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보케르(Sde Boker)까지의 여정
한국을 떠나 이스탄불을 거쳐 드디어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도 별문제 없이 입국심사를 마치고 수하물을 찾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공항을 나오고부터였다. 처음 느껴보는 중동의 무더위에 나는 한동안 생각이 멈춘 것 같았다. 공항 밖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환영한다는 뜻으로 직사광선의 햇볕을 마구 내리쫴주었다. 그때는 아주 잠시였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곳까지 온 과정을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은 떨쳐내야 했다. 또 서둘러 텔아비브에 있는 키부츠 본부에 가기까지 시간이 많지는 않았기에 어서 길을 나서야 했다.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겨우 물어 텔아비브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20kg의 수하물과 15kg의 배낭을 메고 쩔쩔매는 나를 보고는 군인들로 보이는 젊은 청년들이 짐을 실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다행히도 버스가 텔아비브 시내까지 한 번에 가는 것이었기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안내 방송과 안내문이 히브리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버스가 서는 족족 주변 사람들에게 이곳이 어딘지 물어봐야 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휴대전화로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아가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창 밖의 풍경도 변해갔다. 적막한 도로와 그 위로 달리는 차들, 크고 작은 표지판 그리고 조금씩 보이는 마을, 사람들... 어느새 버스는 텔아비브 근처에 다다랐고 나는 한 외국인이 안내해 준 정류장에 내렸다. 하지만 웬걸 알고 보니 원래 내려야할 곳에서 두 정거장이나 더 가서 내려버린 것이었다. 반대편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서툴렀던 나는 버스를 타고 또 잘못 내리는 것이 무서워 길거리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키부츠 본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성치 않은 돌길을 짐을 동여매고 걷다 보니 본부에 도착해선 캐리어고 배낭이고 다 집어 던지고 싶었다...
키부츠 본부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내 몰골을 보곤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간의 참담함이 얼굴에 보였던 듯하다. 그들은 내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드디어 첫 목적지에 도착하다니... 긴장이 풀려버렸다. 휴 진짜 내가 이스라엘에 오긴 왔구나...
텔아비브 키부츠 본부엔 나 말고도 열댓 명 정도의 젊은 청년들이 등록을 기다리거나 키부츠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몇몇 외국인들끼리 대화하는 것이 들렸는데 일본인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아임 고나 고 투 게바(I'm gonna go to Geva!")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게바는 키부츠 공동체 중에서도 인구가 많고, 즐길 것이 많은 곳으로 많은 발룬티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간혹 원하는 키부츠로 가려는 발룬티어들은 티오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도착한 날 나의 할 일은 키부츠 본부에서 발룬티어 등록을 하는 것이었다. 이후 다시 본부로 찾아와 배정받을 수 있는 키부츠를 순서대로 확인하고 배정을 받아야 공동체로 떠날 수 있었다. 나의 경우 최대한 아시안이 없고 한적한 공동체로 가고 싶었기에 언제 배정받을 수 있는지는 다음 날에야 알 수 있었다. 나는 기다림 끝에 발룬티어 등록 수속을 마쳤고 직원은 날이 밝으면 다시 이곳으로 방문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등록을 마친 후 숨을 돌리고 있는데 앞에 웬 검은 단발머리 여성이 보였다. 이상하게 그 검은 머리가 보통의 검은 머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아시안 중에서도 한국인이 확실한 것 같다 싶어 영어로 한국인이냐 물었더니 네! 맞아요! 하는 반가운 한국 말소리가 들렸다.
이런 곳에서 동포를 만나다니... 너무도 신기하고 반가워 그녀와 손을 마주 잡고 수다를 떨게 되었다. 나이는 몇 살인지 어떻게 왔는지 등등, 알고 보니 그녀는 나와 같이 동행 없이 혼자 이스라엘을 찾아온 스물두 살 동갑내기 친구였다! 우리는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본부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 댔고, 당장 묵을 호스텔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아까는 쌀 포대기 같던 짐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이런 걸 보면 참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나와 동갑내기 친구 인엽이는 근처에 있는 호스텔을 돌며 방이 있는지 문의를 했고 도미토리로 묵을 수 있는 방을 안내받아 짐을 풀고 한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텔아비브 거리를 나섰다.
더위에 지쳐 아까는 보이지 않던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 지중해의 바다, 포근한 여름 날씨 등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걸으며 발이 닿는 대로 시장 구경도 하고,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고, 젖은 채로 피자집에 가 피자를 한 조각씩 먹기도 하고 마치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한둘이 아니라 왜 그러지? 우리가 뭔가 이상한가? 생각했는데 당시에는 이스라엘에서 동양인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우리를 신기하게 살펴봤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해변가에서는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정말 많았다.
하늘이 어두워지며 우리는 서둘러 호스텔에 돌아왔다. 방에 들어가 씻을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겨 나오려는데 처음 보는 중년의 외국 남자가 내가 쓰기로 한 자리의 위 침대에 누워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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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놀래서 눈이 동그래진 나와 인엽이를 보며 그 외국인은 "안녕 아가씨들, 오늘 너희도 여기서 자니?“라고 물으며 능글스러운 이야기를 주절대기 시작했다. 자기는 원래 잘 때 셔츠랑 바지를 다 벗어야 잘 수 있다는 둥, 오늘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자는 둥 여러 폭탄 발언을 이어 나갔다. 낮에 체크인하고 짐을 풀 당시만 해도 5개의 침대가 비어 있었기에 우리는 당연히 여성 전용 도미토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잘못 들어온 건지 당최 무슨 상황인 건지 알 수가 없던 우리는 기겁하고 호스텔 카운터로 뛰어 내려갔다.
