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martobject Mar 18. 2024

닭꼬치 이야기

동업

 대학 시절 삼총사가 있었다. 트라이앵글은 밸런스를 유지하기에 완벽한 구조이다. 유비, 관우, 장비같은 느낌으로 우리 삼총사는 학업에 집중했고 학업 외의 창의적인 활동도 많이했다. 유일하게 잘 노는 방법만 몰랐던 우리에게 다가온 ‘축제'는 사업적인 성과를 내보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였다. 


 나와 동갑인 영진이는 강한 인상과 근육질 체격에 맞게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에게는 좋은 이동수단이었던 자동차가 있었다. 빨갛고 작은 마티즈였지만 시간이 지나서 폐차할 때 함께 마음이 아릴 정도로 정이 많이 가는 귀여운 차였다. 그와 그것이 우리의 기동력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한 살 어린 승환이는 가끔 같이 있는 것이 창피해질 정도로 본능적이고 서스럼없는 친구였다. 호객행위를 한다면 이 친구에게 전적으로 맡기리라. 무엇보다 그의 인맥으로 업체 납품용 닭꼬치를 저렴하게 가져올 수 있었다. 좋은 질의 고기(사실 맛만 좋았을 뿐. 품질은 알 수 없다)를 저렴하게 가져올 수 있었다. 우리가 축제 때 닭꼬치를 팔 수 있도록 자원을 제공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만 빈손이었지싶다. 물론 엑셀로 예산과 재료를 정리하고 일의 순서를 기획했다. 안락한 차를 제공하고 맛있는 닭고기를 가져오는 둘에 밑지지 않도록 더 열심히했던 것 같다. 자격지심으로 했다기 보단 난 그 둘 보다 꼼꼼하지 싶었다. 청렴하기도 또는 그런 착각을 주는 이미지이기도했고. 


 닭꼬치와 함께 팔 칵테일 레시피를 개발도 해보면서 맛없음에 놀라고 함께 섞어 제공할 과일 단가에 두 번 놀랐다. 생각보다 구매해야할 것들도 많았다. 축제에서 판매를 하려면 학교에 승인도 받아야했다. 여러가지 변수가 발목을 잡았다가 놓아주기를 반복했다. 


열 가지를 고려해야한다고 생각이 들면, 

백 가지를 고려해야한다. 


 고작 대학 축제에서 닭꼬치를 팔기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이다. 그것이 나의 사업에 대한 마음가짐이 되었다. 조금은 방어적인 태세. 그러나 모든 변수를 상상해야만 최악수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징크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삐걱삐걱 많은 트러블과 해결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무사히 장사가 시작되었다.


 판매가 시작되자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느껴졌던 나도 목청을 올려 호객행위를 했다. 누군가 한번 쳐다보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주찻길에 세워져있는 빨간 마티즈에 붙어있는 삼십 센티도 채 되지않는 A4용지. 그 위에 적어놓은 닭꼬치를 일컫는 ‘파이리꼬치’는 잘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상 보다 사람들이 적어 초조함에 정리해둔 엑셀의 수식들이 무안해질 정도로 가격을 후려치고 나서야 모두 팔 수 있었다.


 물론 닭꼬치와 칵테일을 판매하는 것은 성공적이었다. 사업적으로 성공적인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배움이 있었다. 살다보면 돈 보다 다른 것이 중요한 시기가 있다. 돈 보다 친구들과 추억이 더 중요한 때였다. 그래도 십 마넌 정도 남겼던 것 같다. 정확한 금액이 기억 나지 않는다는 건 금액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미스테리할 정도로 적자가 났던 우리학과 포차에 비하면 우리 셋의 빨간 마티즈 파이리꼬치(닭꼬치)는 대성공이었다. 






 동업이란 즐거운 것일까. 열의 아홉은 본인과 친한 친구와 그 계획을 짜고 이야기한다. 항상 곁에 두면 즐거운 사람과 일까지 함께한다면 ‘일'이라는 것이 즐거워질까. 아니다. 나도 알고싶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일이 주는 스트레스 데미지가 친구와의 유대를 이기는 경우가 많다. 그 즐거운 추억을 경험했음에도 주변에서 동업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권장하지 않는다. 


 닭꼬치 판매를 한 학교의 졸업을 하고 난 뒤, 난 빨간 마티즈의 주인 영진이와 동업을 했다. 작은 옥탑방을 구해 청소와 페인트칠을 하고 옥상에 올라와 맥주를 마셨다. 그때 그는 징그럽게도 아버지말을 인용하여 ‘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그 이야기에 동의를 하고있다. 그렇지만 결혼의 끝. 즉, 헤어짐은  이혼이다. ‘아름답거나 명예로운 이혼’. 본 적 있나. 합의하에 이혼도 종국엔 각자의 치부를 모두 보고 난 뒤 아닌가. 


 사실 동업을 한다는 것은 저울질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분명 누군가는 더 일을 하고 더 더럽혀진다. 단순히 학교 행사기간 이틀 동안 닭꼬치를 파는 것과는 달랐다. 영진이는 생각보다 시간 약속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고집이 강했다. 반대로 나는 허심탄회하게 문제점과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다가 한 번에 터트려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무너졌다. 사업의 지속성 그리고 친구의 관계도. 그 이후로 동업을 한다면 저울질 하지 않음을 선서하고 동업식같은 것을 올려야한다 생각하게 되었다. 뭐 반지도 교환하고. 되도록 하지 말라는 말. 


                    

작가의 이전글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