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모님과 삽니다>>

-돌아옴의 역사 2) 회사 기숙사에서 몽골, 베트남직원들과 삽니다.(2)

by 미카


회사는 이런 곳인 걸까?



각설하고 나는 회사도 싫었다. 그냥 삶이 다 만족스럽지 않았고 돈을 모으면 뭔가 인생이 편해질 거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냥 그런 나라면 차라리 알바하면서 글이나 썼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돌고 돌아와서 글을 놓지 못하는 나라면 그때도 글 쓰고 있었다면 좀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리고 나는 말한 대로 빌런이었고 + 개념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와서 쉬는 시간을 기숙사라고 불리는 빌라에 와서 지냈다.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게 맞을 것 같다. 요즘은 사실 MZ들이 있으니까 그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아닌데... 사실 나도 이상하게 느끼지는 않았었나 보다. 하하.. 어쩌면 나는 정말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는지도. 그런데 그것을 좋게 보시지는 않았나 보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점심시간이라는 것도 회사에서 있어야 되는 거라고 부장님이 넌지시 말씀해 주신 기억이 있다.

당시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을 겪다가 나는 또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6개월의 여정을 마치고 아빠가 지배하는 이 소사회인 가정보다 더 힘든 곳이 회사라는 사회인 것을 체감했다. 나는 어쩌면 아빠를 못 견뎠기 때문에 그 회사라는 곳도 견디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쨌든 그것이 유의미한 결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과정을 거쳐 내가 이 회사라는 곳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내가 다닌 회사가 특별히 이상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회사를 좋아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안 맞지만 이 글을 보고 있는 다른 이들도 ‘나는 회사에서 일하는게 적성이야!’이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특별히, 무진장, 놀랍게도, 예외적으로, 너무나도 회사라는 곳과는 안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회사라는 공간이 안 맞는 것이 아니었을 수 도 있다. 그냥 한국이라는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이 아버지의 폭력성, 아버지의 폭언을 견뎌야 하는 작은 사회였던 내가 속해있던 가정이라는 곳과, 역시 마찬가지로 관리자들은 거의 다 남자들로 구성된 한 작은 중소기업은 내가 속해서 살기에는 너무 힘든 곳이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어쩌면 괜찮게 변한 혹은 예전부터 괜찮은 그런 회사도 개중에 있을 것임도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회사를 들어가지 못했고, 그리고 그런 집에서 태어나는 행운도 갖지는 못했다. 뭐 내가 일못한건 그렇다쳐도.


여러 몇몇 중소기업을 거치고 거치다가 다 내 복이지. 하면서도 지금도 드는 생각은 그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이런 생각과 ‘왜? 내가 왜? 이런 부당한 것을 느끼면서 내 나라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가야 돼? 그냥 이 거지같은 가부장제와 이 모든 것들은 지배하는 이 한국이라는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면 안돼?’ 이런 생각도 있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는 나는 사실 기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냥 나는 오늘도 밥벌이를 했다, 내 생존을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래도 오늘도 뭐라도 했다. 이런 식으로 자기위로 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어쩌면 한국에서도 굉장히 남녀 평등 한 곳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가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소수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여자들은 남자보다 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여성이 많이 근무하는 일자리는 임금이 남자보다 낮다. 그리고 요즘에는 많이 바뀌었지만 잠시 다녔던 무역회사를 통해 알게 된 것(첫 회사는 아니다)은 당시 아마 12년전의 일이긴 하지만 현재에도 영업 운운하면서 성매매를 접대하는 회사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런 구조로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유리천장을 목도하게 되는 것은 여전히 지금도 그런 듯 하다.


물론 요즘은 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며 목소리를 내려 하는 세상이라지. 하지만 이런 상황을 직접 목도하고 살아온 그 시대를 산 내가 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이런 시대를 동시대에서 겪는사람있는 것도 사실이다.



돌아옴의 역사. 그래서 나는 그 첫 번째 회사에서, 기숙사에서 약 6개월을 지내다가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사실 아버지는 내가 사는 이 집에 다녀 가신 이후로 어머니께 당장 돌아오라고 말하라고 하셨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래... 그랬던 거다. 그냥 아버지는 근처에서 일했으면 싶었던 것이다. 엄청 큰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쟤가 또 왜 저러나 싶으셨던 거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왜이렇게 도저히 못 참았을까...

그리고 또 한 번 돌아옴의 역사를 위하여 나는 집을 나가는 일을 반복한다.

아마 그것은 내가 29살 되던 해였던 것 같다. 아니 27살이었을까? 저번에 말했던 대리이야기가 기억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말씀하셨던 그 아버지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그 청국장을 끓이고 있는 나에게 내가 당시로서는 제일 치욕으로 느낀 그 말씀을 하셨고... 나는 약 3개월 정도 다닌 한 무역회사를 관두고 결국 아버지와 또 한탕 하고 보증금 700만원에 37만원 월세가 드는 작은 원룸 비슷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또 돌아왔으니 그 돌아옴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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