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독'해야 산다

by 정일원
▲ FA컵 4강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꺾고 포효하는 아르센 벵거 감독 / 사진: 아스널 공식 소셜미디어 갈무리

14일(이하 현지시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의 사우샘프턴이 클로드 퓌엘 감독을 부임 1년 만에 해임했다. 이로써 지난 3년간 사우샘프턴은 3명의 감독(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로날드 쿠만, 클로드 퓌엘) 이별을 겪게 됐다.


올 시즌 EPL 구단의 감독 해임 및 경질 건수는 7건이다. 14일 영국 BBC는 리그감독협회(the League Managers Association)의 통계를 인용해 “2016-2017 시즌 종료 후 현재까지 EPL 감독이 해임 및 경질된 경우는 7차례이며, 이는 지난 2015-2016 시즌(12건)보다 53% 낮아진 수치다”라고 보도했다.

▲ 통계: BBC 갈무리

지난 시즌보단 덜하지만, EPL 감독들은 여전히 ‘파리 목숨’이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올 시즌 지휘봉을 내려놓은 감독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1.16년에 불과했다. 챔피언십(2부리그)을 포함한 하위리그로 갈수록 감독의 해임 및 경질은 더 빈번하게 발생했다.


천문학적인 중계권료가 구단 수입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EPL 감독들이 느끼는 ‘성적’에 대한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상위권 팀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톱4 진입에 혈안이고, 하위권 팀은 리그 중계권료의 절반을 균등 분배 받을 수 있는 1부리그 잔류를 위해 치열한 강등권 싸움을 펼치기 때문이다.

▲ 레스터 시티를 이끌고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015-2016 시즌 우승을 차지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 / 사진: 레스터 시티 공식 소셜미디어 갈무리

당장 오가는 돈의 액수가 어마어마하니, 감독들이 과거에 이룩한 업적들 역시 저평가되기 일쑤다. 일례로 2015-2016 시즌 레스터 시티를 이끌고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올 시즌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가차 없이 구단으로부터 경질 통보를 받았다. 당시 라니에리 감독은 구단 역사상 최초로 참가한 챔피언스리그에서 16강을 이끌었지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구단 수뇌부에게 자비란 없었다.


지난달 31일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이 가까스로 2년 계약 연장에 성공하면서 ‘거장’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아스널에서만 21년 가까이 감독직을 수행해온 벵거 감독은 과거 수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올 시즌 부임 이래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따내지 못하면서 감독 커리어 최대 위기를 맞았다.

▲ 리그 챔피언 첼시를 꺾고 FA컵 통산 13회 우승을 차지한 아스널 / 사진: 아스널 공식 소셜미디어 갈무리

벵거 감독의 자구책은 과감한 ‘변화’였다. 기존의 유기적인 패스를 통한 ‘아름다운 축구’대신 철저히 ‘실리 축구’를 택했다. 시즌 막판 자존심을 버리고 20년 만에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전환, 리그 챔피언 첼시를 꺾고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자신의 축구철학을 수정할 만큼 벵거 감독은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고, 결국 살아남았다.


지난 2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제 무리뉴 감독은 라니에리 감독의 경질을 두고 “레스터 시티의 결정은 매우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감독들이 준비를 해야만 하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무리뉴 감독 역시 2014-2015 시즌 첼시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그다음 시즌 성적 부진을 이유로 바로 짐을 싸야만 했다.

무리뉴 감독의 말대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의 영광이 현재의 안위를 보장해주지 않음은 물론, 성과 없는 철학은 곧장 '아집'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감독들은 깨닫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독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터'가 지금의 EPL이다.


2017년 6월 15일자 베프리포트 해외축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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