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함에 대하여.
낯선 대상을 마주할 때 대체로 나타나는 반응은 두 가지.
어색해 불편함을 느끼거나, 새로움에 흥미를 느끼거나.
최근 두 번의 생경함을 마주했다.
같은 두려움을 느꼈으나 결과는 아주 달랐다.
1. 콜라비
지금껏 콜라비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콜라비는 망고, 아보카도와는 결이 다르다.
새로운 것임에도 망고와 아보카도는 명성이 자자해 알지도 못하는 그 맛에 군침이 흘렀다.
실제 그들을 삼켰을 때도, 처음이지만 아주 만족스러워 얼른 친해지고 싶었다.
콜라비는 어떤가.
돈을 들고 시장을 몇 바퀴 돌아도, 나는 콜라비를 사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우선 모르는 맛이요, 딱히 먹어보고 싶은 외관은 아니었기 때문.
갑자기 콜라비를 두 개 선물 받았다.
그들을 냉장고 속 깊이 앉혀둔 채 며칠을 보냈다.
하지 않은 숙제가 남은 것처럼 마음이 찜찜하고 불편하다.
어떻게 먹어야 하나 포탈에서 콜라비를 검색해 본다.
기껏 찾아낸 것이 피클과 생채를 만드는 조리법.
벼르고 벼르다 콜라비가 혹 상하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칼을 뽑아 들었다.
조리법을 읽어보니 콜라비는 무와 비슷한 식감을 주는듯하다.
좋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생채를 만들어 봐야지.
두 개의 콜라비를 모두 총총 썰고, 이리저리 양념했다.
콜라비는 무보다 조금 더 딱딱했고, 왠지 바로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며칠 묵히기로 한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냉장고를 열어, 처음 양념을 친 콜라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콜라비는 변한다. 그런데 안색이 좋질 않다.
직감했다. 실패했다는 것을.
그렇다고 한 통 가득 담긴 콜라비를 버릴 수는 없었다.
아무에게도 냉장고 속에 콜라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혼자 해치우기 시작한다.
맛이 없다.
내가 괴물을 만들었다. 벌을 달게 받아야지.
생각날 때마다 한 젓가락씩 덜어 먹는데도 통 양이 줄질 않는다.
아,
다시는 콜라비와 만나고 싶지 않다.
2. 유화
그림을 공부하고 있는 곳에서 유화를 준비하란다.
유화 물감.
미대를 나왔지만, 서양화가 전공은 아닌 덕에 한 번도 사용해보질 않았다.
잘하지 못할 것 같아 부담감을 느꼈다.
색을 쓰는데 통 자신이 없는 나는
나름 비싼 유화 물감을 사용하는 게 왠지 돈을 갖다 버리는 행위가 될 것 같아 마뜩잖았다.
미리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오라기에 얼른 준비물을 샀다.
그림 그리기와 준비물을 사는 행위 중 그래도 준비물을 사는 게 더 쉬웠기에 후딱 해치웠다.
화방으로 가 최대한 초라한 모습으로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른다 말하고는 주인아저씨께 기본 물품을 추천받았다.
아저씨는 생초보로 보이는 내가 측은했던지,
하나하나 물품의 사용법을 알려주셨다.
덕분에 몇 번에 걸쳐 검색하는 단계는 생략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화방에서 사들인 짐 꾸러미를 의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열심히 청소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은 회피다.
갑자기 집을 청소하고 싶다.
밀린 설거지와 창틀 청소, 소파 정리까지 마치니 더는 할 일이 없다.
그려야 한다.
한숨을 깊이 쉬고, TV를 틀었다.
혼자 캔버스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다.
TV야 너도 나랑 같이 유화를 맞이해보자.
화방 아저씨께 대충 전해 들은 사용법을 기억해
물감을 짜 캔버스에 붓을 대본다.
역시나 별로.
이왕 별로인 거 포기하는 심정으로 계속 붓질을 했다.
어, 생각보다 괜찮다.
아크릴과는 달리 유화는 쉽게 굳질 않았고,
그 때문에 색에 자신이 없는 나에게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었다.
재밌다.
잘하진 못하지만 유화 물감의 성질에 꽤 매력을 느꼈다.
알지 못했던 대상에 대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 기분이다.
이제 나는 유화를 안다.
더는 낯설지 않아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