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Dec 24. 2020

반복되는 육아의 역사

왜 못난 것들만 반복되는지

   밤 11시 39분.

   11시간 정도를 제대로 끼니를 먹지 못해 주린 배에 넣을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옆에 두고 쓰기 시작한다. 

   육아로 징징대는 이야기는 그만 좀 쓰고 싶은데, 어쩌겠는가. 나의 코 앞 현실이 이 것뿐인 것을.

   실연을 당한 자는 슬픔을 쓰고,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자는 퇴사에의 희망을 쓰고, 백수는 백수 이야기, 애견인은 강아지 이야기를 쓴다. 나는 처절한 애 셋 독박 육아맘이니까 육아 이야기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나를 다독여 주며 오늘도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글을 쓰려한다. 


   9시 반에 불을 끄고 누웠으나, 늘 그랬듯 둘째는 쉽사리 잠들지 않는다. 120cm 침대에 내 몸을 구겨 누워 있으면 둘째는 '사랑의 배터리'를 흥얼거리며 내 목을 꼬집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손가락 사이사이를 간지럽힌다. 그러다 쉬, 쉬, 쉬가 마려워요,라고 해서 화장실을 가면 '쪼르륵-' 정도의 쉬를 한다. 그렇게 네 번을 간다. 배설기관에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하다. 그러다 어둠을 헤치고 언니 옆에 누웠다 언니 발 옆에 누웠다 엄마 위에 누웠다 엄마 팔을 베었다 결국은 절하는 자세로 잠이 든다. 내반슬, 안짱다리가 있어서 절대 엎드려 재우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똑바로 뉘어 잠이 드는 걸 보고 나왔다.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겉옷 하나 걸치니 막내가 호출한다. 토닥토닥토닥토닥 재우고 나오니 우유가 따뜻하지 않다. 전자레인지가 뿜는 주황빛 전자파를 온몸으로 받아 들며 서 있다가, 따뜻해진 우유를 들고 나왔다. 내일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어머님 댁에 가기로 했다. 이동 명령이 떨어져 움직일 수 없는 남편도 거기 있고, 아이들도 남편도 서로 보고파하니 이 한 몸 희생해야지 어쩌겠나. 아침부터 난장판일 테지만, 그래서 지금은 짐 정리를 어느 정도 해 두어야 하지만 이렇게 별 소득도 없는, 오히려 내일 아침엔 후회할 게 분명한 글 나부랭이나 끄적이고 있다. 어쩌겠나, 내가 이런 사람인 것을. 내일부터 또 며칠은 정신없이 지낼 테니, 오늘은 꼭 글을 써야 마음의 배터리가 충전이 될 테니까. 


   우유가 따뜻하고 고소하다, 마음이 조금 좋아졌다. 


   아끼는 동생이 한 말이 자주 떠오른다. '워킹맘은 힘들어 죽을 것 같고 전업맘은 미쳐서 죽을 것 같다'라고. 자기가 본 선배 육아맘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나온 말이다. 나는 전업맘인데, 미치고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적어도 오늘은 그런 생각이 마구 든다. 설거지를 5시간에 걸쳐했고, 막내 재우기만 5차례 시도했으며, 음식물 쓰레기를 두 번을 버리고 밥을 두 번 했다. 밥을 두 번 했지만 나는 저녁은 먹지 못하고 씻지 못했으며 목에서는 피 맛이 난다. 이 시간은 늘 피 맛이 난다. 목에 금이 가거나, 그렇지 않은 날은 맘에 금이 간다. 고작해야 여섯 살, 네 살, 두 살에게 인간의 언어가 아닌 금수의 괴성을 지르는 날이 많아진다. 인간의 언어도 죄다 명령형이다. 안 돼,  하지 마, 저리 가, 치워, 비켜, 동생 봐, 그만해, 말 좀 들어, 혼날래, 맞을래, 정리해, 쏟지 마, 닦아, 제대로 해, 똑바로 해, 말 걸지 마. 이 학대의 최대 피해자는 역시나 첫째이다. 나 같으면 '엄마 싫어!', '미워' 한 번쯤은 반항할 법도 한 데, 한숨 한 번 쉬고는 시키는 대로 한다. 순종하는 법은 아빠에게 배웠으나, 아빠도 없고 할머니도 가신 후 부쩍 무서워진 엄마를 대하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나 순종이다. 

