밥을 먹어야 한다. 열등감이 주는 밥, 열등감 때문에라도 밥을 먹어야 한다. 열등감이 주는 밥으로 글감들을 차곡차곡 모아 두고 치열하게 써야 한다. 열등감 때문에라도 밥 먹고 기운 내서 아이들을 키워내야 한다. 그렇게 큰 아이들은 보답이라도 하듯이 엄마의 시간을, 엄마의 글을 허락해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나 육아의 답은 '시간'이다. 나는 하나 더 보태고 싶다. 육아의 답은 '밥'이라고. 아이들 다 키운 엄마들,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인 아빠를 곁에 둔 엄마들을 향한 열등감을 밥으로 꾹꾹 누르고 그 힘으로 나 역시 아이들 키워내겠다고.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건조기로 옮겼다. 아이가 깨서 아이를 안고 글을 마무리한다.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러 간다. 내심 급하게 마무리한 글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부글거리는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차분한 마음으로 아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 쓰느라 마실 새도 없이 식어버린 믹스커피를 원샷하고 육아 시작이다. 안마의자 독서는 다음 기회에.)

매거진의 이전글 제발, 순대 좀 떡볶이에 올리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