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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Oct 26. 2020

40개월의 인내, 일주일의 찌릿함

세 아이 모유수유, 마지막 단유를 기록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여기서 가슴은, 정말 물리적 가슴을 뜻한다. 열이 나고 딱딱하다. 스치기만 해도 '악' 소리가 난다.
괜찮다. 이 고생도 며칠만 하면 끝이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 모유수유가 끝나가고 있다.



모유수유를 하려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애를 잘 낳고 보자 주의였고, 애를 낳으면 당연히 모유수유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육아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육아 초기에 모유수유로 갈지, 분유 수유로 갈지, 혼합수유로 갈지 은근 선택의 압박이 밀려온다. 젖을 빨지 못해 울어대는 아기를 보면 '왜 젖을 빨지를 못하니', '난 모유수유는 글러먹었나 봐', '그냥 맘 편하게 분유 수유로 할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최종선택은 엄마의 몫이지만, 엄마의 몫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 신생아이다. 잘 빨아주면 모유수유로 기울고, 젖병만 쭉쭉 빨아대면 엄마의 분유 결심을 서게 만든다. 나의 모유수유는, 나의 게으름과 나의 세대주가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첫째를 낳고 젖몸살이 심했다. 막말로 분수쇼였다. 유축만 하기엔 손목이 이미 너덜거렸다. 조리원 아기 케어하시는 분들이 나 같은 가슴은 '직수'로만 젖 뭉침을 풀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아가는 잘 빨아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며칠 밤은 일어나 분유를 타서 먹여 보았다. 정말 '며칠'이었다. 밤에 일어나 분유물을 알맞게 데우고 거기에 알맞은 양의 분유를 타서 흔들여 녹이고 그걸 다 먹이고 트림까지 시켜 재우는 일은, 나에겐 못할 짓이었다. 그러고 나면 잠이 다 깼다. 겨우 잠이 들려하면 아기는 다시 깼다. 하루만 더 하면 죽을 것 같아 그냥 아이에게 밤수를 했다. 젖을 물리면, 젖을 물다 잠이 들었다. 자주 깼지만 분유를 타는 일보다는 훨씬 나았다. 아침엔 싱크볼이 분유병으로 가득 찼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면, 잠도 안 깬 초보 엄마는 짜증부터 확 났다. 나는 잠이 많은 게으른 사람이라 밤에 깨서 분유 탈 정도로, 즐거운 마음으로 분유병을 설거지할 정도로 모성이 강하지 않았다. 나의 게으름은 모성보다 셌다.(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이 일련의 밤 수유 과정을 아빠가 해주면 분유 수유를 지속할 수 있다. 많은 아빠들이 밤에 분유를 한 두 번 타서 먹이고 재우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나의 세대주는, 육아의 DNA는 존재하지도 않은 채 사상은 500년 전 분이시다. 육아는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기에, 밤에 울어대는 아이는 도저히 처치곤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처음엔 도와주려 했으나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고, 얼굴 빨개지게 우는 아이를 보며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참는 인자도 없는 사람이다.(지금도 그렇다.) 육아에는 손을 안 대는 사람에게, 분유를 타 먹이고 트림 시키고 재우는 쓰리 콤보를 시킬 수는 없다.(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무조건 시키라지만, 그것도 사람 봐가며 해야 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자의 반 환경 반으로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첫째는 14개월을 했다. 밤에도 세 번씩 깨는 아이를 물려 재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침마다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아팠다. 젖을 끊어야겠어! 정확히 기억한다. 2016년 8월 1일, 오늘부터 단유 시작! 얼마나 무식한 단유인지 지금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때는 곧 닥쳐올 젖몸살을 몰랐으니까. 식혜 무한 드링킹과 조금씩 짜내기 말고는 한 게 없었다. 출산 직후의 젖몸살과 맞먹는 고통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단유에 성공했다. 밤에 자면 아침에 일어나는 나날이 늘어갔다. 정말 살만했다.


