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cm의 무게 #4

by 미녕


회사로 돌아간다. 내과에 들러 주차된 차를 찾아 사무실로 향하는 머릿속엔 오직 하나의 단어만이 맴돈다.


‘대학병원’


이렇게까지 심도 있게 살펴본 일은 없다. 작은 동네 병원에서 모든 것이 가능했다. 소화가 안 되거나 두통이 와도, 감기에 걸렸거나 몸살을 앓아도, 골목 밖 동네 병원에만 가면 모든 불편함이 해결되곤 했다. 기분 따라, 증상에 따라 골라갈 수 있을 만큼 개수도 많아 굳이 다른 대안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크게 아팠던 경험이 없던 덕에 이제껏 대학병원이라는 장소를 가늠할 기회조차 없었다. 물론 지금도 아프지는 않다.

‘대학병원…, 어느 병원으로 가지? 병원이 어디 있더라, 접수는 어떻게 한담, 그런데 진짜 가야 하나, 어떡하지, 아, 어쩌지….'


생각은 이와 같은 흐름으로 반복되고 또 반복됐다. 사무실에 도착해 여전히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자니, 다분히 따분한 오후를 보내던 동료들이 하나둘 곁으로 다가왔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큰 걱정을 했다기보다, 당장 그들에게 맡겨진 업무를 면피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으리라. 이제껏 모두가 그래왔으니 잘 안다. 오늘은 그 관심이 나에게 쏠렸을 뿐이다.
덤덤하게 시작된 병원 방문기는 예상치 못한 눈물로 끝이 났다. 별다른 이야기를 기대하지 않았던 동료들도 적잖게 당황해했고, 당황으로 뱉어낸 위로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별일 아닐 거야, 얼른 병원에 가봐.’ 마땅한 말들이 이어진다.


‘안다. 그건 이미 나도 알고 있어요.’


큰일 앞에서는 무던해지는 버릇이 있다. 그것은 대담함이나 침착함에서 발현된 성질의 것이 아니라, 무르고 약한 본성을 기반으로 한다. 어찌할 바를 모르니 없는 일처럼 여기는 습관. 일을 해결하기에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미숙한 나를 보호하기에 잠깐은 좋은 방안이다. 이번에도 그 버릇을 안고 간다. 일단 뱃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추후 생각하자 자신을 달랬다. 들이닥친 현실이 버거워 우선 물러나 보는 것이다. 동료들이 제자리로 돌아간 뒤, 찔끔 쏟아낸 눈물이 민망해 대충 얼굴을 비비고 빠르게 마우스를 잡았다. 괜찮은 척 업무 문서를 뒤적거리다 보니 정말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징그러운 현실도피다. 자아가 여러 개로 갈라지는 느낌이지만 어쩌겠는가. 갈라진 자아도 본디 같은 뿌리에서 자란 것이니 받아들여야지. 결국엔 불안한 놈이 이겼다. 질문을 곱씹는다.


‘병원에 가야겠지? 어느 병원으로 가? 뭐부터 해야 하지?’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함에 화가 섞이기 시작한다. 두려움의 성질머리가 점점 더 고약해진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다. 항상 완벽하기 위해 가장 많이 노력했고, 일상의 작은 행동 앞에서도 수십 번 고민했다.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염려와 걱정은 모두 동원해 늘 최소한의 실수만 용납하자 했다. 병원에 가더라도 제일 나은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이내 포기하고 만다. 나는 냉정함을 잃고 불안해하고 있었고, 잔뜩 겁을 먹어 다른 곳만 보고 있었다. 최선의 선택 같은 것은 없다며 이미 좌절해버렸다.
메신저를 통해 동료들의 조언이 쏟아진다. ‘여기 병원이 좋다더라, 서울로 가라, 한 곳만 가지 말고 여러 병원을 가봐라, 이 의사는 피하라더라.’ 함께 일하는 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따뜻함이다. 하지만 그 말엔 책임이 없었다. 판단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마구 쏟아지는 정보들은 혼란만 키워댔다. 거침없이 던져지는 연민은 단호히 결정할 힘을 앗아간다. 알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눈앞의 세상이 점차 회색으로 변한다. 이미 충분히 가라앉고 있으니 그만.