"혼성 도미토리"
지금 와 생각해 보면 혼성 도미토리라는 것이 그리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외국에서 충분히 있을 만한 상황이지만 해외 경험이 처음인 나와 인엽이로서는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는 직원에게 방을 바꿔주거나 아저씨를 다른 방으로 보내 달라고 했지만, 직원 또한 우리 둘을 위해 사람을 내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호스텔 직원은 우리에게 비용을 조금 더 내고 다른 방으로 옮겨 묵을 수 있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그런 이상한 아저씨와 잘 수 없다고 판단한 나와 인엽이는 결국 비용을 더 지불하고 조금 더 큰 도미토리 룸으로 방을 옮겼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 방의 손님은 나와 인엽이 뿐이었다. 이스라엘에 첫발을 디디고 일어난 반나절 동안의 일들은 세상이 이렇게 넓은 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나는 겨우 짐을 풀고 씻은 후 침대에 누워 하루의 해프닝을 곱씹다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다음날 잠자리가 낯설어 그런지 눈이 일찍 떠졌다. 키부츠 배정을 받기 위해 호스텔에서 나와 아침을 먹고 KPC 센터에 가서 배정을 기다렸다. 대기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배정을 받거나 발룬티어 등록을 했고 내가 갈 키부츠는 제일 마지막으로 배정이 되었다. 아마 전날 발룬티어 등록순서가 늦은시간이라 그랬던 듯 했다. 인엽이는 나보다 먼저 키부츠 배정을 받았는데 원했던 데로 도심 근처에 규모가 큰 키부츠였다. 다시 길을 떠나려면 한시가 급했기에 나는 그렇게 하룻밤 꿈같던 인엽이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나는 바르샤바 지역에 있는 마을 스데보케르(Sde Boker)라는 키부츠로 배정을 받았다. 스데보케르는 이스라엘 남쪽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키부츠로 마을 주민이 200명 정도 되는 크지 않은 규모의 집단 농장이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의 은퇴 별장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이곳은 평화롭고 한적한 곳이라 했다.
텔아비브에 키부츠 직원은 내게 스데보케르까지 찾아가는 방법과 지도를 설명해 주었고, 혹시라도 찾아가기 전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여러 비상 연락망을 안내해 주었다. 다시 짐을 이고 떠나야 하는 과정, 나는 우선 남쪽 도시로 가기 위해 큰 버스 터미널을 찾아갔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어제는 보지 못한 새로운 광경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특히 군복을 입고 총을 멘 젊은 군인들이 도처에 깔려있다는 것. 마치 우리나라 서울역이나 용산역에 보이는 군인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저들이 갖고 있는 저 총에는 실탄이 들었을까?...
버스가 텔아비브를 벗어나 소도시로 보이는 버스 터미널에 들렀다. 그곳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갔는데 당최 그곳에서 어느 버스를 타야 스데보케르로 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그쪽으로 가는 버스를 놓칠까 무서웠던 나는 터미널을 지나는 여러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그러던 그때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딸로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가다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그녀에게 지금 스데보케르에 가야하는데 어떤 버스를 타고 가야 할지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잠깐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내게 키부츠 발룬티어냐고 물어와 나는 그렇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중년 여성은 스데보케르 키부츠의 여러 행정적인 관리와 발룬티어들을 관리하는 중년 여성 타냐였다. 세상에 이런 운이 따를 수가!
나는 그녀의 도움으로 함께 스데보케르에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터미널을 벗어나자 슬슬 사막의 척박한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도로가 끝도 없이 앞으로 뻗어있었고 길 양옆으로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시퍼랬고 내가 가는 마을의 모습이 너무도 궁금해졌다. 스데보케르는 어떤 곳일까?
어느 순간 크고 작은 집이 보이는 마을로 들어섰고 나는 버스에서 내려 타냐를 따라갔다. 그녀는 내가 당장 머무를 수 있는 발룬티어 숙소는 이틀 뒤에 나올 것이라며 다프나라는 이스라엘 여성의 집에 며칠 머무르면 된다고 하였다. 나는 다프나를 만나 그녀의 방 한쪽 침대에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7월 이스라엘 사막 한가운데의 날씨는 무더우면서도 맑고 쾌청했다. 타냐로부터 발룬티어들을 소개받고, 마을에 있는 다이닝룸(주방 및 식당), 런드리 하우스(세탁소), 킨더 가든(유치원), 마켓, 세컨핸드샵(중고가게) 등 여러 시설에 들러 설명을 들었다.
이스라엘의 어느 키부츠이든 공동체 생활이 주목적인 곳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마을 사람들과 공유해야 했다. 다이닝룸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아침과 점심, 저녁을 먹는 공동 식당이었고, 런드리 하우스에서는 200명이나 되는 스데보케르 사람들의 모든 빨래가 세탁되는 곳이었다.
몇 시간 후 내 룸메이트가 될 루시와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한국인 언니가 저녁 시간에 맞춰 나와 함께 다이닝룸에 가주었다. 정신없었던 하루는 저녁을 먹으며 완전히 풀려버렸다. 타냐와 발룬티어들은 오가는 스데보케르 주민들에게 새로운 발룬티어인 나를 소개해 주었고, 타냐는 내게 당장 내일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할 거라고 안내해 주었다.
앞으로 이스라엘, 이곳 스데보케르에서의 내 생활은 어떻게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