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모성애가 무엇인가요?

by 구가영



엄마의 숟가락 배달이 기억나는 건, 초등학생 때 하교 후 어김없이 컴퓨터를 하는데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고 하셨을 때다. 사실 이때만이 아니다.


아침 먹자, 점심 먹자, 저녁 먹자, 밥 먹자. 다섯 식구의 모든 삼시세끼를 3-40년을 책임지셨으니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던 나. 티비 앞에서 눈을 떼지 않던 나였다. 그럴 때면 엄마는 숟가락에 밥, 반찬을 떠서 입에 넣어주러 오신다. 가끔은 쌈에 밥, 고기를 넣어 한 끼 다 먹을 때까지 왔다 갔다 오가며 넣어주신다. 성인이 되어 집을 나오기 전까지 그리하셨다..


그게 엄마의 숟가락 배달이었다.





성인이 되어 타지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막내딸이 안쓰러웠는지 자주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리고 내가 드린 돈을 다 나를 먹이는 데 쓰셨다. 혼자 살며 밥을 잘 안 챙겨 먹는데 엄마가 오는 날이면 못 먹던 반찬을 가득 먹을 수 있었다.


20대 초반, 내가 가장 어렵고 궁핍하던 신림원룸살이 때도 그랬다. 신발장 바로 앞에 있는 부엌에서, 좁은 방 안에서 나를 위해 한상 가득 차려주셨다. 돈도 없으실 텐데 고기고, 생선이고 늘 푸짐하게 차려주신다. 비싼 과일도 나를 먹이시려고 본인은 안 드시고 자꾸 먹으라 하신다.





그리고 며칠 뒤, 말없이 내가 어릴 적 좋아하던 박카스 한 박스만 냉장고에 채워두시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신다. 퇴근하고 비워진 엄마의 빈자리에 하염없이 울던 때가 있었다.


늘 나의 밥을 걱정하던 엄마. 어릴 때도 모자라 한참 커 성인이 되었는데도 입에 한 숟갈 넣어주러 먼 길을 오가신다.


...


그리고 어느덧 20대 후반인 2019년의 어느 날. 엄마가 또 타지에 살고 있는 나의 집에 방문했다. 하루 종일 재잘거리며 함께 맛집에 가고 카페에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우리 모녀.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와, 엄마는 안경을 책장 위에 올려두고 화장실에 가셨다.




나는 책장을 지나치다 우연히 가지런히 놓여진 엄마의 안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안경 알이. 모자이크를 한 것 마냥 흐렸다. 뭐가 묻었나? 안경닦이로 한참을 닦았다. 똑같네.. 입고 있던 옷으로도 닦고 싱크대에서 물로, 주방 세제로도 닦아봤다. 뭐야 왜 안 지워지지? 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엄마 안경이 안 닦여"

"원래 그래. 나도 뭐가 묻었나 계속 닦아보는데 안되네"


그 안경은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사용하신 걸로 기억한다. 15년도 더 된 안경. 난 안경에 물방울 하나만 튀어도, 지문 하나 찍혀도 불편해서 안경 닦이를 늘 챙겨 다니는데 어떻게 끼고 생활하셨을까.


그런 안경을 끼고서도 엄마는 자식들이 보내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 다시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가 이사하는 날, 취직하는 날, 돈이 없는 날.


"엄마 내일 안경 맞추러 가자. 이거 못 껴, 눈 더 나빠지겠는데?"


갑자기 엄마가 말이 없다.

나를 한참을 바라보신다.

눈을 붉히신다.

눈물이 떨어진다.


그 때 엄마의 눈물 속에는 아마도 15년 동안 흐릿한 세상을 견뎌온 시간들이 모였던 것 같다. 자식에게, 남편에게 안경 하나 사달라는 말조차 삼켜야 했던 모든 순간들이 녹아 있었을 것이다. 그날 나는 닦이지 않던 안경 알 속에서 엄마의 삶을 보았다. 엄마를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다음날 새로 맞춘 안경에 활짝 웃으시던 엄마.

그 모습을 보며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어떻게 되갚아드릴지 막막하던 나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손톱의 때만큼도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감히 그 사랑을 조금도 흉내 내지 못할 것 같다…



대체 모성애가 무엇일까.



부족해도 사랑은 넘쳤던 우리


사랑해 엄마.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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