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Jan 04. 2021

조연에서 주연으로

나를 둘러싼 서사의 주연은 당연히 나

#scene1,

   여고 교실, 주인공은 역시나 ㅈㅈ이다. 반장에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들도 그 친구만 좋아하고 사실 똑똑하고 발표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 아빠가 학교 선생님이시고, 이 아이는 유머 감각까지 갖추었으니 주인공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그런 친구에게는 언제나 성격 좋은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얼굴은 조금 떨어져서 선생님들이 '맹꽁이'나 '금붕어'로 부르는 그런 친구(입이 돌출이다). 성격이 좋아 무슨 얘길 해도 웃으며 받아주고, 성적도 1,2등 주고받으니 대화 상대로는 딱이다. 가장 친하지만 나름 견제하고 늘 주연 옆에서 웃는 얼굴로 나오니, 청소 시간엔 마대걸레 마이크 삼아 방송반 노래들에 맞춰 콘서트도 열어주고 하니 '조연'으로서는 모든 걸 갖춘 셈이다. 함께 대학 가자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주연은 역시나 'sky' 대학을 가고 조연은 그 아래급?! 대학을 간다. 

주인공 옆에는, 늘 주인공과 찰떡이면서 주인공을 빛내게 해 주는 감초 같은 이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사진 KBS 드라마 '학교'



#scene2,

   그렇게 간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조연. 기숙사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과탑의 미모를 자랑한다. 어문 계열이라 ABAB 대화 맞추며 암기를 해야 하는 과제 때문에 저녁 시간 함께 있다 보면 늘 친구 방으로 밤늦게 전화가 울린다. 술 마신 남자 선배와 동기들이 이 아이 목소리를 듣고파서, '잠깐 앞으로 나와봐' 하는 통에 대화 연습을 할 수가 없다. 과탑 미모의 '주연' 친구는 연신 미안해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주연의 삶인 것을. 잠시만 통화하고 잠시만 나갔다 오고, 하는 동안 조연 친구는 혼자 공부한 탓에 성적은 더 나았지만, 그래 봤자 조연인 것이다. 조연의 성적이나 연애사나 과대(과대표)였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조연의 역할은 주연 친구의 미모를 더 빛나게 하고, 그녀의 인기를 더 실감 나게 해주는 것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조연의 기숙사 밖 가장 친한 친구는 어떠한가. 하필 또 귀엽다고 소문난 친구여서 여기저기서 가만 두지 않는다. 같이 학식에 앉아 있으면 친구에게 쪽지를 주고 가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주연은 미안해 하지만, 조연은 조연답게 '야, 빨리 열어 봐'라든가 '누가 제일 괜찮아?' 하며 옆에서 성격 좋은 얼굴로 말한다. 식사를 끝내고 도서관으로 돌아가도 별 다를 것이 없다. 친구의 자리에는 캔커피와 쪽지들이 놓여 있다. 하나하나 열어 보며 은근히 올라오는 주연 친구의 미소를 확인하고는, 조연은 안 씁쓸한 척 '야야, 빨리 문자 보내 봐' 하고는 자기 자리에서 책을 편다. 

   조연의 호칭은 늘 'ㅈㅇ이 친구', 'ㅎㅅ이 옆에 있는 걔'였다. '너 걔 친구 맞지?? 이거 좀...' 이라는 부탁을 자주 받았다. 술자리에서도 주연 옆에서 호탕하게 웃거나, 주연 친구의 정보를 캐내려 다가오는 이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주기만 하면 되었다. 주연이랑 잘 되고 싶은데 좀 도와달라고 하는 남자가 하필이면 조연이 맘에 둔 친구여도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주연과 그 친구가 조연 덕분에 잘 사귀게 되는 것이 스토리상 중요하다. 조연이 술을 잘 못해 일어서기도 힘들거나 주연 친구의 여러 가지에 대해 다 대답해 줄 수 없어 곤란한 상황 같은 것들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된다. 각자 애인도 만나 보고 소개팅도 서로 주선하고 이별의 아픔도 함께 나눈다. 늘 연애 경험이 많은 주연 친구의 눈물과 슬픔을 역량껏 잘 받아주는 것이 조연의 참된 역할이다. 예를 들면, 헤어진 그의 이야기를 하다가 엎드려 울면 어깨를 토닥토닥해준다거나, 또 연락이 올까 내가 해 볼까, 초조한 눈빛으로 말하면 '아니야, 그의 마음은 이미 떠났어. 추잡하게 그러지 말고 내가 좋은 사람 찾아 볼게, 기다려' 하며 얼른 폰을 잡아들고 친구 목록을 뒤지는 식이다. 이런 친구 덕에 주연들은 늘 다시 기운을 찾고 새 연애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천송이에게 만화방 주인 친구가 있듯이.



