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재량'은 사라지는가, 진화하는가?
인공지능(AI)이 시를 쓰고 코딩을 하는 시대, 공공계약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AI는 방대한 법령 데이터를 학습해 최적의 계약 서식을 제안하고,
입찰 공고문의 오류를 잡아내며, 복잡한 적격심사 점수를 순식간에 계산해낸다.
"이제 담당 공무원은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AI의 등장은 공무원에게 남겨진
'재량권(Discretion)'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다.
AI는 계산(Calculation)에는 능하지만 판단(Judgment)에는 한계가 있다.
계약 업무의 핵심은 단순히 법령을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효율성을 위해 대형 업체를 선택할 것인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을 배려할 것인가?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무리한 공법을 승인할 것인가, 안전을 위해 예산 증액을 감수할 것인가?
이러한 선택은 데이터의 영역이 아니라 책임과 철학의 영역이다.
AI는 '가장 확률 높은 답'을 주지만,
공무원은 '가장 가치 있는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대해 시민에게 책임을 진다.
미래의 계약 담당자는 '서류 작성자'에서 '가치 설계자(Value Architect)'로 진화해야 한다.
단순 반복적인 행정 절차는 AI에게 맡기고, 공무원은 사업의 본질을 꿰뚫는 특수조건을 설계하고 현장의 갈등을 중재하며 정책적 목표를 계약에 녹여내는 고차원적인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공감 능력과 책임감은 더욱 강력한 무기가 된다.
AI 시대의 재량권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더 본질적이고 창의적인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