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년 만에 사라진 통장 잔고

각자형 부부탐구

by 김 준 호

부부통장을 취재하면서 발견한 통장 유형은 크게 3가지이다. 통장을 각각 관리하는 각자형, 부부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공동형, 남편이든, 아내든 혼자서 관리하는 주도형이다. 오늘은 각자형을 소개한다.


F 부부의 이야기는 독특하다. 결혼할 때 남편은 아내에게 통장을 맡겼다. 신혼의 설렘과 함께 시작한 공동의 경제생활.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아내가 관리하던 통장에 있던 돈은 모두 사라졌다.


“결혼하고 나서 1년 만에 다 사라진 거예요. 1년 만에.”

F는 당황했다. 아내에게 어디에 썼는지 물었다. 술값, 친구들과의 모임, 생활비로 이것저것 사는 데 쓰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아내는 대학 시절에도 그랬다고 한다. 등록금을 받으면 어느새 사라졌다. 아내의 소비 패턴은 결혼 전이나 후나 변하지 않았다.


‘결혼하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달라지지 않은 거구나.’


그때 남편은 깨달았다. ‘이건 안 되는구나. 이 방식으로는 안 되는구나.’ 그래서 결정했다. ‘내가 번 돈은 내가 관리할게’.


제미1.png 이미지 제미나이로 제작


각자 관리, 간섭 없이


이 부부는 그렇게 ‘각자형’으로 통장 시스템을 바꿨다. 남편은 자기가 번 돈을 모아서 주택에 투자했다. 재테크도 혼자 공부하고 혼자 실행했다. 반면 아내가 버는 돈에는 일절 터치하지 않기로 했다.

“자기가 버는 것은 터치를 안 하는 거지요. 아내는 본인이 먹고 싶은 거 먹고요. 소비패턴을 그대로 유지했죠. 그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요.”

남편은 생활비, 쇼핑, 외식 같은 일상적인 지출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안 했다. 아내는 자기가 번 돈으로 하고 싶은 걸 하고, 사고 싶은 걸 샀다. 남편은 묵묵히 자기 몫을 관리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그렇다면 이 부부는 불행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였다.

남편도, 아내도 만족했다.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쓸 수 있었고, 서로를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싸울 일이 없었다.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이 부부에게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각자형에도 룰은 있다. ‘각자형’이라고 해서 완전히 따로 노는 건 아니었다. 이들에게도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첫째, 큰돈은 함께 관리한다.

일상적인 생활비는 각자 알아서 하지만, 아이들 학비나 큰 목돈이 필요한 일은 자연스럽게 남편이 담당했다. 아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남편을 믿고 맡겼다. 미래에 필요한 큰돈은 각자의 영역이 아니라 가족의 영역으로 인식한 것이다.

둘째, 일상소비는 간섭하지 않는다.

“오늘 삼겹살 먹고 싶어”라고 하면 그냥 먹는다. “이거 사고 싶어”라고 하면 그냥 산다. 3만 원짜리 삼겹살을 먹는 것에 대해 남편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브랜드 가방을 사는 것도, 그게 수십만 원짜리가 아니라면 간섭하지 않는다.

기준은 명확했다. 일상적인 소소한 소비는 자유. 하지만 과도한 명품 소비나 사치성 지출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선을 서로 알고 있었다.

셋째, 성격과 나이에 맞춰 조정한다.

이 부부는 서로의 성격을 잘 안다. 남편은 계획적이고 절제력이 있다. 아내는 즉흥적이고 소비를 즐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당신을 바꾸려 하지 않을게. 대신 나도 내 방식대로 할게.” 이 암묵적 합의가 부부를 편하게 만들었다.


이 부부 행복하게 산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1.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가

이 부부는 아내의 소비 성향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결혼했으니까 달라져야 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럼 나는 내 방식대로 할게”라고 경계를 그었다.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를 포기하면, 갈등이 줄어든다.

2. 큰 그림을 공유하는가

생활비는 각자 알아서 하지만, 아이들 학비나 집 같은 큰 목표는 함께했다. 완전히 따로 사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함께 챙긴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이게 없으면 각자형은 단순히 ‘남남’이 되어버린다.

3. 간섭의 선을 명확히 하는가

3만 원짜리 삼겹살은 오케이, 수백만 원짜리 명품은 논의 대상. 이 선이 명확했다. 어디까지가 일상 소비이고, 어디서부터가 사치인지에 대한 공통된 감각이 있었다. 이게 없으면 “넌 왜 이것도 간섭해?”라는 싸움이 생긴다.

4. 신뢰가 바탕에 있는가

아내는 남편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안다. 남편은 아내가 과도하게 쓰지 않는다는 걸 안다. 이 상호 신뢰가 없으면, 각자형은 불안한 시스템이 된다. “저 사람, 다 쓰고 있는 거 아냐?” “나만 미래 준비하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이 쌓이면 결국 터진다.


각자형이 맞지 않는 경우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각자형은 모든 부부에게 권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특히 이런 경우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한쪽이 극단적으로 낭비하는 경우이다. F 부부는 아내가 쓰긴 하지만 과도하게는 쓰지 않았다. 하지만 한쪽이 빚을 내거나 카드를 한도까지 쓴다면, 각자형은 위험하다.

수입 격차가 너무 큰 경우에도 위험하다. 한쪽은 월 500만 원, 한쪽은 월 150만 원을 번다면? 각자 알아서 하라고 하면 불공정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미래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경우이다. 이 부부는 남편이 미래를 준비했다. 하지만 둘 다 현재만 살고 미래는 안 본다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긴다.

투명성을 원하는 경우이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가 뭘 하는지, 얼마를 쓰는지 알고 싶어 한다. 각자형은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각자형도 세분화된다


이 부부를 탐구하면서 깨달은 또 하나. 같은 각자형이라도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라는 것. 어떤 각자형은 칼같이 50대 50으로 나눈다. 어떤 각자형은 큰돈만 함께하고 나머지는 자유다. 어떤 각자형은 서로 간섭을 많이 하고, 어떤 각자형은 전혀 안 한다.

중요한 건 ‘우리 부부에게 맞는 각자형’을 찾는 것이다. 남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 없다. 우리 부부의 성격, 나이, 수입, 가치관에 맞춰 조정하면 된다. 행복의 기준은 각자 다르다

부부 통장에는 정답이 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편한 방식이다. 공동형이 맞는 부부가 있고, 각자형이 맞는 부부가 있고, 혼합형이 맞는 부부가 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부부가 행복하면 그게 정답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부부가 함께 정해야 한다는 것. 한쪽이 일방적으로 정하고 강요하면, 그게 공동형이든 각자형이든 갈등이 생긴다. F 부부도 결국 대화를 통해, 시행착오를 통해,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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