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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Dec 12. 2020

여자의 운명을 바꾼, 쌀국수

쌀국수와 전투기, 그리고 비혼주의자의 결혼

   약속 장소는 광화문이었다. 여자는 조금 일찍 나갔다. 연이은 소개팅에 지쳐 있었다. 이번만 만나고 좀 쉬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을에는 남자 친구를 만들어야 크리스마스를 혼자 안 보내는데, 올해도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이 들면서 서로 마음이 맞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억지로 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고, 억지로 하면 오히려 그르칠 일이 연애였다. 오늘도 밥이나 한 끼 같이 먹겠지, 하며 늦름과 초가을의 광화문을 디디고 있었다.


   누군가 인사를 해 온다. 어라, 분명 군인이라고 했는데, 학생 아니야? 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묻는다. 네, 안녕하세요. 소개받은 그 사람이 맞다. 와, 이런 군인도 있구나. 상상 속의 직업군인은 헐크보다 약간 덜 우람한 알통을 지닌 검은 피부의 소유자인데, 이 사람은 크지 않은 키에 오히려 흰 쪽에 가까운 피부에 안경까지 썼다. 조끼에 백팩을 멘, 전형적인 늦깎이 대학생의 모습이다.

   서로 짧은 인사를 하고, 상대방이 약속 상대가 맞음을 확인했다. 일단 식사를 해야 하는데.. 남자가 말을 꺼낸다. 중국어를 공부하셨다고 하셔서, 이 주변 중국음식점을 찾아봤거든요.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없어졌네요. 난감한 표정이다. 여자는 속으로 웃음을 참는다. 하아, 내가 중국음식 10년 넘게 안 먹다가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별로인데, 다행이다. 없어져서. 참은 웃음을 미소로 바꾸어 얼굴에 장착한다. 괜찮아요, 중국어 공부할 때 엄청 많이 먹어서 오늘 안 먹어도 돼요. 음.. 쌀국수 좋아하세요? 쌀국수도 괜찮을 것 같은데.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여자는 정말 그저 쌀국수가 먹고 싶었다. 어차피 그냥 한 끼 식사할 상대면, 먹고 싶은 거나 먹자 이 생각이었다. 검색해 보니, 가까이에 쌀국수 체인점이 있었다. 남자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이내 앞장섰다.


   여자는 거의 한 달간 주말 스케줄을 소개팅으로 꽉 채웠었기 때문에, 식사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볍게 쌀국수 두 개와 간단한 사이드를 두 개 시켰다. 어떻게 오셨어요, 덥지는 않으셨나요, 오시는데 얼마 걸리셨나요, 요즘 많이 바쁘신가요, 정도로 물은 후에 물 흐르듯 직업에 대해 물어보면 된다. 식사가 나오고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어색함은 없다. 쌀국수는 늘 그렇듯 맛있고, 국물 좀 들이켜고 싶은데 첫자리니만큼 꾹 참으며 숟가락으로 호로록 거려 본다.

