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Nov 03. 2020

목숨 걸고 순댓국

비 오는 날의 전력 라이딩

   둘째가 100일 즈음일 무렵, 그날따라 아이는 오전 잠을 자 줬다. 사실 아이를 재우기 전부터 고민이었다. 순댓국을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아침부터 떠오른 순댓국은 오전 내내 머릿속의 팔 할을 차지하고는, 시간이 갈수록 더 진한 냄새를 풍겨왔다.


   아이를 눕혔다. 그래, 오늘같이 적당히 춥고 적당히 구름 낀 날은 순댓국을 먹어줘야 해. 이런 날 순댓국을 먹으려고 나는 태어난 거야. 그런데 어떻게 먹지. 시골이라 배달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포장인데, 가장 가까운 집을 검색해 보니 1.4km 떨어져 있었다. '순대 많이요, 다진 양념 따로 포장요'를 잊지 않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져와서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다. 아이가 자는데, 지하주차장 가서 시동을 켜고 차를 타고 신호를 기다린 후 주차를 하고 다시 시동을 켜고 집까지 오고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사 올 수가 없었다. 자전거! 그래, 후딱 타고 사 오는 거야. 구세주처럼 자전거가 떠올랐다. 1.4km는 걷기엔 멀고 차로 가기엔 가깝지만 불편했다. 자전거로 다녀오기에 최적의 거리였다.


   첫째 아이를 임신해 낳아 기르고 또 둘째를 임신해 낳고 모유 수유하며, 자전거를 만 3년을 쉬었다. 그래도 뭐, 타면 되지. 오랜만이라 자전거는 꽤 묵직하게 느껴졌지만, 페달을 밟으니 곧 앞으로 나아갔다. 아, 이 얼마 만에 느끼는 자전거의 상쾌함인가! 내가 밟는 만큼 나아가고 내가 핸들링하는 만큼 전환되는 순수한 전진! 자전거가 일깨운 라이딩 세포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400미터 즈음 가니까, 비가 오기 시작한다. 이럴 수가. 이건 예상에 없던 건데. 빨리 다녀와야겠군. 페달 밟는 발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허벅지의 근육들도 덩달아 긴장한다. 한적한 길이 끝나고 우회전하니, 우직한 1차선이다. 800미터 정도만 직진하면, 나의 순대들이 따뜻한 육수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장에 도착한다.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차도에 들어서 긴장해서인가. 자전거를 일자로 몰지 못하겠다. 초보처럼 갈지 자로 움직인다. 이게 아닌데. 페달을 밟을수록 힘만 들어가고, 나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자전거의 힘은 세지고 있다. 그럴수록 빗줄기는 굵어졌다. 이미 옷은 다 젖었다. 설상가상이다. 신호가 바뀐 차도를 차가 점령하기 시작했다. 맞은편 차가 안 와서 다행히 중형차는 알아서 나를 비켜갔다. 그러나 그 뒤에 있는 트럭이 문제였다. 1차선 답게, 맞은편 차가 오자 트럭은 빵빵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놀란 나는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았으나, 자전거는 오히려 도로 가운데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자전거가 고장 났나? 나의 라이딩 실력이 이렇게나 줄었다고? 길이 잘못 설계되었나? 뭐가 문제지? 하는 순간, 자전거는 나를 도로 한복판에 눕혔다. 물론 자전거도 함께. 트럭은 삐ㅡ 삐이ㅡㅡㅡㅡ 특히 두 번째 경적을 아주 크게 울리며 멈췄고, 들리지는 않았지만 운전사는 심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경적 소리에 묻혀 나에게까지 들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걸까. 순댓국보다 더 뜨거운 뭔가가 내 안에서 올라오는 걸 느끼며, 자전거를 도로 옆 수풀에 던져버렸다. 아직 순댓국집이 멀리 보이는데, 방법이 없었다. 뛰었다. 갑자기 긴장한 허벅지 근육이 아파오는 것을, 트럭 뒤에 밀린 차들이 나를 비웃으며 슝슝 지나가는 것을, 눈에서 흐르는 게 비인지 내 것인지 헷갈리는 것을 느끼며 뛰었다.

운전사뿐 아니라 트럭마저도 나를 한심하게 내려보는 것 같았다.


   순댓국집에 도착하니, 아저씨가 한 말씀하신다.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해요, 다 식어서 맛도 없겠네."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검은 봉지 손에 쥔 채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아, 아기! 깼다면, 엄마를 부르짖으며 울고 있겠지. 젖먹이를 두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순댓국을 먹으러 나와서는. 아기가 우는 소리가 새 나가면 옆집 앞집은 엄마를 탓하겠지. '저 엄마는 애보다 순댓국이 중요한가' 나의 모성이 부족함을 탓하겠지.

   다시 전력 질주했다. 자전거 있는 곳까지 도착해서,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힘차게 자전거를 밀며 뛰었다. 비는 여전히 거세게 내렸다. 차도가 끝났다. 이제 우리 집까지 400여 미터가 남았다. 자전거를 탔다.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서,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 페달을 밟았다. 갈지(之) 자 운행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딱이었다. 겨우 집에 도착해 자전거를 보니, 바퀴에 바람이 빠져 있었다. 처음부터 납작해진 바퀴의 자전거를 끌고 나갔던 것이다. 오히려 그만큼 탔던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납작한 바퀴였다.

     


   다행히 아기는 깨지 않고 잘 자고 있었다. 아기를 보는 순간 내 안의 모든 바람도 다 빠져 버렸다. 바람 빠진 자전거와 퍼붓는 비 덕분에, 나도 납작해져 버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중력의 거대한 힘을 실감했다. 순댓국을 먹을, 아니 숟가락을 들 힘도 없었다. 이름 모를 서러움이 다시 내 안에서 뜨거워졌다. 순댓국 먹는 게 그리 잘못한 일인가. 아기 엄마는 순댓국 먹으면 안 되는 건가. 나 도대체 뭘 잘못한 거지. 그게 그렇게도 큰 욕심이었나. 비는 도대체 왜 내린 걸까. 자꾸 다른 걸 탓하려 해 봐도, 후회는 자책으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차를 타고 갔으면 지금쯤 우아하게 다 먹었을 것을, 왜 난 자전거를 타겠다고 신나 했던 걸까.  


   아기가 깼다. 울고 있을 수 없다. 아이를 안아 달래고 기저귀를 갈았다. 내가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아무리 젖을 물려도 아이는 울어댔다. 배고픈 모녀의 울음만이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엄마는 강해야 했다. 순댓국을 데우고, 아이를 업은 채 먹었다. 너무 뜨거워서 입천장을 데었다. 힘이 없어 떨리는 손으로 순댓국을 다 먹었다. 허기를 채우니 서러움이 밀려났다.



   

   이게 3년 전 일이다. 그 이후로 자전거를 더 타지 못했고, 순댓국은 많이 먹었다. 순댓국은 여전히 나의 소울푸드이지만, 자전거는 어째 함부로 타지 못하겠다. 물론 바퀴에 바람은 넣었다. 뚱뚱한 바퀴를 보면 가끔 타 보고 싶은 마음이 일렁거리지만, 아직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하늘이 화창한 어느 날, 비가 전혀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날 용기를 내 보고 싶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오도독 주제 글쓰기 '자전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