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일상일 수 있게 하는 것들
만 2년 만에, 생리를 했다. 할 때가 되었다 싶어 내심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 맞이하고 보니 불편하다 못해 불쾌한 손님이다. 돌이켜 보면 요 며칠 내내 몸이 띵띵 붓고 마냥 졸리고 마냥 무겁고 하던 것이 다 오늘을 위한 전조였다. 생리통이 이 정도였나, 생각해 보면 이 것보단 훨씬 더 심했었던 것 같다. 그땐 진통제로 버티고, 지하철역에서 쓰러질 것 같아 벤치에서 한참 누워있다 엄마 부축받고 집으로 갔었던 적도 있으니까. 일단 며칠 더 봐야겠다. 임신, 출산하고 나서 생리통이 좋아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 기대해 볼 일이다.
생리대가 있긴 한가.. 다행히 2년 전에 사 둔 패드를 구석에서 발굴하다시피 건져냈다. 생리통이고 생리대고, 만 2년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음.. 만 4년이라고 해도 되겠다. 둘째를 갖고 모유수유 12개월, 한 차례 생리하고 바로 셋째를 가지고 모유수유 14개월. 4년을 단 한 번 생리했으니, 그동안의 나여. 부럽고도 부럽구나!(생리에 관해서만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따지자면 매일 생리하는 게 더 나을ㄲ??... 아니야, 이런 질문은 태어나지 말아야 해.) 이제 내 남은 생을 함께할 불쾌한 손님을 맞이한 기분은, 역시나 불쾌하다. 아니 어쩜, 배 속의 작은 부분이 소란스러울 일이, 도대체 어째서 온 몸이 소란스러워야 하느냔 말이다. 머리가 띵하고 편두통에 어지럽고, 소화불량이고 몸이 내내 부어 있다. 주먹이 쥐이지 않을 정도이다. 허리가 끊어질 듯하고 배는 당연히 아프다. 살살 혹은 엄청. 그 와중에 자궁의 수축에 영향을 받은 탓에 방광도 대장도 열일한다. 덕분에 오늘은 종일, '다음 생엔 북유럽에 남자로 태어나 결혼 안 하고 적당히 외롭게 살아야지'라든가, '다음 생엔 돌로 태어나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며 굴러 다녀야지' 이런 생각만 하고 지냈다. 왜 인간의 몸으로,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 이 고통을 매달 겪어내야 한단 말인가, 대체 왜!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폐경까지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 매달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달 맞이하지 않으면 아이러니하게도 내 몸에 이상이 있다는 징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몸에 이상(異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매달 내 몸이 이상(異常) 현상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가벼운 쌍시옷은 나와줘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오해 마시길, '썩을' 말한 겁니다.)
받아들여야 한다, 매달 겪어야 함을, 매달 이루어져야 함을.
그러고 보니, 나에게 매달 일어나는 일들이 떠오른다. 굵직한 두 가지가 더.
하나는, 당연히 월급이다. 단어부터가 대놓고 '한 달'이다. 월급(月給). 오늘은 월급날이었다. 아침에 월급을 확인하고 생리도 확인했다. 월급은 우리의 일상을 일상이게 해 주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월급으로 밥도 먹고 아이들 어린이집도 보내고 이 집에서 자고 씻고 티브이도 보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한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월급 없인, 얼마간은 모르지만, 어쨌든 장기적으로는 사실상 아무것도 못 한다. 나아가 생존과도 직결된다. (로또, 부동산 월세 수입 이런 특수 수입 제외하고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수입으로서의 월급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는, 글이다. 나에게 한 달에 한 번으로서 글은, 공모전이다. 노트북이 내게 온 9월부터 한 공모전에 꾸준히 글을 써 왔다. 예스 24 '나도, 에세이스트'이다. 분량도 부담 없고 매월 주어지는 주제로 가벼운 에세이를 쓰는 공모전이다. 공모전의 주제를 확인하고 무얼 쓸지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2,000자는 나의 글을 담기에 적당한 분량이었다. 써서 내면 발표일을 기다리는 한 달이 내내 행복했다. 당선이 되면 더 기뻤지만, 아니되어도 좋았다. 글쓰기가 업인 누군가에게, 나의 글을 읽게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매달 대상과 우수상 작품들을 만나는 것 역시 그 기다림의 결실이었다. 당선될 글들이 당선되었다.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 중얼거리며 약간의 씁쓸함을 삼키며 다음 달을 위해 썼다. 나는 글을 써야 마음의 힘이 붙었다. 그 힘으로 내일을 살아내고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 번의 도전 끝에 나는 대상 수상자가 되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 월급을 확인하고 생리를 확인하고 오후에 공모전 대상 소식을 확인했다. 한 달에 한 차례 일어나는 일들이-공모전은 결과 확인으로서 '한 달에 한 차례'로 표현했다-, 뭐 이렇게 하루에 몰아서 일어나는가 싶었다. 그래,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지. 월급이 주는 안정감과 생리에서 보는 불쾌함과 당선의 기쁨이 마구 뒤섞이는 그런 날. 그런 날은 기록으로 남겨둬야 해, 하면서 건조한 눈을 껌뻑이며 쏟아지는 잠은 모른 체하며 허리 통증은 억지로 참아가며 브런치에 쓰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에세이 공모전 당선을 자랑하기 위해 이렇게 구구절절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관종도 그냥 아니고 참관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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