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계약의 굴레] 2편
흔들리는 균형추

현실과의 충돌

by 조민우

이윽고,김한결은 첫 전화의 의미를 되새기기 시작했다. '계약 어떻게 하죠?'라는 짧은 질문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그 의미를 온전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질문에는어떤 종류의 계약인지, 계약의 진행 단계는 어디인지, 심지어 상대방이 어디까지 계약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이는 마치 사칙연산도 모르는 사람들이 미적분을 논하는 것과 같았다. 막연하게 '법과 지침을 찾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그의 순진함은 이 질문의 본질을 깨닫고 산산조각 났다.



막연한 압박감 속에서김한결은 다음 날부터 업무에 뛰어들었다.

가장 간단한 계약 건부터 시작했지만, 그 과정은 온통 고통과 부담의 연속이었다.

**'국가(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뿐만 아니라, 그 하위의지침, 예규등 모든 절차를 꼼꼼히 따르고 구비 서류 목록을 만들고 서류 하나하나를 검토하는 일은 마치 거대한 미로를 맨손으로 헤쳐나가는 것과 같았다. 비어 있던 책상 한켠에는 답변을 기다리는 서류들과 함께, 그가 직접 적은 '법적 검토 필요'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 모든 절차는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 아니라, 감당하기 버거운 대상이었다.


그 노력의 대가는매일 밤마다 재생되는 간을 독수리에게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의 형벌과 같았다.

야근으로 지친 밤이 지나면, 그의 훼손된 양심과 열정은 다시 돌아와 그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해가 뜨면 다시 나타나는 '관행'이라는 이름의 독수리에게 무자비하게 쪼아 먹히는 고통의 순환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종종 이런말들이 들려왔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그냥 전에 하던 대로 하면 빠르잖아."

"그렇게 꼼꼼히 따지면 일 못 해. 우리만 이상해진다고."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관행은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전화 한 통으로 끝낼 일을 공문으로 처리하고, 며칠씩 회신을 기다리자 업무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김한결은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해서 해가 진 후에야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퇴근 후의 약속을 이야기하며 웃었지만, 그는 책상에 홀로 남아 불 꺼진 사무실의 서류를 보며 야근을 이어갔다. 심지어 그의 꼼꼼함은 오히려 상대 부서의 불만을 샀다. 복잡한 절차와 서류를 요구하는 그를 두고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로 수군거린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김한결의 눈에는 **'재작성'**을 통해 관행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려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김한결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옳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적이고 답답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현실.

공직사회에서 계약이 두려움의 대상이 된 이유를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법, 지침, 예규를 지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외로운 길이었다. 책상 위의 포스트잇은 답을 기다리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문제없이 일을 처리하려는 노력에 시스템이 저항한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의 이성은 법이 옳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관행이 유일한 답이라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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