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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Sep 23. 2020

글쓰기에 대한 변명이 필요한 시간

지금의 나에겐 의미 없는, 책 읽기와 글쓰기의 상관관계

책 읽기와 글쓰기는 어떠한 관계일까.

책을 읽어야 글을 잘 쓸 수 있는 걸까? 글을 쓰는 데 있어 독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정말 독서의 종착역이 글쓰기인가? 글을 쓰는 원천이 독서인 건가? 독서가 먼저일까, 글쓰기가 먼저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보다 더 난감한 질문인 걸까? 




독서와 연관 지어 나의 글쓰기를 말하자면, 바닥이다. 확신에 가득 차 말하건대, 지금의 나의 글쓰기에 독서가 미치는 영향은 제로이다. 왜냐 하면 독서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독서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글도 정말 잠을 줄여가며 간신히 쓰고 있건만, 하물며 독서라니!(지금도 아이가 칭얼대며 자는 걸 재워가며 쓰고 있다, 왜 엄마가 옆에 없으면 5분에 한 번씩 깨느냔 말이다!) 

그래서 요즈음 나의 글쓰기를 생각해 보면, 뭔가 좀 부끄럽다. 창피하고,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책도 안 읽는 주제 글을 쓰다니. 남들은 글 쓰려 책 읽고, 심지어 '글쓰기에 대한 책'도 읽고, 책에서 문장도 수집하고 영감도 얻고 한다는데, 감히 근본도 없이 글을 쓰려하다니.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몰염치가 하늘을 찌른다. 그걸 알기에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책을 못 본 지는 꽤 되었다. 평균적인 한국사람이기에, 국민학교 졸업과 동시에 책에서 멀어졌다. 가끔 문학시간에 예상치 못한 시 구절에 왈칵 운 적은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대학에서는 전공서적을 읽었다. 전공과 관련된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았다. 독서의 목적은 지식 습득이었다. 에세이집 같은 것은 종이 낭비라고 생각했다. 꿈이 기자였어서 신문은 끼고 살았다. 잘 때도 머리맡에 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참말로 다행이었다.(지금 그나마 이라도 글을 쓰는 것은 그때 신문을 끼고 살아서인듯하다.) 그러다 갑자기 결혼을 했고, 독서보다는 다큐멘터리를 가까이했다. 둘째와 셋째 임신 때 책을 꽤 가까이하였으나, 부른 배로 독서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은 여러 종류의 책을 오픈마인드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도저히 시간이 없다. 변명이긴 한데, 정말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도 참 아쉽게 생각하는데, 그저께 동생이 남긴 톡은 내 아쉬움의 정점을 찍게 하였다.


지금 누나처럼 글쓰기가 한창일 때 좋은 책 두세 권만 읽으면 실력이 엄청 좋아질 수 있는데, 아쉽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좋은 책을 읽기 싫어서 안 읽는 게 아니야, 좋은 책을 고를 시간이 없어, 골랐다 해도 읽을 시간이 없어. 하루 15분만 읽으라지만, 난 그 시간에 자거나 글을 쓰고 싶어. 여기서 다시 질문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정말 읽어야 하나? 그건 확실하다. 좋. 은. 글을 위해서는 독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나의 글쓰기는, 살고자 함이다. 내가 숨 쉬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함이다. 안에 욱여넣은 것들이 많아서 그것들부터 좀 꺼내보자 하고 쓰는 것이다. 일종의 배설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지 않은가. 그 순서를 지키기 위해, 머리와 마음에 꽉 차 있는, 쉰내 나는 것들을 먼저 비워내야 한다. 그 후 그 자리를 독서로 채우고 그를 바탕으로 '좋은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 나도 알고 있다, 지금의 글들이 얼마나 막무가내인지. 얼마나 근본 없는 활자의 나열인지. 

다시 말하지만, 독서 없는 나의 지금의 글들은 맹탕이다. 괜찮다. 앞으로 독서와 함께 채워나가는 글을 쓸 것이다. 그때까지 좀 더 내 안의 것들을 '쏟아내는' 글쓰기를 할 것이다. 




실은 나도 책을 엄청 읽고 싶다. 집중해서 그 자리에서 완독 하는 찐한 경험을 너무나도 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어린이집 등 하원 길에 걸으며 세네 줄 읽고, 마트 다녀와 주차장에서 잠시, 막내 낮잠 재우고 잠시, 용변이 급한 척 화장실에서 2분 읽기 이런 식이다. 독서인데, 독서가 아니다. 읽는 즉시 머리에서 휘발되어 버린다. 안 하느니만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늘 책을 옆에 두긴 한다. 읽고 싶으니까. 

어디까지 읽었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라도 좋은 책을 접하면 넘치는 시샘과 질투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글은 도대체 어떻게 써내는 걸까, 얼마나 많은 독서를 자기의 언어로 풀어내면 이렇게 쓸 수 있는 걸까. 그 책의 시간들이 주는 보상이 이렇게 아름답다면, 나는 앞으로 이런 글쓰기가 가능하기는 한 걸까. 결국 마지막엔, 글 쓰는 사람은 타고나는 건가 보다 하고 맥이 탁 풀려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쓴다. 이렇게 무용한 글이라도 써내고 있다. 내 글의 미천함은 독서의 부재에서 비롯하는데, 그것이 나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지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굳이 장황하게 밝히는 글을 끄적이고 있다. 잠을 줄여 쓴 이 글이, 앞으로 나의 글들을 변호하는 그나마 괜찮은 변명이길 바라며. 


(이 글은 찌질한 나의 글을 봐주러 와주시는 여러 분들을 위한 나약한 고백이기도 하다. 별 내용없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어도 '사정이 있어서 이러하겠지' 하고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독자에게 '재미없어도 읽어주세요' 본격 구걸하는 건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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