둘째도 역시 모유수유였다. 이미 모유수유가 몸에 익어 편한 나였다. 분유는 어떻게 먹이는 지도 몰랐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모유수유다. 모유와 분유는 일장일단이 있지만, 내가 느낀 모유수유의 장점은 편하다. 마냥 편하다. 그냥 시간 되면 물리면 끝이다. 다른 게 더 필요 없다. 또 외출 가방도 너무 홀가분하다. 수많은 분유 관련 용품품이 다 필요 없다.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분유값, 분유병에 들어갈 돈이 절약된다. (물론 엄마가 많이 먹어줘야 하는 비용은 있다.) 무엇보다, 아이와의 유대감 형성. 이 것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엄마와 아이만의 정서적 교감, 이 것 하나만으로 골반과 척추 뒤틀림, 손목 나감, 어깨와 목 통증, 다리 저림, 수면 부족, 엄마 영양 부족 등등 수많은 모유수유의 부정적 영향이 다 커버되는 기분이다.(정말?) 밀착된 품에서 보는 아이의 볼, 입, 스르르 감기는 눈. 더 고민할 것이 없이 모유수유다.

둘째는 12개월을 했다. 요령이 생겨 밤에는 눕수를 했다.(그렇다, 첫째는 눕수도 아니었다. 매번 앉아서 수유하고 잠들면 재우고 나도 누웠다. 수면 부족이 당연한 밤수였다.) 누운 자세에서 아가도 먹이고, 나도 자고. 그러다 둘째는 자연스레 젖 먹는 횟수를 줄였다. 젖몸살이 좀 있었으나, 첫째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단유였다. 통증도 거의 없었다. 행복한 단유였다.


2019년 9월 초 막내를 출산하고 2020년 10월 셋째주까지 모유수유를 했다. 만 14개월을 채 못 채운 나날이다. 막내라 우아하게 분유 수유할까 고민도 조금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모유수유가 편한 사람이다. 더 이상 아이는 안 키울 건데 막대한 분유병 처치도 곤란이었다. 그냥 하던 대로 하자, 사람 변하면 못 쓴다.

조금씩 수유 횟수를 줄이다가 금요일부터 물리지 않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아파 욱신거린다.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가슴 아파도 나 이렇게 웃어요~ 정말 웃음이 난다. 이제는 진짜 끝인 걸 아니까. 며칠만 지나면(경험상 일주일 정도였다) 이 통증도 없던 일이 될 테니까. 좋아해도 젖 마를까 봐 차마 먹지 못하던 식혜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니까. 좋아하는 참치회 죄의식 없이 마음껏 먹어도 되니까.

남들 다하는 단유마사지도 해보려 한다. 첫째 때 무식하게 단유했더니, 모유 찌꺼기가 유선에 남아 둘째 모유수유 초기에 잊기 힘든 통증으로 고생을 했다. 모유 찌꺼기가 남은 것이 후에 유선염을 일으키고 심하면 유방암도 될 수 있다고 하니, 세대주가 단유 마사지 받으라고 한다. 단유 마사지도 받고 단유 약도 먹고, 제대로 해보련다. 내 인생 다시는 없을 단유니까.





장장 40개월이다. 내 인생에서 3년 4개월을 모유수유로 가득 채웠다. 덕분에 마흔이 되려면 1년 이상 남았는데, 나는 거북목이 말기 상태이고 어깨가 앞으로 굽었다. 척추도 앞으로 휘었고 손목은 너덜거려 콜라를 열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골다공증도 심할 것이다. 수유하는 내내 빈혈도 심했고 조금이라도 잘 챙겨 먹지 못하면 컨디션이 바닥을 쳤다. 모유수유는 실로 고행과 인내의 연속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모유수유 역시 그러하다. 고행의 끝이 보이고 있다. 인내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너무 기뻐할 일은 아니다. 이제 겨우 수유부 엄마를 벗어나는 것이고, 나의 앞길에는 여전히 학부모와 사춘기 자녀 부모, 입시생 자녀 부모 등등 더한 고행과 인내의 타이틀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참, 초보엄마 혹은 예비엄마들이 나에게 물어오면 나는 대놓고 '분유수유'하라고 한다. 모유수유는 말 그대로 '고행'이어서, 즐거운 육아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분유수유'가 필수다. 육아 자체가 고행인데, 1+1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위에 밝힌 대로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 나의 세대주 탓에 모유수유를 했을 뿐이지, 다음 생에 다시 해야한다면 반드시 분유수유하고 말 것이다.(다음 생에 굳이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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