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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원 Apr 10. 2019

좌흥민? 우흥민?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토트넘 손흥민


▲ 맨체스터 시티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서 결승골을 넣은 토트넘 손흥민 / 사진: 토트넘 공식 소셜미디어 갈무리

새로운 둥지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서 손흥민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 크리스탈 팰리스(이하 팰리스)와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 경기서 새 경기장 1호골의 주인공이 된 손흥민은 10일(한국시간) 펼쳐진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서도 신축경기장 유럽대항전 1호골을 터뜨리며 토트넘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맨시티를 상대로 4-2-3-1 포메이션의 왼쪽 측면 윙어로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마찬가지로 4-2-3-1 전형으로 나선 맨시티의 오른쪽 풀백 카일 워커와 맞대결을 펼쳤다. 과거 토트넘서 활약할 때부터 손흥민의 ‘절친’으로 알려진 워커는 그 누구보다 손흥민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선수. 탄탄한 체격조건과 스피드를 갖춘 워커를 상대로 손흥민은 전반 초반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 전반전 초반 왼쪽 측면에서 카일 워커와 대결한 손흥민 / 사진: SPOTV 중계화면 갈무리

토트넘은 전반 10분경 대니 로즈가 라힘 스털링의 슈팅을 막아내는 과정서 팔을 사용해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토트넘의 주장 휘고 요리스 골키퍼가 키커로 나선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슈팅 궤적을 정확히 읽어내 선방을 기록했다. 요리스 골키퍼의 선방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린 토트넘은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가장 눈에 띈 움직임은 손흥민의 위치 변화였다. 전반 15분경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대화를 나눈 손흥민은 왼쪽 측면이 아닌 오른쪽 측면에 터를 잡았다. 워커가 포진한 맨시티의 오른쪽 측면보다 파비안 델프가 위치한 왼쪽 측면이 상대적으로 공략하기 쉬울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델프는 지난 3월 스완지 시티와의 FA컵 준결승전 이후 약 한 달 만에 피치를 밟아 100% 컨디션이 아니었다.

▲ 전반전 15분경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대화를 나눈 뒤 왼쪽 측면서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한 손흥민 / 사진: SPOTV 중계화면 갈무리

당초 맨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최근 부상에서 복귀한 벤자민 멘디를 왼쪽 측면 수비수로 기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지난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과의 FA컵 준결승전서 멘디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인 탓에 델프가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다. 보통 델프는 스피드는 떨어지지만 공격 과정서 중앙 쪽으로 움직임을 가져가 빌드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패스를 통한 점유율 확보를 중시하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델프를 미드필더가 아닌 측면 수비로 기용하는 이유다.


손흥민이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하자, 특유의 스피드와 슈팅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후반 3분 박스 앞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이 수비수를 앞에 두고 전매특허인 왼발 감아차기로 골문을 노렸다. 아쉽게 오른쪽 골포스트를 비껴가면서 득점이 무산됐지만, 에데르송 골키퍼가 몸을 날려야 했을 정도로 공의 궤적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주발이 오른발인지, 왼발인지 헷갈린다”는 본인의 말처럼 손흥민의 한껏 날이 선 왼발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토트넘을 상대한 맨시티의 경우 주로 오른쪽 측면에 왼발이 주발인 윙어(베르나르두 실바 혹은 리야드 마레즈), 왼쪽 측면에 오른발을 쓰는 윙어(스털링)를 배치하는 이른바 '반대발 윙어' 전술을 구사하는데, 토트넘전을 소화한 마레즈와 스털링의 경우 주발이 아닌 오른발과 왼발 킥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토트넘 수비수들이 어느 정도 플레이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었다. 보통 반대발 윙어들은 측면에서 크로스보다는 중앙으로 좁혀 들어오는 '커트 인(cut in)' 플레이를 통해 공간을 창출하거나 주발로 감아때리는 슈팅을 활용해 직접 득점을 노리기 때문이다.

▲ 맨체스터 시티전 손흥민의 골 장면, 손흥민은 측면 수비수 파비안 델프(빨간색)의 수비 뒷공간을 침투, 직접 왼발로 골망을 갈랐다. / 사진: SPOTV 중계화면 갈무리

반대로 손흥민은 양발을 모두 잘 쓰기 때문에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전형적인 윙어와 반대발 윙어의 특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후반 33분 터진 맨시티전 결승골도 오른쪽 측면서 수비 뒷공간을 공략한 손흥민의 움직임에서 시작됐는데, 측면으로 넓게 벌려 크로스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직접 박스 안으로 침투해 결정짓겠다는 의지가 다분했다. 에릭센의 패스를 받은 손흥민이 터치라인 부근서 공을 끝까지 살려낸 뒤 델프를 따돌리고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수비하는 과정에서 델프가 손흥민에게 공간을 허용했고, 집념으로 공을 살린 손흥민이 침착하게 개인기로 델프를 벗겨내고 골까지 만들어냈다.


손흥민의 맨시티전 결승골은 지난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 팰리스전 결승골 장면을 보는듯했다. 당시에도 2선서 공을 잡은 에릭센이 오른쪽 측면서 박스 안으로 침투한 손흥민에게 패스를 연결했고, 손흥민이 수비수들을 제치고 왼발로 마무리해 새 경기장 공식 1호골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이날 토트넘의 포체티노 감독은 팰리스의 오른쪽 측면 공격을 제어하기 위해 왼쪽 풀백인 로즈를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4-2-3-1 전술을 들고 나왔는데, 로즈가 왼쪽 측면에 포진하면서 손흥민은 2선 중앙, 오른쪽, 최전방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져갔다.

▲ 지난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 경기서 손흥민은 선제골(위)을 넣은 뒤 왼쪽 측면으로 이동(아래)해 활약했다. / 사진: SPOTV 중계화면 갈무리

손흥민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은 토트넘은 후반 25분경 로즈를 빼고 해리 윙크스를 투입해 선수들의 위치 변화를 가져갔다. 윙크스가 3선에 포진하면서 델레 알리와 에릭센이 각각 2선 중앙과 오른쪽 측면으로, 손흥민이 왼쪽 측면으로 연쇄 이동했다. 왼쪽 측면으로 이동한 손흥민은 한차례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을 시도했지만, 계속해서 팰리스의 오른쪽 풀백 아론 완 비사카를 상대로 1:1 돌파를 시도하는 등 동료들에게 패스와 크로스를 공급하는 데 집중했다. 선제골을 넣기 전에는 주로 중앙과 오른쪽 측면서 반대발 윙어처럼 활약했다면, 선제골 이후에는 왼쪽 측면서 전형적인 윙어 역할에 집중한 것이다.


맨시티전서 해리 케인이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 막바지 손흥민의 활약 여부가 더욱 중요해졌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팀의 공격을 책임져야 하는 손흥민이 좌·우 측면, 최전방 원톱 위치를 가리지 않고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것. 자신의 첫 챔피언스리그 8강전 골이자, 토트넘 구단의 8강 마수걸이 골의 주인공이 된 손흥민이 새로운 경기장서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9년 4월 10일자 베프리포트 해외축구 기사 갈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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