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으로 새치기하는 기술

#신속집행의 역설

by 조민우

"공고 기간 7일 다 채우면 집행 날짜 못 맞춥니다. 긴급으로 띄우세요. 사유서는 제가 써드리겠습니다."

신속집행 기간, 계약 담당자는 F1 레이서가 되어야 합니다. 평소라면 꼼꼼히 따졌을 절차들이 ‘속도’라는 명분 아래 생략되거나 단축됩니다. 법이 허용하는 모든 ‘단축키’를 눌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1. 5일 만에 끝내는 마법, ‘긴급입찰’

본래 「지방계약법」은 입찰 공고를 최소 7일 이상 게시하도록 규정합니다.

더 많은 업체가 정보를 보고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신속집행 기간에는 ‘긴급입찰’이라는 치트키가 발동됩니다.


법령에는 "재정 조기집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공고 기간을 5일로 줄일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시행령 제35조). 주말을 끼면 실질적으로는 3일 만에 업체를 선정할 수도 있습니다.이 짧은 시간에 과연 업체들이 충분히 공고문을 검토하고 입찰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졸속 입찰과 설계 변경의 씨앗은 바로 여기서 잉태됩니다.


2. 돈부터 꽂아주는 위험한 도박, ‘선금(Pre-payment)’

물건도 안 받았는데 돈부터 주는 건 행정에서 금기사항입니다. 업체가 부도나면 그 돈은 고스란히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선금 지급을 꺼립니다.하지만 이 시기에는 "선금 추진"이라는 지침이 내려옵니다. 1억짜리 공사라면 7천만 원을 착공과 동시에 꽂아줍니다.


물론 안전장치는 있습니다. ‘선금보증증권’. 업체가 돈을 떼먹으면 서울보증보험 등이 대신 갚아준다는 증서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일 뿐입니다. 이미 돈을 다 받은 업체는 아쉬울 게 없습니다. 감독관의 지시에 "돈도 다 받았는데 뭐하러 까다롭게 구냐"며 배짱을 튕기기도 합니다. 감독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기성금 지급 권한’을 스스로 버리는 꼴입니다.


3. 심사를 생략하라, ‘적격심사 기간 단축’

낙찰자가 정해지면 이 업체가 진짜 공사를 할 능력이 있는지 ‘적격심사’를 합니다. 보통 서류 제출에 7일, 검토에 7일 정도 여유를 둡니다. 하지만 신속집행 기간에는 심사를 간소화하거나, 서류 제출 기간을 3일로 단축시킵니다. 부실 업체가 걸러지지 않고 통과될 확률은 당연히 높아집니다.


결론: 속도가 품질을 갉아먹는다

빨리 계약하고, 빨리 돈을 주는 것. 행정적으로는 ‘유능함’으로 포장됩니다.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합니다.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설계도면, 급하게 선정된 업체, 그리고 미리 지급된 돈.

이 3박자가 맞물리면 결국 ‘부실시공’과 ‘잦은 설계변경’이라는 폭탄이 되어 돌아옵니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돈을 빨리 쓰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안전을 담보로 현재의 실적을 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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