   엄마가 자꾸 '말 안 들으면 엄마 집 나간다'라고 하니까,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긴, 나도 그랬다. 딱 첫째 나이 시절, 엄마가 '이 놈의 집구석 나가 버려야지' 하면 엄마가 정말 집을 나갈까 봐 잠을 자지 않고 버텼다. 그러다 엄마가 집을 나가지 않고 잠이 들면 나도 잠이 들었다. 첫째도 딱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 까닭에,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서 5분 후에 괴성을 질러도 그저 엄마 말을 듣는 것이다. 엄마 말 안 들으면 엄마가 가 버릴까 봐. 나는 커서 절대 저런 말하지 않아야지 했지만, 이틀을 멀다 하고 집 나가는 타령을 아이들 앞에서 하고 있다. 이렇게 나쁜 엄마를 둔 너희는 도대체 무슨 잘못인 걸까. 아무 잘못이 없다, 그저 엄마가 못난 것뿐이다. 

   아이가 보기에 얼마나 내가 인격파탄자 같을까. 내가 봐도 인격파탄자 같다. 인성의 바닥을 치면 올라올 줄 알았더니, 지하로 뚫고 들어가고 있다. 매일이 한계이다. 더 이상 오늘보다 나쁠 수 없어,라고 하고는 어제의 기록을 경신하는 매일을 보내고 있다. 답이 없다.





#1,

2013년,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동료의 집에 초대되었다. 다섯 살과 세 살 두 딸을 키우는 집이었는데,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건 바닥에 있는 기저귀와 수건과 아이 책이었다. 동료 가족을 집에 초대하는데 저런 것도 치우지 않다니. 나름 꽤 커다란 충격이었다. 아니, 저런 건 30초면 치우잖아. 그것도 못 치우고 가족을 초대하다니. 특히, 돌돌 말린 기저귀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2시간 정도 그 집에 있는 내내 그 기저귀가 신경 쓰였지만, 우리가 갈 때까지 그 기저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았다(버리지 못했다).


왜인지 기저귀가 식탁 위에 있다. 왜인지 그 기저귀가 밤에도 식탁 위에 있다. 그 기저귀를 버리려 쓰레기통까지 가는 길에 바닥에서 기저귀를 두 개를 더 주웠다. 여기도 기저귀, 저기도 기저귀, 난리 났네 난리 났어. 


#2, 

3년 전 엄마가 된 대학 동기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 같이 한 집에 모였다. 애 어른 합쳐서 16명인가, 그 숫자에 우리도 놀라며 수다가 계속되었다. 스무 살 때 생각이나 했겠니, 우리가 이렇게 애 하나 둘 데리고 한 집에 모여서 놀게 될지. 구석에서 일곱 살 남아와 네 살 여아 남매가 한 장난감을 갖고 작은 다툼이 있었다. 나는 다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그 아이들의 엄마가 일어나더니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소리를 낸다. 

"야! 너네 떨어져! 당장 내려놔!"

내가 아는 그 친구는 그런 친구가 아니었다. 학교 다니는 내내 통학하느라 수업 듣고 집에 가고 수업 듣고 집에 가고 크게 시끄러울 일이 없는 친구였다. 볼 때마다 그랬다. 결혼하고 애 낳고 엄마가 된 후에 좀 더 친해졌지만, 여전히 무섭다거나 세다거나 날카롭거나 그런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 그 친구가 그렇게 야수의 목소리를 낸 걸 보는 순간, 35평 친구 집이 아니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남매뿐 아니라 모두가 일시 정지되었다. 친구는 조용히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렇게 안 하면 도저히 통제가 안 돼."


매일 밤마다 목에서 피가 나는 것만 같다. 그 친구의 샤우팅은, 지금의 나에 비하면 동반 서반 양반가 규수 수준이었다. 이렇게 안 하면, 도저히 통제를 할 수가 없다. 


#3,

위 친구들 단톡에서 청소 이야기가 나왔다.

