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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Dec 11. 2020

엄마의 등을 품고 있는 스웨터

   그 옷을 보면 언제나 엄마의 등이 떠올랐다. 조금씩 굽기 시작한 등, 새벽녘 밀린 설거지를 하는 등, 구부정한 자세로 붓글씨를 쓰는 등. 엄마의 등은 늘 그 옷 안에서 바빴다.      


   겨울만 되면 엄마는 그 스웨터를 꺼내 입었다. 검은 바탕에 빨간 꽃무늬가 듬성듬성 있었다. 그 스웨터를 입고 집안일을 했다. 엄마는 늘 내게 그 옷을 입은 등을 보였다. 부엌에서도, 쭈그려 앉아 손빨래하는 화장실에서도, 붓을 잡은 그 뒷모습도 모두 등이었다. 유난히 추운 날은 옷에 달린 모자도 썼다. 그러면 굽기 시작한 등은 조금 더 넓어 보이긴 했다.      


   내가 결혼을 하던 해에 우리 가족은, 1년만 살고 탈출하자며 옥탑방 월세집으로 들어갔다. 가난의 벼랑 끝까지 내몰린 기분이었다. 2월 말이었다. 허름한 집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봄은 멀게 느껴졌다. 3월 내내 엄마는 검고 붉은 그 스웨터를 입고 살았다. 그 스웨터를 입은 엄마는 어쩐지 추워 보였다.     

   5월 결혼식 며칠 전, 옷을 싸는 데 엄마가 그 스웨터를 가져가라고 준다.     


   “이것만큼 따뜻한 게 없어.”     


   싫었지만, 가져가서 버릴 생각으로 챙겨 넣었다. 신혼의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왔다. 계절 옷 정리를 하다 엄마의 스웨터를 본 순간, 눈물이 쏟아지려 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 엄마는 올해부터 겨울을 어찌 보낼까, 어떤 옷이 엄마의 온기를 지켜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입어 보았다. 엄마가 왜 겨울 내내 그 옷만 입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얇은 내의 하나 입고도 그 스웨터만 입으면 다른 것이 필요 없었다. 아, 이 옷에는 엄마가 있구나. 이 옷은 엄마의 따뜻함을 품고 계절을 지나왔구나. 그러나 이내 벗어 버렸다. 엄마의 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추위를 잊어 보려 노력한 그 등, 세월과 중력을 어쩌지 못해 자꾸 굽기만 하는 그 등 역시 스웨터에 묻어 있었다. 나의 뒷모습이 그 등을 닮고 싶지는 않았다. 몸은 따뜻했지만 마음은 추워지는 기분이었다. 옷장 보이지 않는 구석에 걸어두고 그 겨울을 보냈다.      


   그 후 네 번의 이사를 하고 아이를 셋을 낳고 여섯 번의 겨울을 지났다. 이사 때마다 그 스웨터를 쥐고 한참을 고민했다. 쓰레기봉투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몇 번이었다.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빨간 꽃무늬마다 엄마의 가사노동이 스며 있었다. 엄마의 40대와 50대 초반이 녹아 있었다. 그 옷을 버리는 것은, 엄마의 등을 부정하는 일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지금도 그 옷은 옷장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입을 일도 없다. 나에게는 그만큼 따뜻한 가정용 스웨터가 몇 개 있다. 디자인도 색상도 훨씬 세련된 것들이다. 새 스웨터를 꺼내 입을 때마다 엄마의 스웨터를 애써 무시한다. 그 스웨터는 빨지도 않고 몇 년을 지나 먼지 냄새도 난다. 그저 상징처럼 남아 있는 그 옷은, 버리기엔 아직은 미련과 회한이 내 안에 그득하다. 나는 엄마의 등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게 뒷모습만 보인 채 묵묵히 나와 동생을 키웠다. 식사 준비를 하고 걸레질을 하였으며 운동화를 빨았다. 그 역사가 스웨터에 남아 있어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지난겨울 셋째를 낳고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엄마가 오랜만에 왔다.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주겠다고 옷장을 뒤적거리더니 그 옷을 꺼낸다.     


   “아직 안 버리고 갖고 있네. 이거 입으면 다른 거 필요 없어.”  

   

   또다시 내게 등을 보이고 주방에 섰다. 어째 등이 좀 더 굽고 작아진 것만 같다. 우리 집은 그렇게 춥지 않아서 그 옷 안 입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엄마의 등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쩌면 훗날 나는 엄마의 그 등을 그리워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의 온도와 냄새가 배어있는 그 옷은 영원히 버리지 못할 것만 같다.      


   이번 겨울은 그 옷을 꺼내어 입어 봐야겠다. 그 옷을 입고 아이들을 안아 주고 밥을 해 봐야겠다. 나를 키운 엄마의 등에, 내 아이를 키우는 나의 등을 살포시 포개어 봐야겠다. 조금은, 엄마의 등을 닮아 보고 싶어졌다.      










예스24, 채널예스 <나도,에세이스트> 13회 대상 수상작, 주제 '버리지 못하는 물건'


잡지 <월간 채널예스> 2021 1월호와, 다음달 웹진 채널예스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1kmhkmh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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