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가 인생이라면 축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축구 역시 '우리 편 골대에서 상대 편 골대 사이' 그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의 집합체이다. [Box to Box]에는 이처럼 축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편집자 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터진 골은 총 171골. 경기당 평균 2.67골로 8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가장 많은 골이 터져 나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주목받았던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현대축구의 골키퍼는 바쁘다. 단순히 공만 막지 않는다. 공격적인 전술 운용과 빠른 전방 압박을 위한 전진된 수비라인은 골키퍼에게 ‘넓어진 수비 뒷 공간 커버’, ‘빌드업의 출발점’ 이라는 또 다른 임무와 역할을 부여했다.
# ‘로만’ 때를 기다리다
대한민국 축구에도 골키퍼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김진현, 이범영, 김승규, 정성룡 등 춘추전국시대 호걸들을 방불케 하는 뛰어난 골키퍼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원'에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동안 경상북도 포항의 초야(草野)에는 대 ‘로만’ 제국 건설의 때를 기다리는 이가 있었으니, 한국의 카시야스를 꿈꾸는 김로만(20, 포항 스틸러스 U-18 선수단)이 그 주인공이다.
190cm의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외국의 아이돌 가수나 모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한국인’ 축구 선수다. 김로만은 러시아에서 무역업에 종사했던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유년시절, 이국적인 외모와 편견으로 인한 설움 때문에 한국생활 적응에 애를 먹었던 김로만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했다. 축구를 시작한 김로만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감과 적응력을 키워나갔다. 축구를 통해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처음부터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하더라도 필드 플레이어로서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후 좋은 체격조건(초등학교 당시 키 180cm)과 재능을 알아본 감독님의 권유로 골키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포지션 변경과 함께 롤모델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서 이케르 카시야스로 재설정했다. 골키퍼로서 본격적인 축구 인생 2막을 시작한 것이다.
골키퍼 장갑을 끼자마자 김로만의 재능은 빛이 났다. 2009년 신곡초등학교가 3개의 전국 대회에서 전승으로 우승할 때 3개 대회 전 경기 무실점 기록을 세우며 ‘리틀 야신’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포항스틸러스가 운영하는 U-15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중학교에 입학한 김로만은 중학교 에서도 승승장구 했다. 2011년 대교 눈높이 중등 경북리그에서 14경기에 출전해 단 3골만을 실점하며 포항제철중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해 풍생중학교와 벌인 왕중왕전 결승전에선 상대의 승부차기를 연거푸 막아내며 김로만 이라는 이름을 축구팬들에게 널리 알렸다.
김로만은 현재 포항스틸러스 U-18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고에서 변함없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에만 5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유소년 팀임을 증명한 포항제철고의 영광 뒤엔 김로만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승부차기에 강했던 김로만은 작년 열린 대통령금배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우승(5:3), 현대고와의 전국체전 결승에서도 승부차기로 우승(4:2)하는 등 큰 경기, 살 떨리는 승부차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최근에는 U-18 유소년 팀들이 참가하는 K리그 주니어 대회에서 전 경기 선발 출전(6경기)하며 B조 최소 실점(4실점)을 기록하는 등 변함없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 Festina Lente(천천히 서둘러라)
“지금은 꿈일 뿐이지만 언젠가 신화용 선배님의 뒤를 이어 포항의 수호신으로 활약하고 싶어요. 나아가 국가대표에 승선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지금까지 혼혈 선수가 태극마크를 단 경우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했던 장대일과 얼마 전 아시안컵 슈틸리케 호의 제주 전지훈련명단 28명에 이름을 올렸던 강수일(현 제주 유나이티드 FC)이 있었다. 국가대표를 향한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이미 성인 국가 대표 팀에는 앞서 말했듯 기라성같은 선배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타 포지션에 비해 비교적 선수 생명이 길다고 하는 골키퍼로서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기나긴 자신과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필드 플레이어에서 골키퍼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순간 김로만은 단거리가 아니라 기나긴 마라톤 코스를 자신의 트랙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한민국 골키퍼의 살아있는 전설 김병지의 자기관리법은 김로만이 어떠한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롱런’ 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 고등학교 시절 눈에 띄는 세이브 능력과 승부차기에서의 대담함은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실점 후 급격하게 폼이 떨어지는 모습은 아쉬운 점으로 지적받기도 했다. 세이브 능력뿐만 아니라 현대축구가 요구하는 골키퍼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선 갖고 있는 것보다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위해 매진할 때이다.
과거 진시황의 진나라는 대륙의 가장 서쪽 변방에 위치한 약소국으로 시작했지만 꾸준한 개혁과 노력으로 춘추전국시대를 10년 만에 제패했다. 골키퍼 전국시대, 지금은 약소국에 불과한 ‘로만’이 호걸들이 즐비한 난세를 평정하고 초록색 대륙위에 ‘대 로만 제국’ 깃발을 꼽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헤럴드 H스포츠에 2015년 5월 1일자로 기고한 칼럼을 일부 교정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