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처럼 자주 만날 시간이 이제 곧 얼마 안 남았구나.
조카를 데리고 놀면 딱 봐도 공부 적성은 아닌 것 같다. 한글을 읽어줘도 글자를 보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그래 공부 적성이면 또 뭐하겠냐. 이모처럼 어중간하게 공부하게 될지도 모르고, 게다가 그렇게 하면 큰 걸 못 이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또 굳이 인생사를 대단한 업적을 이뤄야만 한다는 것으로 보기에는 그것도 뭔가 서글픈 것이다. 인생이 다 그렇게 효율적이고, 능률적으로만 이루어질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압박이다. 나에게는 삶이 뭔가를 성취해야 하고 보여줘야 하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그래서 은연중에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나보다. 그렇다면 나 말고 조카는 좀 더 삶을 즐기는 편이 나을 수 있겠다. 굳이 이모처럼 생각하지 않아도 돼. 다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일인분은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나에게 조카를 돌보는 기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사이버대 학업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조카를 돌볼 시간과 겹치게 되어서 은찬이 할머니가 고생을 해 주실 듯 하다. 그리고 은찬이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이야기도 이렇게 마무리되겠지. 가끔 조카와 놀기는 하겠다만 말이다.
이제 유치원에 다니게 된 은찬이의 하원시간이다. 은찬이를 픽업하러 검정색 가디건을 껴 입고 유치원 버스가 올 장소로 갔다. 5분 사이 같이 하원하는 아이들의 엄마아빠가 많이 나와 계시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이방인이다. 언니와 친한 한 아이의 어머니의 얼굴을 알고 인사를 하긴 하지만 그 분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또 다른 아이들의 어머니 아버지는 얼굴은 오며가며 알긴 하지만 인사를 한 번도 안 해본 분도 계시다. 아파트 놀이터 앞에 노란색 버스가 들어온다. 그리고 은찬이를 하원시킨다.
어제 놀이터에서 놀면서 은찬이는 밖에서 뛰어놀다가도 뭔가 탐탁치 않았나보다. 다른 애기 엄마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모라서 어색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은찬이는 유치원 선생님이 불어서 만들어 주신 기다란 하늘색 풍선칼을 들고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은찬이는 친구들과는 왔다갔다하면서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겉도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이 나이때 아이들이 친구들과 얼마나 그렇게 친하게 깊은 우정을 유지할까 싶은 것이다. 게다가 어른되어서도 그 우정이라는 게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멀어지기도 하는데 말이다. 차라리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이 나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그래도 은찬이 녀석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누려봤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들은 사랑. 우정. 애쓰는 마음. 따뜻한 마음. 그리고 너의 건강. 그리고 부를 가지게 되면 좋겠지. 그렇게 느꼈다.
은찬이 네가 앞으로 어떻게 자라게 될까. 그건 나도 모르지. 상처, 너에게는 상처가 있을까. 어린 너이지만 네 속은 내가 다 모르는 것. 상처를 아예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이모가 그랬잖아. 어릴 때 보다는 어른이 되면 더 나을거라고. 그건 너에게 할 수 있는 작은 위로고 삶에서 이모가 겪은 것들이야. 어른이 되면 감당할 것도 많겠지만 좀 더 너에게 자유로움을 줄 수 있을거야. 예를 들면 상처를 덜 받게 될 자유. 네가 감당하지 못하는 그 감정들에서 조금 더 편안해질거야. 어른이 되면 분명히 나아질거야. 이모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모가 모든 삶의 보편성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확실하게도 너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어른이 되면 훨씬 좋아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