   여자는 아는 후배와 처음 쌀국수를 먹었는데, 처음부터 너무 맛있어서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남자는, 공교롭게도 유일한 출국 경험이 베트남이었다고 한다. 석사 때 학회 일정으로 교수님을 따라 베트남을 가서 7-8일 있었는데, 길거리 쌀국수를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한국 쌀국수와 맛이 똑같나요?라는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베트남이 국물이 조금 더 진한 거 같은데 대체로 비슷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남자는 왜 베트남에서 쌀국수가 생기게 되었는지 유래를 말해 주었다. 베트남의 기후와 전쟁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쉽게 설명해 주었다. 역사와 전쟁사, 문명사에 무지한 여자는 남자의 그런 해박함이 좋았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 같았다. 여자가 끄덕이며 반응하고 호기심 있어하는 모습에, 남자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유래와 역사, 한국과 북한에서의 냉면 차이 같은 것들도 말해 주었다. 어떻게 이런 걸 이렇게 잘 알아요? 군인 맞아요? 하며 웃는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군인이라 이런 걸 더 잘 알아야 해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전쟁 이야기를 하다, 뜬금없이 전투기가 대화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남자는 약간은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전투기 이야기를 했다. 여자는 그저 들었다. 싫지 않았다. 싫다기보다 오히려 묘한 교감을 느끼며 들었다. 전날 수업 시간에 전투기를 배웠기 때문이다. 여자는 마침 그 학기, 대학원에서 중국군사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지도교수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나만 개설할 수 있는 수업이라며 야심 차게 중국 군사 개론을 개설했다. 중국의 당-정-국가 체제에서 군의 위상, 군 출신 정치인, 무기체계, 전략 및 전술, 미국과의 밸런스 이론 등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다. 여자는 중국 군사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여기서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이라 하고 유명 사립대학의 중국학 교수, 육군 중령, 국회의원들이 청강 오는 수업이라 하니 그저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듣게 되었는데, 듣다 보니 신세계였다. 흥미로웠다. 남자를 만나기 전 하루 전날 수업에서, 미그기와 F-15, 중국 전투기는 'J'로 시작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여자는 그런 수업 내용을, 다음날 소개팅남에게 듣게 된 현실을 신기해했다. 남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다가 나아가 먼저 치고 나간다. 미그기가 소련 전투기인데, 중국이 그 전투기를 본받아 자체 개발한 전투기에 J로 시작하는 네이밍을 하게 되죠,라고 간단히 전날 수업에 들은 것을 읊었다. 남자는 잠시 놀라며, 여자는 이런 내용 잘 몰라요 라고 말한다. 여자는 웃는다, 맞아요, 저도 몰랐어요, 하필 어제 이걸 수업시간에 들었어요. 남자는 한동안 놀란 표정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남자와 여자는 첫 만남에 쌀 국숫집에서 전쟁과 무기와 음식을 대화 주제로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여자는 지금까지 소개팅한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박식함과 깔끔한 모습이 좋았다. 이야기할수록 군인다웠다. 몸으로 싸우는 군인 말고, 머리로 싸우는 군인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예의 바르면서 밝게 웃는 여자의 모습, 전쟁사와 무기체계를 충분히 이해하는 그녀의 학업 수준을 맘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여자에게 이런 소개팅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서른이 넘어 하는 소개팅은 대부분, 사는 곳이나 학교와 직업과 친구들, 취미 활동에 대해 묻다가 대화가 뚝뚝 끊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괜찮으면, 결혼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러면 여자는 곧 대화의 흥미가, 더불어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 떨어졌다. 여자는 비혼 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여자가 보고 배운 배우자는, 아빠였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책임감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아빠 때문에 여자의 엄마는 가장이 되었고 쉬지 못했으며 늘 고달팠다. 여자가 보고 배운 엄마의 삶 때문에, 여자는 자연스럽게 비혼 주의자가 되었다. 결혼은 여자만 힘들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테야,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여자가 원하는 사람은, 아빠와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책임감'이 가득한 사람,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 여자는 영원히 비혼 주의자로 남을 운명이었다. 그래서 자유연애나 할 생각으로 소개팅을 해 왔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하는 소개팅은, 사실상 맞선이었지 '애인 구함'의 목적은 아니었다. 이 까닭에 늘 실패했었다. 서로의 목적이 다른 남녀의 만남은, 서로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없기에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다.

   

   쌀국수를 함께 먹으며 앞에 앉았던 남자는 달랐다. 삶이 중심이 있는 모습이었고, 자신이 배운 것을 체현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군인이면 전쟁나 걱정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것은 그가 가진 '책임감'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청계천을 가볍게 걸어보려 했는데, 남자의 폰이 울린다. 저만치 가서 전화를 받은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쭈뼛쭈뼛하더니, 부대에서 긴급 복귀 명령이 떨어져서 바로 가봐야 한다고 한다. 미안함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한다. 나라에 메인 몸이라 어쩔 수 없어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생소한 그러나 조금은 강직한 낯섦이 툭 왼쪽 가슴에 떨어짐을 느꼈다. 마냥 자유스러웠던 그녀의 삶에 '나라에 메인 몸'은, 조금 생경하고 꽤 괜찮은 어휘들의 조합으로 다가왔다. 마음에서 자꾸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농담처럼 꺼내 보았다.

"전 진짜 괜찮아요. 정 미안하면 다음에 맛있는 거 사 줘요. 책임질 수 있겠어요?"

"제발 책임지게 해 줘요."


   이전의 썸남들이나 소개팅남들은 '책임'이란 단어에, 거부감부터 드러냈다. '내가 왜 책임져야 하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달랐다. 군인이라 그런가, 아니었다. 직업과는 상관없이 그런 사람이었다. 군인 치고 작은 키와 군인 치고 검지 않은 피부, 외관은 그의 삶을 대하는 무게감와 책임감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여자의 비혼 주의에도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다. 비혼 주의가 비, 비혼주의로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날이었다.

   물론 그 남자가 이성으로서 맘에 든다거나 첫눈에 반할 정도로 여자의 이상형에 가깝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상형에는 꽤 멀었다. 그러나, 여자에게 30년 동안 굳건했던 비혼 주의가 굳건하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 날 남자와 여자가 쌀국수를 먹지 않았다면, 그래서 베트남과 음식과 관련된 문명사와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쌀국수에서 비롯된 전쟁 이야기와 전투기는 여자의 삶을 흔들어 버렸다. 여자에게 쌀국수는 자신의 운명을 바꾼, 자신이 정했던 운명을 자신이 스스로 비틀게 한 음식이었다.





   만남이 있었던 다음 해 초여름,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딸만 셋을 낳았다고 한다. 진급식 날이나 시아버지 추모공원을 다녀오는 날이나, 그저 출출한 날이나 여지없이 쌀국수를 먹으며 행복하게, 그리고 어떤 때는 찌질하게 어떤 때는 참담하게 대체로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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