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모님과 삽니다>>

-돌아옴의 역사 1) 고시원에서 혼자 삽니다(2)

by 미카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나에게 애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내주시는 등록금 덕택에 나는 학자금 대출 없이 학교도 다닐 수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에 명예퇴직을 하시고 조금 쉬고 계셨다. 하필이면 내가 대학교 입학하는 그 해에 아버지는 명예퇴직을 당하셨다. 말이 명예지 조금 압박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대학교에 다니는 당시에는 나와 같이 부모님이 등록금을 내주시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사실 알음알음 당시 학자금 대출을 하면서도 부모님 원망 없이 잘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반면에.. 등록금 걱정 없이 또 용돈 걱정도 없이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긴 했지만 말이다. 어떤 상황이 든 간에 나의 아버지는 이버지로서는 최선 최고의 것을 해주셨다. 나는 왜 그런데 그렇게 아빠를 못 참아냈나 싶기도 하다.


다만 그 당시 기억도 안 나지만 아버지의 언어폭력은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집을 박차고 나올 만큼. 그래서 그 당시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언어폭력이라고 하면 사실 모든 것을 담으면 아마 나는 내 얼굴에 침 뱉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를 존중하며, 나를 낳아준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불효녀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만...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화가 나면 주체가 안된달까 그런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버지가 나이가 드셔서 예전 같은 하이템퍼는 없다. 다만... 당시 나의 아버지는 뭐랄까. 언어라는 것을, 내가 예쁘고 아끼고 아름답게 여기고 싶은 그 언어, 말이라는 것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혀를 움직여 입에서 그것을 꺼내어 다른 사람 특히 나에게는 큰 상처를 줬다. 생각도 안나는 거라서 별거 아닐 거 같지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부모복이 없는데 자식복까지 없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들은 썩은 대가리를 깨서 썩은 물을 빼내야 한다...’ 이건 내가 나중에 회사를 갔을 때의 이야기이고 내가 일을 못하기는 했지만 회사에서 대리한테 혼나고 왔을 때는 ‘대리 심정도 이해가 간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 뭐...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말로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러면 안 되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 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지른 적도 많다. 아버지에게 정말 대들면서 엄청나게 심한 말 한 적도 있다. 다만 아버지는 내색을 안 하셔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데미지는 없어 보였고 나는 그 당시 집을 박차고 나갈 만큼 말로 너무나 많이 상처받았다. 지금은 아버지가 예전 같지는 않고 몸도 안 좋으신데 그냥 안타깝기는 하지만 지금의 아빠의 로우텐션이 ‘오히려 좋아’라는 느낌이라서 그것도 죄송하면서도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다. 예전처럼 괴팍한 말들은 안 하시니까... 어쨌든 그렇다.


그 당시에 나는 주중에 공부하고 주말에는 알바하고, 연애도 했다고 아까 언급을 했다. 뭐 그 연애는 오래가지 않고 쫑나기는 했다만... 그러나 어쩌면 그 당시 나는 엄청 능력자였을지도 모른다. 능력자라기보다는 파워체력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알바하고 그렇게 살던 내 모습이 말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학교 동기들과의 관계는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3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휴학하고 1년을 쉬고 나서 복학한 지 첫 학기인 3학년 2학기였는데 그리운 과 친구들이 지금 많이 생각나지만, 그 당시 여러 가지 여건이 안 좋아서 틀어져 버린 친구들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살았다. 옷도 제대로 못 사 입고. 예쁜 비싼 명품 같은 옷을 입는 동기를 보며 부러움, 질투로 내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하며 살았다. 때로는 바보같이 수업을 듣다 말고 내가 너무 입고 싶었던 옷을 입은 한 학년 낮은 여자애를 보면서 책에 필기한 잉크가 번지도록 눈물을 뚝뚝 흘린 기억이 있다.


열등감이 많고 부러움이라는 게 많았다. 타고 난 복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뭔가 사랑을 엄청 받고 있는 그 모습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사실 그런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겉모습만으로 모든 걸 알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그때는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못했고 자기 연민에만 깊이 빠져 있던 듯하다. 아마 그 아이들은 집에서 탈출 같은 것은 생각도 안 하겠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래 정말이지 사실 겉모습으로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만약에 내가 당시에 내 영혼을 탈탈 털어가며 그냥 조용히 아빠 엄마 집에 살면서 공부나 열심히 했으면 지금 내 인생은 나아졌을까? 아마 긍정적인 결과일 수도 있으나 2가지 부정적인 결과는 있을 것이다. 하나. 아마 내가 이걸 쓰고 있지는 않겠지.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얼마나 많을까 싶냐마는 그들이 글을 읽지 못했을 거고 나도 이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둘. 아마 공부만 엄청 했으면 돈 잘 버는 사람이 돼서 진작 아빠와는 절연했을 것이다. 절연이라. 그리고 글을 안 쓴다라. 그냥 그런 두 가지의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내 인생은 어쩌면 훈련의 과정이고 그냥 겪어야 했던 시간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은 말이다.


나는 당시 12월 즘 학기가 끝날 무렵 다시 고시원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그냥 늘 내 편인 느낌인지라 내가 돌아오는 것은 당연히 좋아하셨던 것 같고 아버지 또한 나를 그냥 받아주셨다. 당시 나는 그 겨울 돌아오는 해 2월에 인도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고 이미 비행기 티켓을 산 이후였는데 아버지는 그때 환전을 해서 용돈을 쓰라고 40만 원을 주셨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식을 많이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표현이 서툰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이제는 또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그러나 또 추후 나는 집을 박차고 나가게 된다.


대학교 졸업 후 6개월간의 방황이 또 시작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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