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Dec 07. 2020

꽁치를 추억하며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생선, 다시 모습을 드러내길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고등어구이예요. 고등어 굽는 날은 김치만 꺼내어도 될 정도로 좋아해요. 그래서 저도 자주 굽습니다. 반면 저는 고등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비린내를 안 좋아하고, 만졌을 때 물컹물컹한 생선 특유의 촉감도 싫어요. 그래서 고등어를 구우면, 저는 거의 먹지 않습니다. 한 마리를 구우면 남편과 아이들이 다 먹어요. 온 집에 냄새가 가득해져서 영 불쾌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잘 먹는 걸 보면 뿌듯해집니다.

  남편은 해산물을 좋아해서 생선구이는 기본적으로 다 잘 먹어요. 갈치, 삼치, 가자미, 임연수 등등. 유일하게 굴비만 안 먹는데, 제가 유일하게 생선구이 중에 굴비만 그나마 먹습니다.. 하아, 우리 부부 지금까지 잘 사는 게 늘 신기합니다.

  꽁치도 잘 먹었던 것 같아요. 음..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를 쓴 이유는, 신혼 초에 구워보고 이후에 구워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에요. 제 기분 탓인가, 우리 동네 마트만 그런 건가 요즘 예전처럼 꽁치를 보기 힘든 것 같아요. 검색해 보니, 어획량이 급감하긴 했어요. 확실히, 기분 탓은 아니었어요. 어쨌든, 생선구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한동안 '꽁치'는 잊고 살았어요. 세상에 그런 생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고 지냈어요. 고등어만으로도 우리 가족 식탁은 충분히 풍족했고 만족스러웠으니, '꽁치 따위'가 생각날 일이 없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자꾸 '내가 어렸을 땐 뭘 먹었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생선 중에는 첫 번째로 '꽁치'가 떠올랐어요. 심심찮게 상에 올랐어요. 제가 잘 먹지 않으면, 엄마는 기다란 뼈를 발라 살이 두툼한 부위를 뚝 떼어내 제 밥 위에 올려 주었어요. 미간 살짝 찌푸리고 먹으면, 미간이 금방 펴지는 맛이었어요. 저는 소금 찍어 먹는 걸 더 좋아해서 그다음부터는 제가 직접 소금 찍어서 먹고 그랬었어요. 두 마리 구워 오면, 다 먹고 나서 더 달라고 조른 적도 몇 번 있었던 것 같아요. 기다란 뼈는 머리 빗겠다고 들어 올리다 다 같이 웃었던 기억도 나고요. 물론 빗지는 않았어요, 머리에 닿기 전에 엄마가 뺏었으니까요.

  꽁치는 꽤나 자주 먹었어요. 가끔 고등어, 정말 가끔 갈치. 지금은 갈치를 왜 가끔 먹었는지 단박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몰랐어요. 쪼끄만 게 입은 살아서, 갈치 맛있는 건 잘 알았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엄마는 정말 싱싱하고 살이 오른 갈치만 사 왔어요.(갈치를 '가끔'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겠지요..) 제가 사 오는 갈치들은 그 녀석들에 비하면 정말 손자 손녀 느낌이에요. 엄마가 사 온 갈치의 살이 가장 많은 부분을 저와 동생이 다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 나였어도 그랬겠지, 싶은 마음이 갈비뼈 어딘가부터 크게 부풀어 올라요.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런 거더라고요. 생선 살이 가장 많은 부분을 떼내는 마음, 문드러지지 않고 예쁜 딸기를 골라 한 번 더 씻는 마음, 세모 수박을 다 썰고 나서 가장자리 작은 세모 수박만 먹는 마음, 이런 마음은 '부모'의 이름으로 유전되는 마음인가 봐요.


  20대엔 꽁치가 좀, 질렸었어요. 집 앞 호프집에서 매니저 급으로 알바를 꽤 오래 했었는데, 생선구이 안주 삼총사가 있었어요, 고등어구이, 꽁치구이, 그리고 시사모 구이. 고등어는 이따금씩 유난히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날이면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늘 핫했던 시사모 구이는, 몸의 80%가 알로 가득 찼다는, 작고 통통한 그 생선은 제 생선구이 인생에 신세계였어요. 매번 손님이 남기고 가면 한 두 마리 먹어볼까 군침 가득이었지만, 손님들도 그것만큼은 남기는 적이 없었어요. 정말 가끔 매출 폭발하는 날 사장님이 시원하게 10마리 구워주실 때면, 이보다 좋은 알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20대,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기에 원하는 것이 많았던 그 시절의 맛이었어요. 시사모에 묻혀 존재감 제로였던 꽁치구이는 그때부터 제게서 흐려지기 시작한 것 같네요.    


  마트에서 고등어를 살 때마다 괜히 한 번씩 더 둘러보기 시작한 지 꽤 되었어요. 그래도 꽁치는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어요. 한 때 고등어보다 더 우리의 배를 채웠던 그 물고기는 도대체 어찌 된 것일까요. 그 운명은 바다에서 무슨 풍랑을 만난 걸까요. 그 물고기의 안부가 점점 궁금해지던 어느 날, 동네 생선구이 집이 새로 생긴 다기에 가 보았지요. 세상에, 모둠구이에 꽁치가 떡 있는 거예요! 한 마리뿐이어서인지 더 귀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결국 그날, 다른 생선은 먹지 않고 꽁치만 파먹고 왔어요.

얼마 만에 맛보는 꽁치인지, 이 녀석이 이리도 귀할 일인지. 그 맛은 또 어땠을까요, 다 아시잖아요, 가장 무섭다는 아는 맛! 딱 정말 꽁치 맛이었어요. 더 설명이 필요 없는 꽁치 맛.
어렸을 땐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너를 만나고 이렇게나 반가워하게 될 줄은!


겨우 한 마리, 그래서 더더욱 집착하며 먹었어요. 꽁치.



  꽁치. 이름만 들어도 정말이지, 어렸을 때 옆집 친구 이름처럼 정겨운 느낌이에요. 3학년 때 별명이 꽁치였던 친구도 생각나고요. 정말 꽁치처럼 생겼었어요. 그렇게나 친근한 이름이고 먹거리인데,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어요. 꽁치가 없는 가을이라.. 괜스레 삶이 퍽퍽하게 느껴져요. 코로나로 유난히 메마른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꽁치 너마저 이러지는 맙시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유전처럼 이어지는 명맥이 있어야 '세월'의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 세월들이 모이고 쌓여 '역사'가 되는 거니까요. 내 세월의 핏줄 속에 '꽁치'도 흐르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시절이 되면 찾아와 줘요. 그 가냘프고 푸른 몸을 드러내 줘요.




  아무래도 내일은 다시 마트의 생선 코너를 돌아봐야 할 것 같아요. 고등어를 핑계로, 꽁치를 오랜만에 구워보고 싶어 졌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자라지 못한 7살을 놓아주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