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cm의 무게 #2

by 미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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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월요일. 졸리던 점심시간. 문득 병원에 가볼까 생각하며, 굽은 등을 펴 사무실 눈치를 살폈다.


며칠 전 늦은 저녁의 일이다. 쾌적한 이튿날 출근을 위한 적정의 취침 제한 시간은 새벽 1시. 곧 그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잠이 오길 기다리며 침대에 누웠다. 또 한참을 뒤척거릴 예정이지만 지금 누워야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원망치 않을 테다. 어둠 속에서는 밝은 빛에 눈이 시려 휴대전화 화면의 조도를 최대한 낮추고,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인터넷 소식들을 뒤적인다. 손에 잡힌 기계 속 연락처와 사진첩까지 훑고 나면 더는 볼 것도 없거니와 눈이 피로해져 두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천장을 바로 한 채 공상에 빠진다. 여느 날과 같았던 하루를 시간순으로 복기하며 이런 후회, 저런 후회를 얹어본다. 나란히 손깍지를 끼고 두 손을 얌전히 배 위에 얹어 놓는다. 제대로 딴생각에 빠져 볼 요량이다. 손 아래 만져지는 아랫배가 평소와 달랐다. 정확히 배꼽을 중심으로 오른쪽 아랫배가 볼록 솟아 있었다. 더듬어본다. 평생을 두르고 있던 아랫배와는 분명 다르다. 살짝 오른 아랫배는 약간 딱딱해져 있었다. 이상하다 갸웃거렸지만 이내 다른 곳에 신경이 닿는다. 도착지는 이번 주까지 완료하기로 했던 사업 보고서. 마무리되려나 아무래도 의심이 든다. 손끝에 닿았던 볼록한 살덩이는 곧바로 잊혀졌다. 생각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 회사에는 바쁘게 진행되던 사업이 있었고, 옆자리의 누군가는 나를 잔뜩 화가 난 복어로 만들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다던가 대상포진에 걸린 엄마는 집 근처 병원에 입원 중이었으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투른 운전 솜씨는 내일의 출근길을 두렵게 했다. 머리가 아프다. 까짓 살짝 솟아오른 배보다는 훨씬 신경을 쏟을 일이 많았다.


견디기 힘든 월요일이었던 것이 발단이라면 발단이다. 마감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보고서가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마우스 커서는 제자리에서만 깜빡인다. 보고서에 적혀야 할 단어들이 머릿속에만 깜빡이고 있는 탓이다. 그마저도 아득해지더니 곧 흐릿해져 형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지난주 내내 이어진 야근의 피로가 주말의 휴식으로도 해소되질 않았나 보다.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이 순간을 벗어나야겠다. 병원 진료를 핑계 삼아 잠깐이라도 사무실을 벗어날 꾀를 내본다. 관대하신 실장님에게 짧은 외출 허가를 받았고, 인근에서 나고 자란 동료에게서 회사 근처 가장 유명한 내과를 알아냈다. 직장인이 병원에 가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기왕이면 유명한 병원에 가는 것이 좋지 않은가. 차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한단다. 바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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