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가 끝난 뒤의 숙취

#신속집행의 역설

by 조민우

#신속집행의 역설

"계장님, 10월인데 예산 잔액이 0원입니다. 청사 화장실 고칠 돈도 없습니다."

6월 30일이 지나면 상반기 신속집행 평가는 끝납니다. 우수 지자체로 선정되어 현수막이 걸리고, 담당자들은 포상금을 받으며 샴페인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파티가 끝나고 찾아오는 건 극심한 숙취, 바로 ‘하반기 재정 절벽’입니다.


1. 당겨 쓴 미래의 대가 (조삼모사)

신속집행은 없던 돈을 새로 만든 게 아닙니다. 1년 동안 나눠 써야 할 12개월 치 월급을, 상반기 6개월에 몰아서 써버린 것입니다.이른바 ‘조삼모사(朝三暮四)’입니다.가을에 태풍이 오거나 폭설이 내려 긴급하게 보수 공사를 해야 하는데, 통장을 열어보면 잔고가 없습니다. 이미 상반기에 선금으로 다 줘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꼭 필요한 하반기 사업은 내년으로 미루거나, 빚(지방채)을 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2. 업체의 비명: "상반기는 과로사, 하반기는 아사"

이 정책은 민간 시장마저 왜곡시킵니다.상반기에는 모든 관공서가 동시에 발주를 쏟아냅니다. 업체는 일감이 넘쳐나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라, 공사할 인부와 장비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릅니다. 인건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울며 겨자 먹기로 웃돈을 주고 사람을 씁니다. (과로사)

반대로 하반기가 되면 발주가 뚝 끊깁니다. 상반기에 1년 치 농사를 다 지었으니 일감이 없습니다. 장비는 놀고, 인부들은 손가락을 빱니다. (아사)공공계약의 가장 큰 미덕은 시장에 예측 가능성과 안정적인 수요를 제공하는 것인데, 신속집행은 시장을 롤러코스터에 태워 멀미를 나게 합니다.


3. 무엇을 위한 속도전인가?

물론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재정의 마중물 역할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집행률 % 맞추기’라는 숫자 놀음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신속집행은 무작정 돈을 밀어 넣는 것이 아닙니다.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줄이고, 인허가 기간을 단축해서 ‘실제로 일이 빨리 진행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돈이 먼저 가는 게 아니라, 일이 먼저 가고 돈이 따라가야 합니다.


마치며: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

우리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아닙니다. 시민의 세금을 다루는 공직자입니다.통장의 잔고가 빨리 비워지는 것에 환호할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도서관이 튼튼하게 지어지고, 도로가 안전하게 닦이는 ‘결과’에 집중해야 합니다.


내년 1월에도 상황판의 그래프는 올라가겠지만,

그 숫 뒤에 숨겨진 현장의 한숨과 고뇌를 한 번쯤은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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