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사 Mar 06. 2024

6. 체코인 룸메이트가 생기다

루시와 동거를 시작하며 (feat. 사막 트래킹)

발룬티어 숙소에 드디어 내가 들어갈 침대가 생긴다고 했다. 기존에 있던 여자 발룬티어는 체코에서 온 루시(Lucie)와 그녀와 함께 살던 한국인 영남 언니 이렇게 둘이었는데, 영남 언니는 공동체 생활 보다는 여행을 하고 싶어 이곳을 떠나기로 했고 언니가 머물던 곳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영남언니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고요하고 한국인이 없는 곳의 공동체 생활을 원했기에 머나먼 스데보케르까지 오게 되었다고 얘기해주었다. 언니는 다음 주 월요일에 이곳을 떠나고 나는 그날에 맞추어 방을 옮기기로 하였다.


일부러 한국인이 없는 곳을 찾아왔지만, 막상 마주친 한국인 영남 언니는 잠시나마 내게 가뭄의 단비 같았다. 언니의 소개로 발룬티어 숙소의 외국인 봉사자들을 소개받았고, 언니로부터 본인이 지내며 느꼈던 여러 감정과 이곳 생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마침 안식일이었던 그날 오후, 루시가 벤구리온(이스라엘 초대 총리) 무덤으로 사막 트래킹을 갈 예정인데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어왔고 나는 흔쾌히 따라가겠다고 했다.



다비드 벤구리온(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다비드 벤구리온(Dawid Ben-Gurion, 1886-1973)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를 지낸 정치인. 어릴 때부터 그는 열정적으로 시오니즘을 지지했으며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가 만료한 후 이스라엘을 세우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건국을 주도한 국부로 이스라엘 국민들로부터 추앙받는 인물이며,

1970년에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그가 살던 키부츠 스데보케르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죽었다.

1998년 5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중의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위키백과 참고)


나, 영남언니, 루시, 미다스
TV 다큐멘터리에서 봐온 광활한 사막 대지
후안과 미다스


나와 루시(Lucie, 체코), 영남 언니, 미다스(Midas, 네덜란드), 후안(Juan, 과테말라) 이렇게 다섯은 가볍게 채비를 마치고 트래킹을 나섰다. 7월의 오후 스데보케르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았고 건조한 햇살이 사막 대지를 내리쬐고 있었다. 우리는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며 계속해서 걸어갔는데 걸어도 걸어도 풀떼기는커녕 계속해서 거친 철책과 사막의 지형만 보였다. 알고 보니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찾아가는 길을 몰랐던 상황...



결국 돌고 돌아 두 시간 만에 벤구리온 무덤에 도착했는데 생각했던 만큼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다.(나는 아마 한국에서 봐온 왕릉 같은 규모를 예상했었나 보다) 마치 고인이 살아생전 소탈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덤 자체는 조촐했으나 이곳까지 오가며 사막에 사는 야생 동물 구경도 하고 어마어마한 자연경관도 경험했으니, 몸이 탈 대로 탔어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야생 염소 누비안 아이벡스(Nubian ibex)


트래킹 이틀 후 돌아온 월요일, 영남 언니는 짐을 쌌고 여행을 목적으로 스데보케르 마을을 떠났다. 나는 발룬티어 숙소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짐을 쌌고, 잠시동안 나를 거두어 준 다프나와 잠깐의 수다를 떨게 되었다. 다프나는 이미 군대를 다녀온 친구였고 현재 남자 친구와 다시 지내기 위해 잠시 스데보케르에 머무는 중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 교제 중이던 남자 친구와의 커플링을 끼고 생활하였는데 다프나가 내 반지를 보더니 혹시 약혼자가 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냥 사귀는 사이의 친구와 함께 맞춘 커플링이라고 했더니 다프나는 무척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러한 헤프닝은 이후에도 종종 일어났는데, 아무래도 젊은 연인 사이에 결혼 약속도 없이 약지에 반지를 낀다는 것이 이스라엘 문화에서는 무척이나 생소한 것인가 싶었다.


다프나


그녀의 질문은 자연스레 나의 남자 친구 이야기로 이어졌다.

"유진, 남자 친구가 있는데 왜 먼 이스라엘까지 왔어?"

당시 만나던 친구가 한국 군대에 입대한 상황이라고 하니 다프나는

"그럼 너는 군대에 다녀왔어?"라고 다소(당시에는) 황당한 질문을 해왔다.

"다프나, 한국 여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아. 한국에서는 남자들만 군대에 갈 의무가 있어." 

라고 답했더니

"맙소사, 그럼 한국 여자들은 그저 애를 낳을 뿐인 거야?"라고 반문해 왔다.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스라엘 군인
사막에서는 종종 이런 탄피를 주울 수 있었다


당시 이때의 대화는 내게 어느 정도 뜻밖이었고, 한국의 병역 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프나는 내게 이스라엘의 병역 제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스라엘에서는 18세 이상의 이스라엘 국적자를 대상으로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고, 모든 성별을 대상으로 징병하였으며 남자의 경우(2020년 기준) 2년 6개월, 여자의 경우 2년 정도의 복무 기간을 요구했다. 내가 생활했던 2011년에는 의무 군복무 기간이 3년이었다. 다프나는 군대 내에서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차이로 인해 각각 다른 업무를 배정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남자의 경우 전방 쪽에서 근무한다면 여자는 후방 쪽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한다거나 업무의 강도도 여자의 경우 조금 더 위험이 덜한 일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다프나는 군용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병이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다프나는 호탕했고 시원시원했으며 이스라엘 생활 내내 멋있는 언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루시의 숙소 (왼) 출입구 / (오) 내부


짐정리가 끝난 후 나는 발룬티어 전용 숙소가 모여있는 곳으로 캐리어를 끌었다. 루시는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쓸 침대와 공용 주방과 화장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숙소 내부는 다프나와 잠시 지냈던 곳과 모양이 똑같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방을 함께 쓴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룸메이트가 생긴다는 것은 어떤 건지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남자셋 여자셋 같은 느낌일까...?)


루시의 침대와 소파
내 침대


소파에서 보이는 주방쪽 풍경


내 룸메이트가 된 루시는 체코에서 조정선수로 활동 중이라고 했다. 당시 나보다 두 살이 많았으니 스물네 살의 언니였는데, 대학을 휴학하고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았다. 많은 발룬티어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스데보케르에 찾아왔는데 대게 갭이어를 목적으로 한 내 또래의 친구들이었다.


갭이어(Gap year)는 학업을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하고

봉사, 여행, 진로 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통해 향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을 말한다.

영국을 포함한 여러 서구 지역의 나라들은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1년간의 기간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쌓는 갭이어(gap year)를 가진다.

유명인 중에서는 엠마 왓슨과 해리 왕자가 갭이어를 가진 대표 사례다.

(위키백과 참조)


루시와 다프나 그리고 나
이단과 미다스


가벼운 짐 정리가 끝나고 저녁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숙소 밖에서 여러 발룬티어들과 각자 숙소에서 만들어 온 식사를 가지고 나와 저녁을 함께하며 술을 곁들였다. 모두 자신의 나라에서 낯선 이스라엘의 사막 한가운데까지 온 생김새 다른 젊은이들. 이 친구들과 내가 수많은 별이 박힌 하늘 아래 함께 있다니. 내 옆에 앉은 루시는 나를 향해 밝게 미소 지어준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루시, 앞으로 우리 즐겁게 지내보자. 잘 부탁해!



작가의 이전글 5. 사막 한 가운데의 식당에서 일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