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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Oct 13. 2020

엄마, 세모네모 틀어 해여!

조금만 더 할게, 세모 네모 육아

엄마, 세모 네모 틀어 해여(틀어줘요)!

이제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한 둘째가 아침부터 나에게 하는 말이다. 물론 손에는 리모컨과 함께. 

그럼 나는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틀어주는 것이다, 애증의 세모 네모. 

티브이로 볼 수 있는 세모 네모. 눈치 빠르신 분은, 혹은 중독자?! 라면 바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세모 네모

세모 네모를 틀면 요즘은 우주송이나 응가송, 영어 컬러 송을 주로 본다. 첫째는 6살 답게 달팽이나 메갈로돈(....)이나 심해 괴생물체(............. 워킹데드로 태교한 탓인가...........)를 주로 본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채널이 따로 있다. 물론 시크릿 쥬쥬나 디즈니 OST 모음 같은 건전한?! 것도 자주 본다. 


어린이집 다녀와서 첫마디 역시 똑같다. 엄마, 세모 네모 틀어 해여! 

작은 손에는 자기 손의 세 배쯤 되어 보이는 리모컨이 쥐어 있다. 리모컨을 이어받은 엄마는 군말 없이 틀어준다. 착한 엄마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름의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나도 한때는 '미디어 따위 내 새끼에게 택도 없어!' 하는 엄마였다. 15개월 그날 전까지는.(도대체 그 전에 어떻게 키운 걸까........) 첫째는 15개월에 모세기관지염으로 입원했었다. 작은 손에 꽂은 수액주사에 피가 자꾸 거꾸로 올라왔다. 침대에서 한 순간도 가만있지 못하고 들뛰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져온 책으로는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10살 언니가 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했다.

넌 뽀로로 안 보니?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를 진정시킬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아이는 쉽게 집중하였고, 집중하는 만큼 움직이지 않았다. 성공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됨을. 



처음엔 나도 나를 자책했다. 아이에게 핸드폰이라니, 그것도 ㅇㅌㅂ를! 3살이 된 아이는 자기가 이미 폰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책만큼 육아는 쉬워졌다. 영상을 보는 만큼 나는 쉽게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갤 수 있었다. 잠깐 눈도 붙일 수 있었다. 그래서 찾은 절충이 'TV'였다. 폰은 안 되는 대신, 티브이로도 ㅇㅌㅂ는 볼 수 있게 했다. 자책은 줄었지만, 그래도 자책은 자책이었다. 둘째는 3개월부터 이미 티브이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나 같은 막장 엄마는 없을 거야 라며 매일 나를 괴롭혔지만, 함부로 티브이를 끄긴 어려웠다. 



어느 날,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게 5살 첫째가 와서 말했다. 뜬금없이.

엄마, 호랑이는 타이거, 띠그레 야.

그렇지, 호랑이는 타이거지. 응?? 띠그레? 아, 매일 보는 그 스페인어 영상.

???

"ㅇㅇ아, 사자는?

"사자는 라이언, 레온."


나도 모르는 동물 스페인어를 5살 아이가 말하고 있었다. 나는 가르친 적이 없다. 물론 어린이집에서도 배운 적이 없다. 그저 영상을 봤을 뿐이다. 그뿐 아니었다. 5살 아이는 동물뿐 아니라 색깔, 꽃 같은 것도 스페인어를 할 수 있었다. 꽤나 정확한 발음과 억양으로. 

처음으로 나의 자책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순간이었다. 


그래,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지만, 아주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야. 나도 어린 시절 엄마가 일 나가고 아빠랑 티브이만 몇 시간씩 보며 자랐지만 문제없이 잘 자랐어. 이 것이 이 아이들의 시대고 문화고 환경이야. 당연한 거야.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고 나를 몰아붙일 필요는 없어. 때가 되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할 수 있어, 나에게 책 읽는 시간이 조금씩 주어진다면, 내 옆에 큰 아이가 붙어 함께 읽을 테고 동생은 언니 옆에 붙어 앉을 거야. 티브이는 거실에서 치워도 될 거야. 지금은 엄마를 위해 조금만 더 보게 할게.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영상으로 배워 줘. 너무 오래는 아닐 거야. 


그렇게 오늘도 나는, 우주송을 약 10번 응가송을 10번 정도 보았다. 둘째는 볼 때마다 해왕성까지 영어로 가르쳐준다. 엄마, 머큐리, 비너스, 어(쓰), 마쓰~~ 주피터, 쌔터(턴), 유라~(유러너스), 네튜(넵튠)~~~

(소리는 지르지 않아도 돼.) 덕분에 태양계 다시 공부하고 있다. 일석이조다.(라고 좋게 생각하려 하고 있다.)

매일 최소 10회 이상 강제 시청. 출처 주니토니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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