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 모를 누군가가 1년여 전의 글에 라이킷을 눌렀다. 그 김에 1년여 전의 글을 본다. 이토록 유치한 글을 발행한 과거의 나여, 반성해.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였기에 좀 덜 유치하고 좀 더 아름답게 썼어야 했는데. 읽어 내려가다, 어랏, 이거 뭐야. 이런 중대 실수를. 이 글을 50번은 넘게 읽어 본 것 같은데(발행 전에 나름 엄청 고민했다), 이런 오타를 내내 못 알아봤다고? 매우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잘못 썼다.
'나의 슬픈 기대를 부디 그댄 모르기를'를, '나의 슬픈 그대를 부디 그댄 모르기를'이라고 쓴 걸 거의 1년이 지나고서야 알아봤다. 어이구, 퇴고 안 하는 티를 풀풀 내네. 고쳐야지, 그대를 기대로, 하고 다시 보니
어, 어.... 어.
어쩐지 맘에 들어서 그대로 두었다. 그래, 내 안의 슬픈 그대를 부디 그대가 모르기를, 그때도 지금도. 내 안의 그대가 슬픈 이유를 오직 나만이 알고 있어서 그래서 더 슬픈 존재를, 부디 그대는 끝내 알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전해서, 그래서 고치지 않았다.
비슷한 마음으로 들렀다 말았다 한다. 알아채 주길 기다리면서 조용히 다녀오는, 몰라주기에 아쉽고 알지 못하기에 다행이고.
봉숭아꽃 핀 마당에 쭈그려 앉아
멀리로 뱉은 수박 씨앗이
우거진 밭을 이루는 꿈을 꾸면
눈사람처럼 흰 엽서가 용케 안 녹고
자전거에 실려 왔다
왜 그랬을까. '눈사람처럼 흰 용서'로 읽었다. 용서는 녹지 않고 여름을 지나 자전거에 온전히 실려 왔다, 하얗게. 엽서는 왜 용서로 보였을까. 용서받고 싶은 이와 마당에 쭈그려 앉아 수박씨를 멀리 뱉는 꿈을 꿨다. 다행히 웃고 있었다. 그래서, 이 시를 오독했다는 사실에 조금 울었다. 모두가 웃고 있어서, 오독 속에서 미소 짓고 있어서. 어쩌면 엽서에 '용서'라는 두 글자만 쓰여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쁜 오독을 만나려 몇 날을 책을, 글을 대충 읽었다. 잘못 읽히길, 그리하여 마음 한편에 처박아둔 감정의 먼지를 걷어낼 수 있기를. 한편으론 시詩가 된 오타를 찾기 위해 정독을 하기도 했다. 잘못 쓰인 글을 발견하길, 그리하여 잘못 태어난 시에 베냇저고리를 처음 입히는 독자가 되길. 나의 눈은 그 몇 날 유난히도 정직하였다. 그 몇 날 만난 글들은 참으로 정갈하였다. 오타는 없고 오독은 할 수 없었다. 반듯한 세상에서 흠집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고 불경했다. 그 몇 날 그렇게 오해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맞춤법 검사기는 고장 한 번 나지를 않았다.
고백하건대 나는 오독 전문가다. 글쓴이의 의도 같은 건 중요치 않다. 내가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당신에게 완전하게 가닿지 못한다. 우리 사이에 글자 수만큼의, 발행 시간과 읽은 시간만큼의 오해가 있다. 그러나 그 오해는 차라리 다행이다. 어떤 글은 읽지 않는다, 읽지 못한다. 읽을 시간과 상황과 여유와 마음과 이 모든 것을 통틀을 그 무엇이 없다. 오타가 없어도 나는 당신을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해하지 않는다. 당신을 오해할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멋들어진 오타를 발행하진 마시길. 오타 없이도 난 충분히 당신을 오독할 수 있으니까. 그 속에서 좀 더 당신을 나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끝내는 그럴듯한 오해를 길러낼 테니까. 그 오해가 우리를 대화하게 할 테니까. 너만 나를 그렇게 봐, 그렇구나,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모르겠어, 그런데 알고 싶지 않아.
이 모든 게 다 글 때문이다. 글을 쓰며 오타를 행하고 글을 읽으며 오독을 행하고 오해하는 줄 모르는 사이 오해한다. 우리가 글이 아닌 다른 무엇, 지나침이나 부딪힘이나 목소리나 눈 맞춤으로 만났다면 우리의 오해는 금방 이해가 되었겠지. 그러나 글은 이해를 방해한다. 이해한 것 같지만 오해한다. 오해는 오래간다. 오해의 사이사이 불면과 썼다 지움과 저장과 미발행이 끼어든다. 오해의 층은 두꺼워만 간다.
가끔, 그대가 나를 오해하길 기대한다. 그대가 나를 오해하고 있음을 이해한다. 우리의 오해를 풀 글을 쓴다. 그렇게 줄곧 당신을 생각한다.(당신, 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두었다, 비가 와야 발행을 할 텐데) 문득 드는 생각, 그대도 나만큼 오독전문가면 어쩌지, 그대가 오독할 기회마저 갖지 않으면 어쩌지. 그렇다, 이게 다 글 때문이다. 우리는 글로 알아서는 아니 되었다. 우리가 발행한 글만큼 오해도 쌓여 있다. 나는 그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다. 내가 아는 건 그대의 글이지 그대가 아니다. 그대에게 기대를 거두어야겠다. 이런 나의 슬픈 기대를 부디 그댄 모르기를.
우리의 오해의 시간은 오늘도 밤을 채우고 있다. 그대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라며 오타 없는 글을 쓰고 있다. 덕분에 나는 또 용서를 구할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흰 엽서의 모양을 한 용서가 언젠가는 전해질 수 있길 바라본다. 그 엽서를 주고받는 당사자들은 오독 전문가들이 아니길, 그리하여 그들 사이에 순수한 이해만 남아있길.
나의 오독을 허락해준 그대에게
이 밤만큼의 오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