그런데도 제 목숨은 귀한 것이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비겁한 도피자는 걱정을 놓지 못한 채 치졸한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결정권을 넘기자. 유일한 즐겨찾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엄마의 응답은 항상 같다. ‘지금 바쁜데 무슨 일이냐, 용건 있으면 빨리 이야기해.’ 그 긴 문장을 단 한 글자에 용케 눌러 담아 던진다. 이러니 대화가 다정하게 이어질 수 있나. 질세라 물기 없는 어투로 병원에서의 일들을 전했다. 수화기 너머 한껏 예민해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통탄에 빠진 것 같기도 하다. 잔뜩 짜증이 묻은 반응에 왠지 한숨이 놓인다. 익숙함이 가져다주는 평안인가.
집안의 대소사는 늘 엄마의 몫이다. 이제 세세한 지시사항이 내려질 것이니 마음 편히 따라야지. 엄마의 말이라면 믿음이 간다.


입원 중이던 엄마는 몇 번 본 적 있는 엄마의 친구에게 나를 일임할 것이라 전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방앗간, 엄마의 식당에서 자주 스쳤던 다수의 ‘이모’ 중 한 분이다. 이모는 꽤 오랫동안 보험사에서 영업하고 계셨고, 작년 난소 질환으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나와 엄마의 궁금증을 모두 풀어줄 분이다. 어느 병원이 여성 질환을 잘 보는지 아실 테고, 내 보험도 맡고 계시니 혹 치료받게 됐을 때 의료비에 관한 보험 청구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더욱이 편한 부탁이 가능한 오랜 세월로 엮인 분이시니 이만큼 적합한 대리인도 또 없지 싶었다. 하지만 얼굴이 익다고 가까운 사이라 할 수는 없다. 일방적인 나의 거부에서 벌어진 거리가 꽤 멀다. 이모는 엄마에게 소액의 돈을 빌려 수년째 조금씩 갚고 있었고, 그 오래된 채무가 이모를 내 마음에 들여놓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은근히 무른데가 있는 엄마는 분명 돈을 달라 채근하지 못했을 거다. 엄마가 이용당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이모는 최근 새로운 사업도 시작했단다. 빌린 돈부터 갚아야 하지 않냐는 나의 꼬장꼬장함에도 엄마는 이모의 처지를 대변하기 바빴다. 본인이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으며, 이모도 돈을 벌어야 빌린 돈을 갚지 않겠냐는 논리로 매번 내 입을 틀어 막아 버리곤 했다. 가족에게는 새침하고 똑 부러지는 엄마지만, 울타리 밖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내 눈에는 그리 보였다. 어릴 적부터 그게 참 불만이었던 터라 가게로 찾아오는 엄마의 지인들에게 나는 상냥한 아이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장착된 나의 사근사근함을 보았더라면, 엄마는 아마 깊은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남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구차한 변명이지만, 엄마 미안해요.


내일 당장 병원에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모가 같이 가 주시겠단다. 절차대로 예약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응급실로 가던가 다른 수를 내야 한다는 이모의 조언도 함께 전달 받았다. 오랜 기간 쌓인 보험 영업인의 정보력과 최근 같은 병원에서 수술했던 환자의 경험에서 나온 진심 어린 충고다. 엄마의 철통같은 변호에도 친근함을 느낄 수 없던 이모였지만, 병원에 동행해주겠다는 말에 한결 걱정을 던다. 방어적 기세가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이제 정말 병원에 간다. 결심이 서고 보니, 당장 곁에 없는 엄마가 절실하다. 아쉬울 때만 찾는 딸이라 면구스럽지만 그래도 엄마가 필요한 걸 어쩌나. 한 번도 간 적 없는 낯선 곳에 데면데면한 이모와 가야 한다니, 병에 대한 불안함에 혼자라는 서러움까지 더해져 기가 막히게 슬펐다.


자세한 이유는 남기지 않고 하루 연차를 허락받았다.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다. 원리 원칙이 중요한 융통성 없는 나는 무턱대고 병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왠지 꺼림직했다. 그것도 빠른 진료를 위해서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병원 홈페이지에는 분명 처음 내원하는 환자는 꼭 예약하라 되어있었다. 엄마와 이모가 제시한 방법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또 다른 걱정도 가슴을 눌렀다. 병원은 도시를 벗어난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데, 거리는 20km 남짓이지만 요금소를 단 한 번도 지난 적 없는 초보 운전자에게는 상당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아, 어떻게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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