- 방청소하다 보면 구석에서 막 밥풀이랑 애들 먹던 게 나와. 진짜 토 나올 것 같아.

- 맞아. 막 곰팡이 피어있고 그래. 

- 맞아. 그냥 음식물의 형체를 갖고 있으면 다행이지. 

그때 나의 첫째는 돌이 지나 있었다. 와, 쟤네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부끄럽지도 않나. 애엄마라고 저런 얘길 저렇게 막 해도 되는 건가. 다짐했다.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얼마나 애를 막 키우면 저렇게 되는 걸까. 음식물이 나오는 청소라니, 생각만 해도 최악이었다.


어제도 장난 감방 구석에서 볶은 멸치 몇 마리를 발견했다. 아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침대 밑에서 오징어포와 머리카락에 뒤엉킨 식빵을 발견했다. 김밥 당근과 단무지는 컴퓨터 책상 밑에서 발견했다. 다행이네, 곰팡이는 없어서.



   어쩜 이렇게, 못난 육아는 돌고 돌아 내게로 오는 걸까. 이렇게 못난 육아만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는 걸까. 내 육아의 못남을 한탄하다가, 육아가 원래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면 조금은 괜찮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내 다시 울적해진다. 이렇게 애써 합리화하지 마, 그냥 니 육아가 엉망진창인 거야. 그 와중에 그에 관한 글이 쓰고 싶다. 이효리의 발언이나 첫째 딸 친구가 이혼가정의 아이가 된 것이나 내 몸의 살이나 새치에 관한 것이나, 쓰고 싶은 글감이 내 머리에서 손 끝으로 나오지 못해 꽉꽉 막혀 있으나, 그 와중에 찌질한 육아의 역사가 흐르고 있는 이야기가 쓰고 싶어지는 것이다. 쓸데없는 욕심이다. 그마저도 어쩌지 못해 이렇게 쓰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써놓아야 할 것만 같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저 세 아이 어쩌지 못해 울고 불고 하는 그런 나날이 있었다는 기록을 이 세상 어딘가 한 구석에 남겨놓아야 할 것만 같다. 그래야 덜 억울할 것 같다. 훗날 역사가들이 버려진 노트북에서, 또는 도메인 사라진 웹사이트 복원하다가 이 글을 발견하고는 '옛날에는 이렇게 육아하는 사람들이 있었군' 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신기해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나를 조금은 측은해할지도 모른다.(미래도 변함이 없으려나...) 다 필요 없고 그저 내 마음 조금이라도 덜어내 보고자 쓴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육아에 지친 마음, 내 감정들을 내가 어찌할 바 몰라 그마저 화나는 마음을 털어낸다. 

   경험상, 이렇게 감정을 배설한 글은 다음날이면 하나같이 후회하고 삭제해버린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이 것이 지금의 나인 것을. 


   오늘도 역시나 육아 고통 서바이벌에서 최후의 1인이 된 기분이다. 어째 만신창이 개선장군이 된 것만 같다. 상처 뿐인 승리. 씁쓸하다. 다행히 내일부터 크리스마스 연휴는, 어머님 댁에서 든든한 육아 도우미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내게 준 선물 같다. 부디 메리 크리스마스. 


   우유 한 잔에 취하는 밤이다. 

다 먹었으면 잠이나 잘 일이지 무슨 가당치도 않게 글이란 말인가





이렇게 쓰는 동안도 막내는 세 번이나 깼고, 기저귀를 갈고 물을 먹여 주고 재웠다. 지긋지긋하다. 언젠가는 끝이 보일 육아라지만, 나에게 육아의 시간은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진다. 막내가 혼자 라면을 끓여먹을 즈음?, 셋을 집에 두고 엄마 아빠 저녁 마실 다녀와도 되는 즈음?을 육아의 끝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역시나 너무나도 요원하다. 


다음 생엔 역시나, 돌로 태어나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그저 비 맞고 바람 맞고 모서리 깎이고 둥글둥글해지는 모습 뿌듯해하며 지내야지. 

아니, 그냥 태어나지 말아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셋째를 임신하고도 바라는 것이 없는 이들의 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