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를린 친구들을 만나다
어느덧 스데보케르의 다이닝룸 업무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1층 공용 화장실 청소는 예외였다. 화장실 청소 첫날에는 거의 실눈을 뜨고 변기를 닦았는데 어느날 선글라스를 끼고 하면 조금 괜찮을까 싶어 화장실 청소 시간마다 선글라스를 끼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 그래도 전보단 나은 것같았다.
건조하면서도 쾌청한 기후 덕인지 스데보케르의 실내에서는 거미를, 야외에서는 도마뱀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곤충들의 출현에 적지 않게 놀랐지만 이 마저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졌다. 추후에 날개 달린 바퀴벌레도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다른 편에서 얘기하려 한다.
스데보케르 공동체에는 20대의 노동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나와 같은 목적으로 지내는 발룬티어들을 제외하면 모두 이스라엘 국적의 청년들인데 이들은 보통 군대를 다녀왔거나 곧 군대를 가는 두 부류의 친구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전 브런치에서 언급했듯 이스라엘 청년들의 군대에 대한 자부심은 놀라울 정도인데, 신기하게도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 보다 입대를 앞둔 청년들의 자부심과 기대감이 더욱 높았다.
군대 입대 전의 십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의 이스라엘 청년들은 '가를린(또는 가린이라고 부름)'이라고 불리었다. 그들은 징병 되기 전에 이스라엘의 키부츠 공동체 혹은 다른 기관을 통해 단체생활을 익히는 시간을 갖곤 했는데, 스데보케르에도 많은 가를린이 새로 오고 또 떠났다.
어느날 키부츠 관리자 타냐가 내게 새로 들어온 가를린들에게 다이닝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다이닝룸 건물 전체에 대한 시설과 일하는 사람들 각자의 역할에 대해 소개해 주었고, 이후 잠깐의 시간 동안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나 대학교 동기들은 군대에서 복무 중이거나 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나의 경우 친오빠가 직업 해군이었기에 이스라엘의 군대는 어떠한지 무척 궁금했다. 서너 명의 가를린 친구들에게 곧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 긴장되거나 무섭지는 않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들은 오히려 얼른 입대하고 싶고 또 그 기다림이 너무 설렌다고 대답을했다. 이런 반응은 내게 무척이나 낯설었는데, 아마 아래의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1. 징집 기준이 높다
이스라엘 군은 의무 복무를 위해 자격 요건에 맞는 유대교 및 드루즈교 신자를 모두 징집하나 그 외의 종교는 모병 되고 이 중에서도 신체 검사 부적격자 기준을 꽤 높게 잡아 조금만 부적응한다 싶어도 떨어뜨린다. 또한 여군의 경우 임신 및 출산을 하면 자동 면제가 되며 해외에 거주하기만 해도 한국과 달리 징집이 무기한 유예된다. 징집을 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부적격 판정을 받아 면제나 유예를 받을 수 있으니, 한국처럼 아주 강압적인 시스템은 아니라는 것이다.
2. 군대의 수평적 문화
관등성명이 따로 없을 정도로 군대 내 수평적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평가가 자주 나온다고 한다. 후임병이 선임병을 부를 때는 물론 일반 사병이 지휘관을 부를 때도 '써(Sir)'나 '미스터(Mr)' 등을 붙이지 않고 이름만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이스라엘식 군대 복지
군대의 위험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많이 기피할 것 같지만 영외 활동이 상당히 자유로운 데다가 전역 후 대학 학비에 쓸 수 있는 교육비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 대체복무보다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또한 징병으로 입대한 인원은 연장 복무를 선택할 수 있는데 원하는 계약기간을 정해서 군에 더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평균 월급은 병의 50배가 넘는 금액인 23,000세켈(약 700만 원)에 이른다. 이는 한국에서 30년 차 대령이 받는 월급이다.
4. 자유로운 휴가 활동
한국보다 더 많은 휴가를 준다. 소속 부대 또는 전쟁을 포함한 특수한 상황에 따라 휴가 기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병의 경우 최소 1~3주에 한 번씩은 귀가해 휴식을 취한다. 보병의 경우 1주 또는 2주에 한 번꼴로 2~3일을 연속으로 쉴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이 주말이기 때문에 보통 목요일 오후 또는 금요일 오전에 부대를 벗어나 일요일 오전 군에 복귀한다. 주말을 끼고 최대 60시간의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셈이다. 이 외에 행정, 정보, 통신 등의 일부 비전투 부대원은 매일 출퇴근도 가능하다. 이들은 오전 8시 출근해 오후 5시 퇴근하면서 '805'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휴가를 귀가로 부르는 군인들도 많다.
(1~4번에 해당하는 글의 내용의 출처는 나무위키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군인들을 위한 복지를 계획적으로 수립하고 그에 맞게 보답해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각종 군 인명 사고, 방산 비리, 부당한 처우와 가끔 사회적으로 조롱하는 듯(군바리)한 표현 등이 생각나면서 이스라엘 친구들의 그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웠다. 또한 이 친구들이 군 입대를 환영하는 모습은 교육으로부터 온 듯도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린 어린 시절 직업으로서의 군인에 대한 교육과, 국사에서의 군 전쟁사를 떠나 군인과 군대에 대해 교육했던 적이 있던가? 개인적으로 군인 아저씨들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던 캠페인 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전체인구 천만 명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나라가 왜 미국의 정치 경제에 그리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나오는지 쉽사리 이해가 간다.
가를린 친구들과의 대화를 마친 후 그라시엘라 아줌마가 곧 세컨핸드샵(중고샵)을 오픈하니 한 시간만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해왔다. 한국에서도 빈티지나 구제를 즐겨 찾았던 나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가게를 찾았지만, 가게엔 멋을 낼 만한 옷이나 아이템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장 정리를 도와준 후 일할 때 편하게 입기 좋은 티셔츠 몇 개와 바지 한 장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스데보케르의 사막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팔레스타인과의 분쟁)와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고요하고 한적하다.
(메인 이미지 출처: Flickr, St.Dek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