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화장을 않은 채 출근 때와 다른 가벼운 차림으로 차에 오른다. 대충 머리를 넘기고 평소 좋아하던 파란 모자를 썼다. 소박한 자기 위안이랄까. 모자 앞면에 새겨진 악어가 귀엽게 입을 벌리고 있다. 조카가 이 악어를 참 좋아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매일 출근길 운전대를 잡았던 나인데, 오늘은 마음가짐이 다르다. 운전 연수를 끝내고 처음 도로로 나갔던 날처럼 온몸이 긴장되고 심장이 요동친다. 숨을 크게 내쉬고, 나만 들을 수 있는 혼잣말로 시동을 건다. 듣고 싶은 위로를 공중에다 마구 던졌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아!”
병원으로 가는 길은 ‘공포’와 ‘절규’, 그 둘 사이에 곧게 뻗어 있다. 초행길에다 난생처음 요금소를 지나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버거운데, 왜 그리 큰 트럭들이 아침부터 도로 위를 쌩쌩 다니는지. 그 언젠가 새벽녘에 보았던 영화 ‘매드맥스’의 한 장면 속에 떨어진 기분이다. 육중한 짐짝을 실었음에도 속도를 잃지 않는 덩치 큰 무법자들이 마구 추격해온다. 아마 주인공이 나인가보다. 무엇이라 진단받을지 모르는 내 뱃속보다 무엇을 싣고 달리는지 모를 도로 위 트럭들이 더 아비규환이었다. 서툰 운전자는 병원에 도착도 하기 전, 태초에 내가 났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라 확신하게 된다. 내 삶의 끝이 비명횡사로 마무리되는 것인가, 좀 더 방탕하게 살 것을 후회에 참담함이 앞선다. 다시 한번 응원의 혼잣말을 꽤 크게 뱉어냈지만 격양된 목소리는 곧 비명으로 이어진다.
‘운전은 너무 위험하다!’
정말 잘못되려나 싶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튀어나올 듯한 눈을 더 크게 부릅뜬다. 전방 시야 확보를 위해 목을 천장까지 집어 빼고, 운전대를 놓칠세라 손가락 열 마디에 힘을 잔뜩 줬다. 얼마 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경직된 관절 마디마디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겨우 한고비 넘겼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오며,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도 걱정이 반쯤 날아간 기분이었지만 그것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아둔한 인간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대학병원이라, 처음이다. 병원은 굉장히 넓었고 사람은 많았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 병원 유니폼을 입은 사람, 이런저런 종이 서류를 들고 다니는 사람, 또 전혀 병원과 관계없어 보이는 사람. 그 많은 건물과 사방으로 난 입구 중, 어디가 바른길인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보니 내가 참 못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왠지 덩치 큰 병원이 육중한 몸을 굽혀, 올려다보는 나를 마주 내려다보는 기분이 든다. 그 속의 공기가 육신을 내리누른다. 모든 이가 나의 어설픈 어리숙함을 지켜보는 것만 같아 걸음조차 부자연스럽다. 어디다 데려놔도 기죽지 않는 엄마가 보고 싶은 절정의 순간이다. 이모는 왜 아직 오지 않는 것인지. 조바심을 최대한 감추고 익숙한 곳을 노니는 것 마냥 살짝 고개를 쳐든다. 같은 곳을 서너 번 맴돌다 겨우 1층 중앙에 있던 안내소를 찾았다. 바로 자세를 낮춰 병원에 처음 왔고, 부인과 진료를 받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 두서없이 물었다. 안내소의 담당자는 이리 묻는 이가 많은지 한쪽을 가리키며 외래 접수처로 가라 일러준다.
이번엔 외래 접수처다. 또 그 앞을 서성거린다. 일관성 없이 발현되는 나의 쑥스러움 덕에 쉽사리 그곳에 발을 넣지 못하고 있다. 이것 또한 회피성 행동인가. 누가 좀 대신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한참을 지켜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곳을 이용하는지 대범치 못하게 자료를 수집한다. 별다를 건 없었다. 겨우 창구가 잠깐 빈틈을 타 앉아있던 담당자에게 말을 걸었다. 진료를 받고 싶은데 접수는 어떻게 하냐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 물었다. 청력이 좋은 담당자는 예약하고 왔냐 물었고, 아니라 답했다. 접수 표를 뽑고 대기하란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오늘 당장 진료는 불가하다는 대답도 따라온다. 어떤 준비도 않았던 안일함에 부끄러웠다. 다른 방안을 구걸해 볼 생각도 없이, 알겠다는 짧은 답으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안된다지 않나, 안되는 건 안 되는 것이지 어찌할까 싶다. 무력해진 마음을 안고 로비를 서성였다. 이래서 대학병원은 접수가 어렵구나 깨달으며, 역시 무턱대고 오는 건 아니었다 후회한다. 병원을 들어설 때 보다 더욱더 작아진 느낌이다. 어디론가 사라지고만 싶었다. 병원을 오기 전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대학병원은 접수해도 오래 걸린다, 원하는 교수에게 치료를 받으려면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걱정하는 건지 겁을 주려는 건지 혼란스러운 말들. 이제 보니 그 말이 모두 맞다. 평소에도 닭똥 같은 눈물이 잦은 나는 또 한 번 시야가 흐려짐을 느꼈다. 이 나이 먹고 여기서 울면 좀 창피한 거 아닌가 삼키려던 찰나, 병동 입구 한편에서 걸어오는 이모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반가움보다 허무함이 앞선다. 이모, 안된다네요.
생전 둘이 반갑게 인사한 적은 없지만 지금 의지할 곳은 이모밖에 없다. 꾸벅 인사를 하고 접수처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넋두리에 가깝게 전했다. 당황할 줄 알았던 이모의 얼굴에선 어째 단호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나를 접수처로 데리고 갔다. 잠깐 창구가 빈 사이, 이모는 재빠른 동작에 심각한 얼굴을 더해 담당 직원에게 뭐라 말을 건넸다. 대충 상황이 안 좋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나,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조금 전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담당자였기에 분명 기억할 것이다. 멀쩡히 걸어들어온 내 모습을 보았을 것이 확실하기에 민망함이 몰려온다. 이모가 무엇이라 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은 몹시 걱정되는 얼굴로 통증이 있냐 물었고, 이모는 채 내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렇다고 답했다. 급하다 재촉했다.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슬그머니 등을 굽혔고, 오른손을 배 위에 올렸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직관적으로 그래야 함을 알았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담당자는 여성의학과로 전화를 걸어 급한 환자가 있다 전하며, 그 통화의 끝에는 아주 작은 소리로 암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결과가 별것 아니면 어쩌지.’
겸연쩍음에 무안을 당할까 걱정까지 더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는 있으나 응급 환자로 대기를 걸어두었으니 오늘 안에 진료는 가능하단다. 이렇게도 접수할 수 있구나 새삼 놀랍다. 몰랐던 세상 이치를 배운다. 늘 정도가 옳지만도 않구나 깨닫지만, 그래도 혼자는 도저히 못 할 것 같다.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3층으로 간다. 중간중간 모든 상황을 엄마에게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