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좀 알려주세요"의
무서운 대가

예정가격의 비밀 #공공계약의 시선

by 조민우

"주무관님, 이번 공사 예가(예정가격)가 대충 얼마입니까? 제가 딱 맞춰서 견적서 가져올게요.

서로 편하고 좋잖아요."


업체 사장님의 은밀한 제안은 달콤합니다. 특히 수의계약이나 소액 공사일 때, 담당자도 흔들립니다.

"어차피 이 업체랑 할 건데, 가격 안 맞아서 유찰되면 다시 공고해야 하고 귀찮잖아? 힌트만 줄까?"

하지만 이 순간, 당신의 친절은 ‘형법상 범죄’가 됩니다.


1. 수의계약이니까 괜찮다? (위험한 착각)

많은 담당자가 경쟁입찰의 예정가격은 철저히 비밀로 지키지만,

수의계약의 예정가격은 "우리끼리 하는 건데 뭐"라며 가볍게 여깁니다.

하지만 대법원(2006도7171)은 단호박입니다.


"수의계약이라 하더라도, 공무원이 작성하여 밀봉해 둔 예정가격은 '공무상 비밀'에 해당한다."

법원은 수의계약 과정(특히 2인 이상 견적)에도 최소한의 경쟁 원리가 작동해야 하며, 예정가격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는 이 공정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봅니다. 즉, 입찰이든 수의계약이든 예가는 국가기밀급 보안 사항입니다.


2. 징계가 아니라 '전과'가 남는다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감사를 받고 시말서를 쓰는 수준(행정벌)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정가격 누설은 형법 제127조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합니다.

벌칙: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

실제로 수해복구 공사가 급하다고, 평소 알던 업체에게 "대략 5천만 원 선에서 들어오세요"라고 힌트를 줬던 공무원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선의로, 행정 편의를 위해 그랬다 해도 법정에서는 "범죄자"가 됩니다. 공무원 신분 박탈까지 갈 수 있는 중대 사안입니다.


3. "대충 이 정도"라는 힌트도 안 된다

"정확히 5,450만 원이라고는 안 했고, 5천 중반대라고만 했는데요?"

소용없습니다. 판례는 구체적인 숫자가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낙찰 가능한 범위를 추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다면 비밀 누설로 봅니다.

업체가 "얼마 쓰면 돼요?"라고 물을 때, 담당자가 해야 할 대답은 딱 하나뿐입니다.



"사장님, 그건 저도 모릅니다. 소신껏 써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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