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했다.
아니, 그보다 건강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35살, 만으로는 33살.
여느 30대처럼 살았다. 때론 열심히,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 땐 또 그렇게. 직장을 다녔고 친구를 만났다. 자주 술을 마셨으며, 가끔은 여행도 갔다. 20살을 기준하여 학업과 생업으로 이곳저곳을 누볐던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갈 곳이 있었고, 만날 사람도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집에서 해변으로 이어지는 강변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탔고, 일상의 틈엔 곳곳에 자리한 책방에서 나름의 취향을 쌓아나갔다. ‘항상 뭔가를 하고 있구나!’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따라오는 피곤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늘 그렇게 지내왔던 관성이 그 피곤함마저 괜찮은 것이라 다독였다. 실없는 소리에 능한 탓에 깔깔거릴 일이 많았고, 공상을 좋아했던 덕에 고단했던 하루의 보상을 마음껏 증축한 삶 속에서 얻었다.
한 걸음씩 나아지고 있다 느꼈다. 어쨌거나 쌓여가는 시간이 하루는 괴롭힐 수 있을지언정, 삶을 통째 잡고 흔들진 못했다. 되려 흘러간 시간은 버티고 내딛던 두 발아래 차곡히 쌓여, 진창에서 시작된 걸음이 어느새 강고한 발판 위에 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불안과 짜증이 대책 없는 즉흥 행동으로 표출될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30대 중반에 들고서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감에 나도 까마득했던 진짜 어른이 되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마음 상태를 헤아리기 바빴다. 몸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 젊었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으며 매년 간단하게라도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니까. 당장 뻐근한 허리나 뾰족한 두통보다는, 누군가를 향한 부정적 감정들을 빼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루 끝에 이리저리 흔들린 자신을 앉혀두고 어쩌면 이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대부분 화와 미움으로 대변되는 그 고민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고, 그것의 기반에는 의욕과 열정으로 포장된 나의 욕심과 지나침이 있었다.
나쁜 감정들로 몸이 부풀어 오를 때면 좋아하는 것들로 응급처치를 했다. 책을 보거나 졸업 후 한동안 놓았던 그림도 다시 그렸다. 만나면 기운을 북돋아 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당장은 좋았다. 하지만 화와 답답함이 얽히고설킨 나쁜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마음을 괴롭히는 사람을 두고 온갖 실험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의 과거 행적들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는 본래 나쁜 사람이 아닌데, 안타까운 일말의 사건을 계기로 저리 무시무시하게 변한 것이라 유추한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억지 서사를 통해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다. 통상 별 효과는 없었다. 날 것의 상태로 온 마음을 다해 미워도 해봤지만, 그것 또한 좋은 방법은 아니다. 매일 방전 상태인 나에겐 타인을 미워할 기운이 없을뿐더러 그런 마음을 가지면 떳떳하지 못하다는 죄책감마저 들어 더욱 힘이 들었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머릿속 가득한 불편함을 밖으로 밀어도 봤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느 시점이 되어서는 사랑하는 이보다 미운 이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부정적인 것들과 그것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긍정의 것들이 아슬한 균형을 잡아가고 있을 때,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고, 일말의 복선이나 귀띔도 없이 다가왔다. 그때 나는 참말로 정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