#scene3,

   조연도 어쨌든 삶이라는 게 있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셋째까지 임신하게 된다. 셋째 임신 때 영어공부나 해 보자 하며 스터디를 결성한다. 스터디 멤버 중 한 명이 학원 영어 원장이라서, 그 사람이 주축이 되어 스터디가 운영이 된다. 뒤늦게 들어온 한 명이 발음도 좋고 영어도 잘하고 말하는 센스도 좋다. 눈치가 빠르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반응을 보인다. 옷 입는 스타일도 좋고 늘 웃는 얼굴이어서 누구라도 좋아할 '주연'감이었다. 모두는 그녀가 스터디 멤버가 된 것이 기뻤고, 다들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나 점점 스터디는 영어 학원장과 '주연'이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 그녀가 하는 말에 유난히 집중하고, 그녀가 일이 있어 빠지게 되면 스터디 역시 휴식을 갖게 되었다. 그럼 그렇지, 조연이 결성한 스터디가 무슨 의미란 말이냐, 어차피 이야기는 '주연' 중심으로 흐르게 되는 것을.

다행히 '주연'이 '조연'을 좋은 사람으로 봐주고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조연이 만삭에 스터디를 쉬게 되자 유일하게 챙겨 주며 계속 연락을 하게 된다. 역시, 착한 주연 옆에는 적당한 조연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늘 주변과 비교하며 '센터'에 있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컸다. 중심에 있고 싶지만 기어코 가장 가까운 이에게 중심을 내어주는 마음 자체가 중심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가까운 이들은 나를 아껴 주어 꽤 비중 있는 '조연'을 맡을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고 조연은 조연이다. 극이 끝날 때까지 주연으로 치고 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이 조연의 미덕이다. 

   무슨 못난 마음이어서 늘 그들과 비교하며 나를 더 못나게 만들었던 걸까. 질투와 시기심을 바탕에 깔고, '그럼 그렇지' 라던가 '역시 나는 아니지'의 훈련된 겸손(?!)을 갖추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늘 서사의 중심이 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곁에서 끊임없이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하고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 한 이들이 있었다. 수 차례 고백도 받아 보고 오랫동안 나의 주변을 떠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조연의 눈'을 그 마음과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못난 마음을 조금 걷어냈더라면, 얼마든지 그들을 품고 당당히 센터 등극을 할 수 있었는데, 나는 늘 내 곁의 주연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튀고 좀 더 인상적인 조연이 될 수 있을까, 만 생각했다. 내가 나 자신을 조연으로 여긴 이상, 아무리 발버둥 쳐도 '좀 더 비중 있는 조연'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나를 주연으로 만들어 주는 경험을 나에게 주지 않고서, 늘 주연과 그 환경-내가 포함되어 있는-만 탓하고 미워했다. 총체적 못난 마음이었으나, 그 마음 털어낼 마음조차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조연'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의 조연 생활을 끝내게 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아이들'이다. 출산과 동시에 나는 '주연'으로 급부상했다. 꼬물거리는 생명체들은 종일 나만 찾아댔다. 나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아주 대놓고, 아주 보란 듯이, 아주 대범하게. 끊임없는 그 고백에 비로소 나는 내가 내 인생이라는 서사의 주인공임을 실감했다. 더 일찍이 실감했어야 할 것을, 세 아이들이 지금에라도 일깨워 준 것이다. 엄마가 주인공이어야 우리의 이야기가 제대로 시작되고 펼쳐질 수 있어, 엄마가 주인공이어야 나도 우리도 주인공일 수 있는 거야. 

   '엄마'라는 역할은 타인과의 비교마저 불가능하게 했다. 24시간 내내 아이들의 넘치는 사랑을 처치 곤란해하노라면 타인과 비교할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그들과의 비교가 더 이상 무의미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엄마' 배역은 생각보다 쉬웠다. 오롯이 내 삶의 중심을 버티고 서서, 아이들의 눈을 보고 손을 잡고 그들과 깔깔깔 웃으면 되었다.(물론 삶의 중심에서 자주 흔들리기 했지만, 그것조차도 주연의 몫이었다.)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지만 꽤나 재미있는 드라마의 당당한 주연인 것이다.


   그 주연이 이제 하나의 이야기를 더하려고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글을 쓰고 있다.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슬며시 일어나 따뜻한 물 한잔을 곁에 두고 글을 쓴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극작가이자 주연인 본인마저도 알 수 없다. 

   드라마에 작가가 주인공인 경우가 꽤 많다.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거나, 자신의 이야기가 진짜 눈 앞에 펼쳐진다거나, 자신의 이야기로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거나. 아쉽게도 그러기엔 너무나도 단출하고 반복되는 나의 일상이지만, 반복되기에 더 의미 있는 글쓰기이다. 단조로운 일상을 엮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꽤나 멋진 드라마가 될 것만 같다. 


   2021년 새해 봄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주인공 엄마가 아이들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보낸 후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보고 싶었던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목록을 정리하고 몸에 쌓인 지방도 운동으로 덜어내고 오래 지녔던 '작가'의 마음을 써내려갈 것이다. 그 것이 그저 일상을 풀어내는 심심한 글이라 하더라도, 아니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이미 글쓰는 엄마라는 배역으로 주인공이 된 그 자체가 중요하다. 엄마와 작가, 두 배역을 당당히 꿰찬 그녀의 새 이야기가 겨울의 얼음 밑에서 잔잔히 흐르며 성숙하고 있다. 기대하시라, to be continued!


어쩌면, 내가 주인공인 진짜 인생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2021년은 엄마를 조연으로, 쓰고 살아남은 나를 주연으로 삼아볼 수 있길.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의 운명을 바꾼, 쌀국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