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보케르 주민들의 급식소
아침에 일어나보니 숙소 주인인 다프나는 보이지 않았다. 간단하게 씻은 후 앞으로 일하게 될 다이닝룸으로 향했다. 약속된 시간은 9시였다.
다이닝룸은 건물의 2층에 자리 잡고 있었고 1층엔 여러 공동체 사무실과 화장실 등이 있었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왼쪽 방향 안쪽으로 요리를 담당하는 넓은 주방이 있었는데 주방은 음식의 가열에 따라 콜드키친과 핫키친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대형 디시워셔가 있는 공간이 따로 있었으며,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탁 트인 다이닝룸 사이 넓은 복도 자리에 음식을 제공하는 급식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200여 명의 사람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스데보케르 마을 주민들은 일요일-금요일 아침과 점심을 이곳에서 먹거나 챙겨갔고(저녁은 점심을 싸가서 먹거나 각자 집에서 요리해 먹었다) 토요일 하루는 다이닝룸과 키친도 문을 닫고 모두가 쉬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금요일과 토요일이 주말인 이스라엘은 공동체 내의 여러 사무실과 기관이 쉬었으며 이스라엘의 대다수 식당과 가게들도 영업을 하지 않았다. 발룬티어들은 보통 하루에 7~8시간씩 근무했으며 정기적으로 토요일 하루 쉬고 한 달에 네 번 각자 원하는 날에 쉴 수 있는 데이오프가 주어졌다.
스데보케르에서 발룬티어들이 일을 하는 곳은 크게 세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은 내가 일을 하는 다이닝룸(키친, 디시워싱)이었고, 나머지 두 곳은 덕테이프를 만드는 공장과 병아리 농장이었다. 공장과 농장의 일이 어땠을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에 머무는 내내 비교적 마을 주민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했다.
다이닝룸에서 내가 주로 맡게 될 일은, 콜드키친과 핫키친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급식대로 서빙하고, 음식이 떨어지기 전에 바로바로 채워 넣는 일과 점심 식사가 모두 끝나면 의자를 테이블 위로 올리고 식당 물청소를 하는 일, 그리고 다이닝룸 1층의 공용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다른 모든 일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화장실 청소만큼은 자신도 없고 정말이지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이라고 안 할 수도 없기에 처음엔 코를 막아가며 청소를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기도 했다.
다이닝룸에서의 아침은 대부분 같은 메뉴로 차려졌다. 빵과 잼, 삶은 계란과 신선한 야채(토마토, 오이, 양배추, 치즈, 파프리카 등) 요거트와 우유 시리얼, 커피와 주스 등이 준비되었는데, 사람들은 여러 시즈닝을 이용하여 입맛에 맞게 샐러드를 만들어 먹거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이날은 일을 배우는 첫날이라 아침을 먹고 오후 12시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먼저 일하고 있던 이스라엘인 에이나브의 설명으로 여러 샐러드용 야채와 삶은 계란을 가져왔다. 잘리지 않은 재료들을 식판에서 잘게 자르고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추, 그리고 어떤 가루(큐민가루였던 것 같다)를 함께 넣어 먹고, 빵에는 버터와 과일잼을 발라 먹었는데, 이런 아침 메뉴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6개월 내내 나의 고정 아침 식단이 되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니 콜드키친과 핫키친이 점심식사 준비로 분주해졌다. 나는 그동안 소화시킬 겸 다이닝룸 주변 동네와 놀이터 등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광합성도 하다 12시 조금 전까지 돌아왔다. 나와 함께 일하게 될 다이닝룸 선배 에이나브가 내게 아침과 점심 준비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이곳저곳을 오가며 알려주었다.
그녀가 설명해 준 것 중 아침에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은 빵을 서랍에 채우는 일과 계란 삶기! 였고, 점심에 해야 할 중요할 일은 급식대에 음식이 떨어질 일 없이 채워 넣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1층 화장실 청소와 로비 청소, 2층 다이닝룸 청소 등은 차차 알려주기로 하였다. 에이나브의 설명이 끝난 후 나와 그녀는 키친에서 조리 완료된 대용량 식사들을 배식대로 옮겨두었고 스데보케르 사람들은 급식대에서 자신의 식사량에 맞추어 자율배식을 하여 테이블에서 식사를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을 포장 용기를 가져오거나, 비닐에 음식을 싸가기도 했는데 아마 집에서 식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에이나브는 마을 주민들과 친숙하게 인사를 하며 내 소개를 해주었고 나를 처음 보는 주민들 모두 반갑게 샬롬(Shalom)! 하고 인사를 해주었다. 이후 또 다른 해외 생활(덴마크 워킹홀리데이)을 하며 느낀 거지만 서양의 격없는 인사 문화는 언제 보아도 부럽고 따뜻하다.
다이닝룸의 방문 인원이 많아질수록 음식은 빠르게 소진되어 나는 계속해서 음식들을 날랐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고 키친과 다이닝룸을 오갔다. 1시가 넘어갈 즈음 주민들의 발걸음이 한산해지며, 나와 에이나브, 디시워셔들과 주방장, 그리고 주방 보조 친구들이 모두 식사하러 나와 늦은 점심을 챙겼다.
키친의 주방장으로는 스데보케르 주민인 다니와, 러시아 국적의 블라디미르가 있었고 그들을 돕는 보조역할의 친구들은 군대를 다녀오거나 곧 군대에 입대할 이스라엘인들로, 내 또래거나 나보다 어린 나이의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이 곳 일 중 제일로 하드했던 디시워셔 업무는 대게 해외에서 온 발룬티어들 중 남성이 맡았다.
식사 내내 모든 친구들은 잘 웃고 적당히 수다스러웠으며 따뜻했다. 나는 아직 어색하고 긴장해서 그랬는지 떠들기보다 많이 귀 기울이고 웃으며 식사 시간을 보냈다. 우리와 모든 주민들의 식사가 끝나고는 다이닝룸의 청소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와 에이나브는 다이닝룸의 의자들을 모두 테이블 위로 올리고 바닥에 물과 세제를 뿌려 기다란 솔로 거품을 냈다.
습기가 없는 이스라엘의 초여름인데도 이 일을 할 때면 늘 티셔츠가 땀으로 온통 젖곤 했다. 모든 바닥에 거품을 내고 다시 물을 뿌려 기다란 스퀴즈로 바닥에 나 있는 구멍으로 물을 흘려보냈다. 이 모든 일을 마치면 다이닝룸 서버로서 나의 업무는 끝난 것이었다. 시곗바늘은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첫날의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일을 모두 마치고는 에이나브, 주방 친구들, 디시워셔 친구들과 인사를 마치고 바로 다프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세상 노곤할 수가 없었다. 메시지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나의 안부를 전했다. 제일 먼저 엄마에게 연락을 했는데 안심하는 엄마의 답장을 받고 나서 숙소 밖으로 나와 사막으로 둘러싸인 스데보케르의 대지를 바라보았다.
이스라엘 사막 한 가운데에 내가 두 발을 딛고 있었다. 아 정말 이 먼 땅에서, 어제도 알 수 없었던 곳에서 지금 일을 하고 있구나. 살아가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