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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녕 May 16. 2020

콜라비와 유화

생경함에 대하여.


낯선 대상을 마주할 때 대체로 나타나는 반응은 두 가지.

어색해 불편함을 느끼거나, 새로움에 흥미를 느끼거나. 


최근 두 번의 생경함을 마주했다. 

같은 두려움을 느꼈으나 결과는 아주 달랐다.   



1. 콜라비 

지금껏 콜라비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콜라비는 망고, 아보카도와는 결이 다르다. 

새로운 것임에도 망고와 아보카도는 명성이 자자해 알지도 못하는 그 맛에 군침이 흘렀다.

실제 그들을 삼켰을 때도, 처음이지만 아주 만족스러워 얼른 친해지고 싶었다. 

콜라비는 어떤가. 

돈을 들고 시장을 몇 바퀴 돌아도, 나는 콜라비를 사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우선 모르는 맛이요, 딱히 먹어보고 싶은 외관은 아니었기 때문. 


갑자기 콜라비를 두 개 선물 받았다. 

그들을 냉장고 속 깊이 앉혀둔 채 며칠을 보냈다.

하지 않은 숙제가 남은 것처럼 마음이 찜찜하고 불편하다. 

어떻게 먹어야 하나 포탈에서 콜라비를 검색해 본다. 

기껏 찾아낸 것이 피클과 생채를 만드는 조리법. 


벼르고 벼르다 콜라비가 혹 상하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칼을 뽑아 들었다. 

조리법을 읽어보니 콜라비는 무와 비슷한 식감을 주는듯하다. 

좋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생채를 만들어 봐야지. 


두 개의 콜라비를 모두 총총 썰고, 이리저리 양념했다.

콜라비는 무보다 조금 더 딱딱했고, 왠지 바로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며칠 묵히기로 한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냉장고를 열어, 처음 양념을 친 콜라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콜라비는 변한다. 그런데 안색이 좋질 않다. 

직감했다. 실패했다는 것을. 


그렇다고 한 통 가득 담긴 콜라비를 버릴 수는 없었다. 

아무에게도 냉장고 속에 콜라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혼자 해치우기 시작한다. 

맛이 없다. 

내가 괴물을 만들었다. 벌을 달게 받아야지. 

생각날 때마다 한 젓가락씩 덜어 먹는데도 통 양이 줄질 않는다. 


아,

다시는 콜라비와 만나고 싶지 않다.   



2. 유화 

그림을 공부하고 있는 곳에서 유화를 준비하란다. 

유화 물감.

미대를 나왔지만, 서양화가 전공은 아닌 덕에 한 번도 사용해보질 않았다.

잘하지 못할 것 같아 부담감을 느꼈다. 

색을 쓰는데 통 자신이 없는 나는 

나름 비싼 유화 물감을 사용하는 게 왠지 돈을 갖다 버리는 행위가 될 것 같아 마뜩잖았다. 


미리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오라기에 얼른 준비물을 샀다. 

그림 그리기와 준비물을 사는 행위 중 그래도 준비물을 사는 게 더 쉬웠기에 후딱 해치웠다.

화방으로 가 최대한 초라한 모습으로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른다 말하고는 주인아저씨께 기본 물품을 추천받았다.

아저씨는 생초보로 보이는 내가 측은했던지,

하나하나 물품의 사용법을 알려주셨다.

덕분에 몇 번에 걸쳐 검색하는 단계는 생략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화방에서 사들인 짐 꾸러미를 의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열심히 청소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은 회피다. 

갑자기 집을 청소하고 싶다. 

밀린 설거지와 창틀 청소, 소파 정리까지 마치니 더는 할 일이 없다.

그려야 한다.

한숨을 깊이 쉬고, TV를 틀었다.

혼자 캔버스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다.

TV야 너도 나랑 같이 유화를 맞이해보자. 


화방 아저씨께 대충 전해 들은 사용법을 기억해

물감을 짜 캔버스에 붓을 대본다. 

역시나 별로.

이왕 별로인 거 포기하는 심정으로 계속 붓질을 했다.

어, 생각보다 괜찮다.  


아크릴과는 달리 유화는 쉽게 굳질 않았고, 

그 때문에 색에 자신이 없는 나에게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었다. 


재밌다. 

잘하진 못하지만 유화 물감의 성질에 꽤 매력을 느꼈다. 

알지 못했던 대상에 대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 기분이다. 


이제 나는 유화를 안다.

더는 낯설지 않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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